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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대선 결과, 538명의 대의원 중 312명을 확보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대선에는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외에도 질 스타인(녹색당), 로버트 케네디(무소속)가 참여했으나 단 한 명의 대의원도 확보하지 못했고, 200년 이상 지속된 양당 제도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점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11월 12일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6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장단기 미국 국채 금리 모두 크게 상승했으며,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트럼프 경제정책, 고물가·재정 적자에 악영향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중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관세 부과, 불법 이민자 추방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중국의 대미 수입품에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고, 기타 모든 국가에 최대 20%에 달하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다. 둘째, 2025년에 만료되는 ‘2017년 세금 감면 및 일자리 창출법’을 연장해 고소득자와 법인에 대한 세율을 낮게 유지한다. 소방관, 경찰 등이 수령하는 초과근무 수당 등에 대한 소득세를 폐지하고, 사회보장 혜택을 확대한다. 자동차 대출(car loan)을 세금 공제 대상에 추가한다. 셋째, 수백만 명의 불법체류자를 추방한다.

선거기간 내내 많은 국내외 경제학자가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의 물가 상승이 가팔라지고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첫째,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수입 상품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올해 1월 전미소매인연합(NRF)은 트럼프 관세가 ‘의류, 장난감, 가구, 가정용품, 신발, 여행용품’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이 6개 품목에서만 미국 소비자의 구매력이 매년 460억~780억달러(약 64조1056억~108조7008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둘째, 연방 정부가 감세 정책을 실시하면 세수 부족분을 정부 부채(국채)를 통해 충당할 수밖에 없다.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국채 금리가 상승해 금융 비용이 높아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수백만 명의 불법체류자를 추방할 경우 일용직 노동자의 노동 공급이 감소해 임금 비용을 상승시킬 수 있다.

경제학자들의 이 같은 예측에는 몇 가지 한계가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는 신발, 의류 등 생필품이 아닌 자동차, 선박, 휴대폰 등 내구재에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선 기간 중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긴축적 통화정책 덕분에 물가 상승률(CPI)이 2.5% 내외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자랑했지만, 트럼프 선거 캠프에서는 연준의 과격한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밀가루, 버터, 마가린, 식용유 등 식품 가격은 27.2% 상승하고, 우유, 과일, 과일 주스 등의 가격은 24.1% 올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1월 14일 트럼프 정권 인수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근거한 7500만달러(약 1045억2000만원)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할 계획이다. 트럼프 정부는 자신의 감세 정책으로 인한 세수 부족을 현대차와 기아에 대한 전기차 보조금 삭감을 통해 보전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트럼프의 경제 참모는 어느 신흥국의 경제 엘리트와 달리 매우 신속하고, 노련하고, 치밀하게 행동한다.

미국 경제의 출발점은 헌법

1787년 제정한 미국 헌법은 오늘날까지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 헌법 제1조 제8항 제1호에는 ‘연방의회(congress)는 합중국의 채무를 지불하고, 공동방위와 일반 복지를 위하여 조세, 관세(duties), 공과금 및 소비세를 부과 징수하는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하며 제3호에는 ‘연방의회는 외국과의 통상(commerce with foreign nations), 주 상호 간의 통상, 북미 원주민과의 통상을 규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미국 헌법은 외국과의 무역을 규제하고 ‘관세를 징수할 권한’을 연방의회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 연방의회는 1930년대 이래로 대통령에게 무역진흥권한(TPA), 즉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관세율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양당이 합의한 ‘무역의 우선순위와 책임에 대한 법(TPA)’ 제103조는 ‘미국의 대외무역에 부담이 되는 경우, 대통령은 관세 또는 기타 수입 규제를 변경하기 위해 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의회의 추가적 조치 없이 관세율에 대한 제한적 변경을 선포할 수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따른 권한을 사용해 미·일 무역협정을 체결해 미국산 농산물(특히 소고기)의 대일본 수출 시장을 지켜냈고, 2020년 12월 유럽연합(EU)과 무역협정을 통해 미국산 가공식품, 화학약품 등의 EU 시장을 지켜냈다. 다만 TPA-2015는 2021년 7월 1일에 만료됐기 때문에 앞으로 연방의회가 TPA의 갱신 여부를 고민하게 됐다.

미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뉜다. 따라서 연방 법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하원에서 각각 과반수의 결의가 필요하다. 11월 14일 기준 미국 상원은 공화당 53명, 민주당 47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원은 공화당 218명, 민주당 208명으로 구성돼 있다. 상·하원 모두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노믹스’를 뒷받침할 법률이 무난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2년 뒤인 2026년 11월이 되어야 상원 의원 3분의 1, 하원 의원 전원을 개임하는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신흥국이 힘들어도 앞으로 2년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제국의 통치 원리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연준, 어제는 비둘기, 오늘은 매, 내일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20년 6월 미국의 경기 불황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자,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해임 가능성을 거론했다고 한다. 그러자 두 달 뒤 8월 말 연준은 통화정책 운용 방식을 바꿨다.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를 초과하더라도 당장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제로 금리를 유지하는 ‘평균 물가 목표 방식(AIT)’을 채택한 것이다.

대통령의 분노에 놀란 파월 의장은 금리인하를 서두르면서도 장차 시행할 초완화적 통화정책의 근거가 필요했다. 당시 미 연준은 AIT를 채택할 경우 제로 금리 유지 기간이 2024년 말까지 연장되고 실업률도 유의미하게 더 낮아진다는 실증 분석 결과까지 제시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이 방식을 선언하면서 그 근거가 된 10여 개의 연준 보고서를 공개했다고 한다. 지금은 ‘인플레이션 터미네이터’로 변신해 기자회견장마다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파월 의장이지만 그 시절에는 유순한 비둘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 연준은 전 세계 중앙은행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다. 미국에서 국민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권력이 존재할 수 없듯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정관청은 존재할 수 없다. 알고 보면, 모두가 왕의 신하(All the king’s men) 아닌가.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