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가 KLPGA투어 대상·상금·평균 타수 3관왕에 오른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LPGA
윤이나가 KLPGA투어 대상·상금·평균 타수 3관왕에 오른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LPGA

윤이나(21)는 아마추어 국가대표를 거쳐 2022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 폭발적인 장타력을 앞세워 그해 7월 에버콜라겐 퀸스크라운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앞선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자신의 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경기를 그대로 진행(오구 플레이)한 사실을 한 달이 지난 뒤 자진 신고해 출전 정지 3년 중징계를 받았다. 대한골프협회와 KLPGA가 이를 1년 6개월로 줄여주면서 올해 투어에 복귀했다. 실전 감각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와 달리 윤이나는 1승과 함께 대상, 상금왕, 평균 타수 등 3관왕에 오르며 시즌을 마쳤다. 12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퀄리파잉(Q)스쿨에 도전한다. 2024년 KLPGA투어의 최대 화제였던 윤이나의 주요 장면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4월 복귀전에서 첫 티샷에 앞서 고개를 90도로 숙여 관중에게 사과하는 윤이나. /KLPGA
4월 복귀전에서 첫 티샷에 앞서 고개를 90도로 숙여 관중에게 사과하는 윤이나. /KLPGA

# 2024년 4월 4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 앤드 리조트에서 열린 KLPGA투어 2024시즌 국내 개막전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 1라운드. 1년 9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른 윤이나는 첫 티샷에 앞서 고개를 90도로 숙여 관중에게 사과했다. 270야드에 달하는 윤이나의 대포 같은 드라이버 샷에 팬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이날 대회장에는 평소보다 많은 팬과 취재진이 모였다. 특히 윤이나와 방신실, 황유민이 함께 경기를 펼치는 조에는 300여 명이 모였다. 1라운드를 2언더파 70타로 마친 윤이나는 오구 플레이 논란 이후 처음 취재진과 만났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또다시 사과했다. “지난 잘못으로 상처를 받으셨을 모든 이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골프를 계속하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다시 골프하게 돼 기쁘고 앞으로 모범적인 선수로 거듭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8월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복귀 후 첫 우승(통산 2승)을 차지한 모습. /KLPGA
8월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복귀 후 첫 우승(통산 2승)을 차지한 모습. /KLPGA
# 8월 4일 제주도 제주시 블랙스톤 제주 골프장에서 열린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4라운드. 윤이나는 버디 세 개와 보기 한 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를 쳤다. 최종 합계 14언더파 274타를 기록한 윤이나는 2위 그룹인 방신실(20), 강채연(21), 박혜준(21) 등 세 명을 2타 차이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그가 18번 홀에서 우승 퍼트를 넣자 이날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기한 2003년생 동갑내기 강채연, 박혜준을 비롯해 방신실, 유해란, 한진선, 서어진 등 동료 선수들이 물을 뿌려주며 축하했다. 윤이나가 우승하면 누가 물을 뿌려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윤이나는 “동료가 물을 뿌려주며 진심으로 축하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윤이나는 “국가대표 시절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란 책을 읽으며 큰 위안을 받고 힘을 냈다. 오늘은 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겠다”고 했다. 2022년 7월 에버콜라겐 퀸스크라운에서 처음 우승했던 윤이나는 2년 1개월 만에 통산 2승을 쌓았다.

# 11월 10일 강원 춘천시 라비에벨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시즌 최종전 SK텔레콤·SK쉴더스 챔피언십 최종 3라운드. 윤이나는 최종 합계 2언더파 214타 공동 12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대상(535포인트), 상금(12억1141만원), 평균 타수(70.05타) 등 주요 세 개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윤이나는 강수연(2001), 신지애(2006~2008), 서희경(2009), 이보미(2010), 김효주(2014), 전인지(2015), 이정은6(2017), 최혜진(2019), 이예원(2023)에 이어 역대 12번째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는 감격을 누렸다. 올 시즌 KLPGA투어에선 박현경, 박지영, 이예원, 배소현, 마다솜 등 역대 최다인 다섯 명이 3승을 올려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윤이나는 승수는 1번으로 적지만 준우승 4회, 3위 3회 등 25개 대회에서 톱10 최다인 14회를 기록했다. 

폭발적인 장타를 자랑하는 윤이나의 드라이버 샷과 퍼팅 모습. /KLPGA
폭발적인 장타를 자랑하는 윤이나의 드라이버 샷과 퍼팅 모습. /KLPGA

윤이나는 “시즌 초반 적응하는 것이 좀 힘들었다. 복귀한 것에 감사했지만, 부담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매 순간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돌아봤다. 윤이나는 “내 잘못으로 2년 전에 오구 플레이를 했다. 그 일로 나를 안 좋게 보고 나를 혼낼 수도 있다고 충분히 생각한다”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를 좋아해 달라고 할 수 없겠지만 계속 좋은 모습, 정직하게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니 믿어주고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윤이나는 대상 시상식이 끝나고 다음 날인 11월 28일 미국 앨라배마로 출발해 현지 적응 훈련에 돌입한다. 12월 초 열리는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 파이널 스테이지에 나선다. 5라운드로 열리는 이 대회에서 상위 25위 내에 들면 내년 시즌 LPGA투어 출전권을 확보한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올해 KLPGA투어 흥행 돌풍의 주역인 윤이나는 왜 미국으로 떠나려고 할까. 일각에선 징계를 감면해 준 KLPGA투어를 위해 국내에서 더 뛰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투어 발전으로 선수의 해외 무대 도전이 줄면서 한국 여자 골프의 국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진 가운데 용기 있는 도전이라고 격려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그는 11월 12일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국내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28위에 이름을 올렸다. 

폭발적인 장타를 자랑하는 윤이나의 드라이버 샷과 퍼팅 모습. /KLPGA
폭발적인 장타를 자랑하는 윤이나의 드라이버 샷과 퍼팅 모습. /KLPGA

미련 없이 미국 무대에 도전한다.

“미국에 가서 내 골프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가서 열심히 해보고 잘 안 되더라도 부딪쳐보자고 했다. 내가 복귀할 때부터 골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LPGA투어 Q스쿨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대상 시상식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 떠난다. 시차 적응을 해야 하고, 코스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답사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잔디에 적응하면서 경기에 필요한 기술을 더 보완해야 한다. Q스쿨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더 성장하고 나서 나가야 할 것 같고, Q스쿨을 통과한다면 미국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고 싶다.”

미국에 가면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그린 주변 쇼트 게임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미국은 지역마다 잔디가 다르고 다양한 잔디에서 어프로치할 줄 알아야 점수를 지킬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도 많을 것이다.”

1년 9개월 만에 복귀했지만 3관왕에 올랐다.

“클럽을 놓아본 적은 없지만, 투어에 복귀하니 많이 걷는 게 힘들었다. 아직도 발목 통증이 남아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줄이고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나를 지도해 준 프로들 덕분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