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 AP연합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 AP연합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총리가 11월 11일 중의원(의회)에서 일본의 제103대 총리로선출됐다. 이시바 총리는 2차 ‘이시바 내각’을 발족시킨 뒤 각료 회의와 국내외 기자회견 등을 통해 향후 경제정책과 국정 방향의 개략적인 윤곽을 밝혔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경제성장으로 일본을 지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과감한 성장 정책을 통해 장기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려 2030년대에 일본의 국제 위상을 되찾겠다는 구상이다. 중의원 선거에서 패해 30년 만에 소수 여당으로 출범한 ‘이시바 내각’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기존 자민당과 공명당의 보수 연합에다 제3 야당인 ‘국민민주당’을 끌어들여 ‘3당 정책 연합체’로 출발한 만큼 정국 운영에서 소수 야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교·안보통’ 정치인으로 경제에 약하다는 평을 받아온 이시바 총리가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에서 일본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온건 합리주의자인 이시바 총리가 자신의 색깔을 살려 ‘자민당 개혁’과 ‘경제성장’ 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금 인상과 투자 통한 성장형 경제 실현

이시바 총리는 내각의 운영 방침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치 △지방, 청년 및 여성의 기회 보장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사회 실현을 내걸었다. 경제정책은 디플레이션 탈피를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재정 운영을 기본으로 하고, ‘임금 인상과 투자를 통한 성장형 경제’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외교정책과 관련해선,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외교력과 방위력을 균형 있게 강화해 일본의 평화와 지역 안정을 추진한다. 자민당 내 비주류로 원내 지원 세력이 적은 이시바 총리는 전임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지지를 받아 수차례 실패 끝에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시바 총리가 기시다 전 총리의 핵심 경제정책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가속화하겠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이시바 내각은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임금 상승률을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정책을 11월 말 공개한다.

첨단 기술 국내외에 알려 ‘일본의 혁신’ 홍보

현지 언론과 자민당에 따르면, 11월 하순 발표 예정인 경제정책은 미래 시장에서 돈이 되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등 글로벌 경제·안보 분야에서 일본의 산업 지위를 확고히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중소기업 및 소규모 사업자 지원에도 나선다. 이들 중소기업의 구조적인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절감에 필요한 설비, 기기 등의 도입을 지원할 방침이다. 둘째,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을 창출하기 위해 정부 및 대기업의 조달 개혁을 통한 수요 창출,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개선, 지자체 및 대학의 연대를 통한 지역 클러스터 형성과 주요 분야의 최첨단 기술 사업화 지원을 확대한다. 셋째, 질병 예방과 건강 관리 분야의 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 확대다. 여성의 건강, 생활 습관병, 치매 등 사업·연구 개발을 촉진한다. 노인 돌봄(가이고)을 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지원을 늘리고, 노인 돌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가이고 서비스 제도를 확충한다. 기업에서 업무와 노인 돌봄의 양립이 가능한 제도도 구축하기로 했다. 넷째, 글로벌 협력 국가와 신뢰성 높은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구축하고, 남미 국가와 연대를 강화한다. 다섯째, 2025년에 열리는 오사카·간사이 세계 박람회에서 인공지능(AI), 로봇, 헬스케어,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디지털, 모빌리티, 스마트시티 등 일본이 보유한 신기술을 선보인다. 세계 박람회를 활용해 외국 기업과 각종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고, 외국인 관광객을 전국에 분산시켜 ‘지방 창생(創生)’을 지원한다. 여섯째, 대일 직접투자 촉진을 위해 정부의 횡적 기능을 강화해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 절차를 간소화한다. 일곱째, 2035년에 승용차 신차 판매에서 전동차(전기자동차) 100%를 달성한다. 이를 위해 전동차 구입 보조금을 확대하고, 인프라 정비, 배터리 및 전동차의 기술 개발과 제조 투자를 촉진한다. 기존 자동차 부품·정비 공장, 주유소를 활용하기 위해 이들의 업태 전환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덟째, 인력 부족 해소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AI와 로봇을 적극 활용한다. 생성 AI를 이용한 서비스 창출을 위해 국내 기반 모델 개발, 민간 데이터센터 및 데이터 정비를 추진한다. 데이터를 보호하고,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분산해 건설하고, 통신·전력 인프라를 정비한다. 아홉째, 데이터센터와 5G(5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정비해 AI 사회를 지탱하는 차세대 정보통신 기반 ‘5G를 넘어서(Beyond 5G)’를 2030년대에 도입한다. 끝으로 2030년대에 글로벌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30% 획득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기술 개발과 자동 운전의 실용화를 조기에 실현하고, 탈탄소 및 서플라이 체인의 강화에 필요한 데이터 활용을 강화한다.


AI와 반도체 육성 대책, 11월 말 발표

이시바 내각은 11월 28일쯤 구체적인 산업 지원 대책을 공표할 예정이다. 미래 산업에서 주요 선진국 간 시장 쟁탈전이 치열한 AI와 반도체 산업 육성책이 핵심이다. 2030년까지 AI와 반도체 분야에 10조엔(약 90조원) 이상의 공적 자금을 지원하고, 향후 10년간 50조엔(약 452조원) 이상의 민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지원 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경제정책에는 지방 경제 활성화 정책도 포함된다. 이시바 총리가 내건 국정 목표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려면, 지역 경제 회생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방 활성화와 관련, “단순한 지방 집중 대책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경제정책이자 다양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정책” 이라며 “지방을 중심으로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 감소 대응 예산을 기존보다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청년과 여성이 선택하는 지방, 다양성이 있는 지역 분산형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치 개혁과 경제성장을 내걸고 취임한 이시바 2차 내각이 장수 정권이 될 수 있을까.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이시바 정권의 지속 여부는 실질적인 경제 성과에 달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 10월 선거에서 자민당이 선거에서 패한 근본 원인이 물가 급등과 실질임금 감소에 따른 국민의 불만이기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 취임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20%대에 머물렀다. 11월 중순 지지통신의 조사 결과, 이시바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률이 28.7%에 그쳐 한 달 전(28.0%)과 비슷한 수준이다. 보통 일본에서는 총리 지지율이 30% 선 아래일 경우 정권 위기로 판단한다. 자민당이 제3 야당인 국민민주당과 협력해 출범했지만, 아직은 국민의 시선이 냉담한 편이다. 국중호(재정학)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경제정책의 기본은 전임 기시다 정권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내년 초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정권과 얼마나 협조를 잘해서 경제 성과를 내느냐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시바 총리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 신중한 스타일이어서 경제정책도 큰 실패를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상철(상학) 간사이대 교수는 “자민당 내 비주류 출신의 한계 때문에 이시바 총리가 그동안 주장해 온 금리 인상과 엔화 강세 정책을 밀어붙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정책 연합에 가담한 국민민주당의 경제정책이 ‘이시바 내각’ 존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이시바 내각이 경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연합 정권이 무너지고, 단명 정권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