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 기기 산업 성장의 중심에는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이 있다. 범부처사업단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네 개 부처가 힘을 합쳐 의료 기기 기술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전 주기를 지원한다. 자금 투입 규모가 2020~2025년 6년간 총 1조2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이 의료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의약품이 아닌 의료 기기를 앞세워서다. 실제로 국내 의료 기기 산업은 지난해까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의료 기기 산업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0조7270억원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8.3%의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의료 기기 산업의 무역수지 흑자는 4억5000만달러(약 6271억2000만원)였다.

의료 기기 산업의 기회는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마켓어스에 따르면, 세계 의료 기기 시장 규모는 2032년 기준 6550억달러(약 912조8080억원)로, 연평균 성장률은 3%에 달한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의료 소프트웨어와 당뇨병 치료를 개선할 연속혈당측정기(CGM)처럼 한국에 강점이 있는 기술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이 의료 기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국내 기업과 협력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의료 기기 산업 성장의 중심에는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이하 범부처사업단)이 있다. 범부처사업단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식약처 네 개 부처가 힘을 합쳐 의료 기기 기술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전 주기를 지원한다. 국내 의료 기기 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 투입 규모가 2020~2025년 6년간 총 1조2000억원에 이른다. 

조선비즈는 최근 서울 중구 조선비즈 본사에서 김법민 범부처사업단 단장과 이유경 대한의학회 이사, 오봉균 아이센스 부사장, 이혜성 에어스메디컬 대표를 만나 범부처 전 주기 의료 기기 사업을 중심으로 한 국내 의료 기기 산업 성장기를 들었다. 국내 의료 전문가는 한국이 의료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의약품보다는 의료 기기의 가능성을 더 크게 점쳤다. 이들은 의료 기기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릴 핵심 기술이라고 말하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범부처사업단의 목표는.

김법민 범부처사업단 단장(이하 김법민) “범부처사업단을 만들 때 가장 강하게 도전받았던 건 왜 만들었냐는 것이었다. 각 부처에서 연구개발(R&D) 지원금을 줘서 만들면 되지 않냐는 말인데, 교수로 활동 중인 나로서는 돈만 줘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부터 엉뚱한 의료 기기를 만들거나, 개발 도중 갈 길을 잃거나, 경험이 없어서 대비하지 못했던 것을 임상의와 사업가, 연구자가 모여 제대로 해결해야만 성공 사례가 많아질 수 있다. 범부처사업단의 존재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의료 기기 업체가 허가 과정이나 시장 진출에 필요한 과정을 다 알고 있어, 그저 정부 지원금을 받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김법민 “범부처사업단 과제가 440개 정도에 달하는데, 모두 조사했다. 업체가 만들려는 의료 기기가 몇 등급에 해당하는지, 임상이 필요한지, 목표로 하는 질환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이를 다 아는 기업인은 10%가 채 안 된다. 역량이 모자란 게 아니라 의료 기기 분야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 기기는 식약처 소분류로도 2400개가 넘는다. 또 새롭게 개발된 의료 기기의 경우, 환자에게 쓰이는 거니 규제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


의학계는 의료 기기 개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이유경 대한의학회 이사(이하 이유경) “의료 기기는 공학계 기술과 의료기 수요가 합쳐진다. 의료계 수요를 기술로 구현하고 의료 기기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환자를 진단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고 단계가 복잡한지, 잘못 측정됐을 때 방어할 만한 요소가 있는지, 사용하기는 편한지 같은 부분에 대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의료인은 사업적인 단어는 모르지만, 의료 기기에 필요한 조건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런 부분을 기업인에게 요구해 기업이 사업 모델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업에는 어떤 점이 가장 도움 됐나.

이혜성 에어스메디컬 대표(이하 이혜성) “범부처사업단에서 임상 현장과 회사 사이를 조율해 주는 것이 가장 도움 됐다. 특히 AI 의료 기기를 만드는 기업은 데이터가 피와 살이다. 제품을 개발할 때 병원 데이터로 논문을 작성할 수 있는지, 출시에 이르러 병원에서 시험해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기업이 단독으로 이른바 ‘빅 5’ 병원에 가서 시험을 조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범부처사업단을 통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미국 임상 현장이 연결됐다.”

오봉균 아이센스 부사장 아이센스가 개발한 연속혈당측정기는 글로벌 기업 로슈가 한국 시장을 거의 점유했다. 아이센스가 범부처 전 주기 의료 기기 사업으로 함께 성장하면서 한국에도 기술이 생겼고, 임상학적인 혜택도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임상을 하면서 식약처를 설득하기 어려웠는데, 사업단에서 미팅을 잡아주고 설명할 기회를 만들어줬다.”

왼쪽부터 김법민 범부처의료기기사업단 단장, 이혜성 에어스메디컬 대표, 이유경 대한의학회 이사, 오봉균 아이센스 부사장,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이 최근 서울 중구 조선비즈 사무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조선비즈
왼쪽부터 김법민 범부처의료기기사업단 단장, 이혜성 에어스메디컬 대표, 이유경 대한의학회 이사, 오봉균 아이센스 부사장,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이 최근 서울 중구 조선비즈 사무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조선비즈

한국 의료 기기 산업의 가능성은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나.

이유경 "한국 과학기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국가가 전 주기로 지원하고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면 제약보다 의료 기기 분야 산업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 기업 중에 이미 나온 제품을 뛰어넘을 만한 기술을 구현할 에이스가 충분히 있다.” 

이혜성 “에어스메디컬의 경우 미국 창업팀과 경쟁해 왔는데,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국내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킬 정도의 품질이라면, 전 세계를 노릴 수 있다. 국가가 대표 기업을 키워낼 수 있는 분야가 의료 기기다.”

김법민  “국내 의료 기기 업계가 열심히 잘하는 부분도 있지만, 약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의료 기기 분야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 국가가 쌓은 노하우는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 의료 기기 분야에서 쌓아온 것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면, 한국이 10년 안에 의료 기기 강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송복규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