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미술관에 가면 우리에게 익숙한, 눈에 띄는 대작이 하나 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1859~91)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다.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있을 법한 점묘파의 대표작이 어떻게 시카고에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카고 미술관 컬렉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프레데릭 클레이 바틀릿과 헬렌 버치 바틀릿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남편인 프레데릭 바틀릿은 첫 번째 부인인 도라 바틀릿이 사망하고 2년이 지난 시점인 1919년 헬렌과 재혼했다. 헬렌은 유망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다. 남편의 미술에 대한 전문성과 부인의 예술적 감각이 결합해 부부 사이에는 ‘미술품 수집’이라는 새로운 공동의 관심사가 생겨난다. 그러나 부인 헬렌은 결혼한 지 6년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인 1926년, 남편 프레데릭은 부인의 이름을 따서 ‘헬렌 버치 바틀릿 기념 컬렉션’ 으로 명명된 작품 25점을 시카고 미술관에 영구 기증한다. 이들 컬렉션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기증한 작품 25점 중에는 미술사를 바꾼 대표작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쇠라의 대작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도 그중 하나다.
‘쇠라의 영혼’이 들어간 작품
바틀릿 부부는 그들의 예술적 감성을 즐길 수 있는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활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미술 전문가들과 교류했고 기본적인 예술적 안목과 전문가 조언에 따라 인상파 이후의 아방가르드 미술 작품을 수집했다. 1924년 6월, 부부는 한 작품을 구입한다. 신인상파를 개척한 점묘법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다. 그들은 처음부터 미국의 미술관 기증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3m의 대작을 구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남편 프레데릭은 시카고 미술관의 이사였다. 하루는 그곳 큐레이터가 요즘 유럽에서 핫한 작가가 쇠라라고 말했고, 이들 부부는 큐레이터의 추천으로 쇠라의 작품을 구입했다. 당시 2만4000달러에 구입했는데,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4억3000만원의 거금이다. 그리고 큰돈으로 구입한 쇠라의 작품은 평범한 작품이 아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점묘법으로 그린 쇠라의 대표작 정도로 알고 있지만, 쇠라는 이 거대한 3m짜리 대작을 완성하기 위해 70여 차례의 사전 드로잉과 습작을 한 끝에 색채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인물 묘사도 여러 차례 시도하는 등 2년간에 걸쳐 완성한, 화가 ‘쇠라의 영혼’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작업할 당시 쇠라의 나이는 27세였는데,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32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미술사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1886년 제8회 인상파전에 출품돼 이목을 끌었다. 색채를 원색으로 환원하고, 무수한 점으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인상파의 색채 원리를 과학적으로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상주의가 빛에 치중한 나머지 무시한 조형 질서를재정립하고자 노력한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화면 앞줄의 오른쪽 여성을 의도적 크게 표현하고 있으며, 화면 중앙 여성도 같은 시점의 다른 인물보다 크게 그렸다. 전통의 원근법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무시한 증거다. 화면은 엄격히 정돈되고 긴장감을 주는데, 이는 작가가 그림을 분석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한 흔적이다. 그 밖에 화면 중앙 왼쪽의 나비와 오른쪽의 원숭이 등 동물과 중절모를 쓴 남자, 정장 차림으로 낚싯대를 잡고 있는 숙녀 등은 남녀 간 성적 욕망 등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유사한 쇠라의 작품이 있는데, 습작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작품이다. 크기와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쌍둥이 작품이다. 신인상주의를 열었던 쇠라의 대표작 두 점이 프랑스가 아닌 미국의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바틀릿 부부는 이 작품을 컬렉션하면서 수집 방향을 후기 인상파로 정하고, 집중적으로 이 시기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다.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
부부가 애정을 가지고 구입한 작품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90)의 대표작 ‘아를의 침실’도 있다. ‘아를의 침실’은 고흐가 폴 고갱을 기다리며 부푼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오른쪽 문은 위층과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왼쪽 문은 그가 고갱을 위해 준비한 객실 문이다. 고흐는 ‘아를의 침실’ 을 세 점 그렸는데, 부부가 구입한 것은 두 번째 버전이다. 고흐는 자신의 침실을 간결하고 정돈된 분위기로 묘사하며 절대적인 휴식의 방을 표현하고자 했다. 고흐의 말이다.
“나는 흐린 남보라색 벽과 금이 가고 생기 없어 보이는 낡은 붉은색 바닥, 적색 분위기의 노란색 의자와 침대, 진한 빨강의 침대 커버, 푸른색 대야, 녹색 창문 같은 다양한 색조를 통해 절대적인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첫 번째 버전은 네덜란드의 고흐 미술관에 있다. 세 번째 버전은 고흐가 그의 어머니·여동생을 위해 조금 작은 크기로 그린 것으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세 작품을 비교해 보면, 바닥의 색깔과 벽의 색깔, 문의 색깔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무엇보다도 오른편 벽에 걸려있는 초상화가 다르다. 독자들도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대목이다.
미술사를 바꾼 세잔의 사과
바틀릿 부부가 구입한 작품 중에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의 유명한 ‘사과 바구니’가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탐스러운 싱싱한사과가 있는 기존의 아름다운 정물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림 속 유리병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접시에 담은 과자는 유리병과는 반대로 기울어진 채 윤기를 잃은 형상이다. 왼쪽의 바구니에 담긴 사과는 사과인지 구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성의하게 표현돼 있고, 구도상 시선의 방향도 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 다양한 시선은 미술사에 ‘입체파’를 탄생시켰다. 원근법과 부피감을 나타내는 명암법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저 보이는 사과가 아니라 본질적 속성을 가진 사과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세잔의 사과는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존재 자체의 사과다. 폴 세잔은 이 작품으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된다.
프레데릭과 헬렌의 컬렉션은 시카고 미술관의 중요한 컬렉션을 떠나 세계의 컬렉션이 됐다. 그들이 가진 미술 작품에 대한 열정과 수집은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