생각해 보면 국제통화기금(IMF)과 닷컴 버블 이후로 경제는 늘 불황이었다. 내가 속한 미디어, 출판 업계 사람들은 해마다 ‘사상 최악’의 불경기라고 근심을 쏟아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장은 점점 작아지는데, 인공지능(AI) 신기술은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고 노동시장은 매일 흥분과 불안으로 출렁인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침체의 늪은 언제 끝날 것인가. 그 끝의 시작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와 풍요의 모델이었던 미국은 어떻게 될까. 한국 정치의 앞날에도 봄은 찾아올까.
변하지 않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크고 안정된 시야를 가질 수 있다.
금융 위기와 기술 격동을 바라보며 좌불안석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번에는 세계적인 세대 전문가 닐 하우를 인터뷰했다. 닐 하우는 그의 책 ‘제4의 대전환’에서 우리가 선형으로 진보한다고 믿었던 근현대의 시간을 멈춰 세우고, 역사를 보는 커다란 망원경을 선물한다.
망원경으로 본 인간의 역사는 봄·여름·가을·겨울, 자연의 계절처럼 100년을 주기로 탄생과 각성, 해체와 전환을 반복한다. 닐 하우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으며 현재의 위기는 사상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했던 1930년대 대공황 시기와 유사하다.
물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그 역할을 해내는 것이 바로 21.5년을 주기로 바뀌는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 X 세대, 밀레니얼 세대, 홈랜드(알파 세대)는 전에 없던 별종이 아니라 선조가 반복해 온 세대 원형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닐 하우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네 가지 세대 원형 즉 영웅(봄), 예술가(여름), 예언자(가을), 방랑자(겨울) 캐릭터 중 하나에 속해 생의 대본을 살고, 각 세대로 묶여 역사에서 고유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이 모든 증명은 미국 역사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세대에 대입해 봐도 무리가 없다.
700쪽에 달하는 벽돌 책이지만 갈피마다 학자다운 너른 시야와 무협지 뺨치는 긴박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지적인 예언서, ‘제4의 대전환’의 닐 하우와 서면 대담을 전한다.
역사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강력한 반복 사이클이 있다고. 그 깊은 패턴은 무엇인가.
“지난 600년 동안 영미권 사회는 20년 주기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20년 주기로 네 개의 전환기가 순환하는 주기는 인간의 수명과 비슷하게 약 80~100년 정도에 걸쳐 진행된다. 이 단위를 고대인은 사에쿨룸(saeculum·세기)이라고 불렀다.”
역사의 리듬을 만드는 동력이 세대의 패턴이라고.
“그렇다. 세대 패턴에 따라 역사는 약 80~ 100년 간격으로 사회 변혁과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즉 4세대마다 익숙한 흐름이 반복된다. 나는 우연히 이 리듬을 발견했다. 북미 첫 이민 세대부터 현대의 밀레니얼 세대까지 각 세대의 삶을 기록하는 책 ‘세대(Genera-tions·1991년)’를 쓰다가 그 반복적인 특징을 발견했다.
번영을 누리며 자란 세대는 청년기에 ‘기성 체제’에 반항하게 되고(예컨대 베이비붐 세대), 그 반작용으로 다음 세대는 실용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예컨대 X 세대). 그다음 세대가 새로운 시민 제도를 세우고(예컨대 밀레니얼 세대), 수순처럼 온순하고 윤리적인 세대가 뒤따른다(예컨대 알파 세대).”
하나의 사에쿨룸이 인간의 생애 주기인 80~100년과 같다는 건 놀라운 우연이자 필연인것 같다.
“맞다. 한 사에쿨룸 안에서 사회 시스템은 자연의 순환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 개의 과정을 거친다. 봄(재생), 여름(성장), 가을(해체), 겨울(창조적 파괴)을 겪는다. 예컨대 역사적 고조기인 봄에는 공동체가 우세하고 제도가 구축된다. 각성기인 여름에는 그 제도가 공격받는다. 가을인 해체기에는 개인주의가 강화되지만, 전환기인 겨울에는 다시 공동체가 급부상하고 새 질서로의 격변이 일어난다.”
‘제 4의 대전환’은 ‘지금은 겨울이다’라는 어두운 선언으로 시작된다. 겨울을 거치는 동안낡은 미국이 무너지는 모습은 충격이다.
“현재 미국은 서로에 대해서, 지도자에 대해서 신뢰가 가파르게 감소했다. 신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온갖 음모론이 쏟아져 나왔다. 무능한 통치, 준법 정신 저하 등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서 공공장소에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긱 경제(Gig Econ-omy·임시 계약 경제)에서 젊은 노동자는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희망을 점점 잃어가고, 아버지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젊은 남성은 절반 이하다. 소득이 낮은 층은 아예 독립하지 않으며, 부유한 사람은 시시포스(그리스 신화 속 인물)처럼 뼈 빠지게 일하고 있다. 노년층만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유럽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맞다. 카리스마 넘치는 포퓰리스트가 유럽,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 동아시아 등에서 권력을 확장하거나 이미 장악했다. 사회적 이동성과 세대 이동성의 감소, 국가 장벽 강화, 소셜미디어(SNS)를 앞세운 종파주의가 심화하고 있다.”
이 혹한의 겨울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언급한 대로 역사는 반복되는 계절과 같다. 최근 사에쿨룸에서 가을 해체기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에서 시작해 닷컴 버블, 9·11 테러까지였다. 겨울은 2008년 금융 위기에서 시작해 팬데믹 이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이 시기는 앞으로 10년이 더 남았다. 2030년 전후에 끝날 것이다.”
지나는 동안 힘겹게 느껴지겠지만 겨울은 역사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숲이 주기적으로 화재가 필요하고 강이 주기적으로 홍수가 필요한 것처럼, 사회 역시 주기적인 위기가 필요하다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찾아온 봄을상기해보라. 트루먼에서 케네디 시기로 자신감 넘치는 탄탄한 제도를 갖췄다. 이번 겨울 또한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하기 위해 인류가 치러야 할 대가다.”
2008년에 시작된 금융 위기, 팬데믹, 전쟁과 경기 침체, 이 겨울의 폭풍은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시작됐다고 보는가.
“넓게 보면, 네 번째 전환기인 겨울은 사람들이 사회제도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지난 사에쿨룸에서는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겨울이 시작됐다. 이번 사에쿨룸에서는 2008년 금융 위기가 그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힘든 겨울을 보내면서 미국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분열의 골이 깊어졌다.
분열은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토론과 다수결의 원칙은 사회의 방향성에 광범위한 합의가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 지금 유권자는 선거에서 약간의 표 차이로 지면 승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이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부 갈등은 한계점에 이르러 외부로 퍼지고 세계 곳곳에서 서방 국가와 반서방 국가 간의 분열은 극화된다.
강대국 동맹이 약해질수록 분열은 더 심해진다. 지난 세기의 겨울도 국제연맹이 무력해지는 시기에 발생했다. 유엔(UN), IMF, 세계은행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도 지금 같은 길을 걷고 있다.”
1930년대 20대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지금의 20대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공동체’로 같다는 게 사실인가.
“흥미롭게도 그렇다. ‘돌고 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두 시기 모두 좌우할 것 없이 포퓰리즘이 활개 쳤고 유권자는 양극화됐다. 나 역시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1930년대에 20대를 보낸 부모 세대(G.I. 세대)의 경험을 자주 떠올린다. 그들의 엄격한 순응, 사회 복음이 된 뉴딜에 대한 충성심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 형성됐다.
위기의 시대를 이끌었던 그들은 1936년대에 이미 공동체를 강조하는 정당에 80% 이상 투표했고 주택 소유 중산층을 만드는 데 큰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당시 나 같은 젊은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세대가 건설한 균일화된 주택, 일자리, 문화에 반감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2020년대의 20대가 간절히 바라는 환경이 바로 1930년대의 20대가 이뤄낸 성과 아닌가. 90년 전의 20대처럼 밀레니얼 세대는 주택과 직업 안정성의 이상을 함께 추구할 공동체를 찾고 있다. 거대한 자아와 약한 시민 본능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와 X 세대가 지배하고 있는 현 사회에서 더더욱 간절히.”
어쨌든 X 세대의 운명은 좀 가혹하다.
“맞다. 그들은 어른을 신뢰하지 않고 권위도 불편해하지만, 묵묵히 이전 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래서 X 세대는 이전 세대가 가지지 못했던 특별한 강점을 얻지 않았나. 자립심, 회복력, 예리한 생존 본능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방랑자 원형 세대는 항상 이런 식이다. 생각해 보면 1980년대 이후로 ‘생존자’와 ‘현실’이라는 단어는 X 세대와 세트로 붙어왔다.”
어찌 보면 역사는 셰익스피어 희비극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쎄. 이것은 비극도 희극도 아니다. 방랑자 세대 부모는 과보호로 예술가 자녀를 키우고, 예술가 부모는 방임으로 방랑자 자녀를 기르며, 영웅 부모는 예언자 자녀를, 예언자 부모는 영웅 자녀를 기른다는 이 순서를자각하면, 슬픔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순환은 사회가 조정되고 생존하는 방식일 뿐이다.”
요즘 젊은이는 위로가 아니라 지혜를 구하기 위해 노년층을 찾는다. 베이비붐 세대는 연장자가 아니라 현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회할 수 있을까.
“세상이 위기에 빠지면 위로만으로 젊은이를 도울 수 없다. 베이비붐 세대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보여줘야 한다. 물질 너머의 가치를 평생 고민해 온 세대이니, 지금이야말로 그런 능력을 실천할 기회다.”
금융 위기를 거쳐 중년이 된 X 세대가 괜찮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세대가 X 세대다. 1980년대의 윗세대는 X 세대를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는 이들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X 세대는 20세기 가장 많은 이민자와 다양성을 지닌 세대다. 독창성과 대담성을 인정해 주는 제도에 영향을 미쳤고, 음악·쇼·소설 분야에서 놀라운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결정적으로 앞서 설명한 것처럼 X 세대가 속한 방랑자 원형은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다. X 세대는 경제 전반에 걸쳐 위험하고 궂은일을 맡게 될 것이고, 그들의 리더십은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공동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끌어낼 것이다.”
네 번째 전환기가 길어져 2038년까지 분열과 침체가 이어진다면 괴로울 것 같다. 겨울이 일찍 끝나길 바라는 마음은 헛된 기대일까.
“위기가 더 짧거나 더 길다고 해서 더 좋거나 더 나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짧았던 네 번째 전환기는 남북전쟁 위기였다. 전환 시간이 짧았음에도 그 전쟁으로 75만 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이 수치는 미국 역사상 다른 모든 네 번째 전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망자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면서 발견한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그리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 겨울을 보내고 있나.
“지금의 위기를 통과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족과 가까이 지내고, 이웃과 친해지며, 자산을 다양화하고, 뉴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강점을 인정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젊은 세대를 보며 혀를 차지 말라. 세대 간의 차이와 판단은 오랜 세월 반복돼 온 규칙이다. 우리가 젊은이를 비판하려면, 우리가 윗세대와 얼마나 달랐고, 부모 세대가 우리를 얼마나 가혹하게 비판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은 다음 세대가 해낼 거라고 믿으라. 좋든 나쁘든 이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를 대표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