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의 ROV는 심해에서 투명한 갯민숭달팽이인 바티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Bathydevius caudactylus)가 손가락 같은 꼬리로 헤엄치는 모
습을 처음 관찰했다. /사진 MBARI 2 심해 갯민숭달팽이인 바티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 몸이 투명해 안이 다 보인다. 흰색은 뇌, 붉은색은 위, 주황색은 소화선이다. /사진 MBAR
1 미국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의 ROV는 심해에서 투명한 갯민숭달팽이인 바티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Bathydevius caudactylus)가 손가락 같은 꼬리로 헤엄치는 모 습을 처음 관찰했다. /사진 MBARI 2 심해 갯민숭달팽이인 바티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 몸이 투명해 안이 다 보인다. 흰색은 뇌, 붉은색은 위, 주황색은 소화선이다. /사진 MBAR

1995년 가수 이적이 ‘달팽이’를 발표했다. ‘달팽이’는 가사에서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라면서도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다짐했다. 과학자들이 이적의 ‘달팽이’가 이미 꿈을 이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미국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MBARI)는 “2600m 아래 심해(深海)에서 무인 잠수정(ROV)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갯민숭달팽이류(nudibranchia) 신종(新種)을 발견했다”고 11월 13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심해 연구’ 에 발표했다. 몸길이 14.5㎝인 심해 달팽이는 손가락 모양의 꼬리를 노처럼 휘저어 헤엄쳤다. 머리에는 두건 같은 구조가 있었고 몸은 투명해, 내장까지 훤히 보였다.

빛도 없는 심해에서 떠다니는 달팽이

갯민숭달팽이는 화려하고 밝은 색상의 바닷달팽이다. 학명은 벌거벗었다는 뜻이 있는 라틴어 ‘nudus’와 그리스어로 아가미란 뜻인 ‘brankhia’에서 왔다. 달팽이는 보통 등에 껍질을 단 것으로 유명하지만 껍질 없는 민달팽이도 있다. 갯민숭달팽이는 그중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다.

블루스 로빈슨 MBARI 수석 과학자 연구진은 2000년 2월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만 앞바다에서 원격조종 ROV 티뷰론으로 수심 2614m 심해를 탐사하던 중 이상한 연체동물을 처음 관찰했다. 연구진은 지난 20년 동안 티뷰론이 촬영한 150건 이상의 목격 사례를 검토한 후, 갯민숭달팽이 신종임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에게 바티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Bathydevius caudactylus)란 이름을 붙였다. 앞부분 속명(屬名)은 ‘깊다’라는 그리스어 바티스(bathys)에 교활하다(devious)는 단어를 합쳤다. 다른 갯민숭달팽이와 다른 특징으로 연구자를 속인 심해 동물의 교활한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뒤 종명(種名)인 카우닥틸러스는 ‘꼬리돌기’란 뜻이다. 바티데비우스는 일반 갯민숭달팽이와 달리 심해에서 사는 별종이다. 갯민숭달팽이는 대부분 얕은 바다 바닷말이 우거진 곳이나 산호초에서 산다. 이번에 발견한 바티데비우스는 심해저에 사는 것으로 확인된 첫 갯민숭달팽이다. 이 종은 대양에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수심 1000~4000m에 산다.

등껍질뿐 아니라 피부색도 없앤 벌거숭이

바티데비우스는 빛도 없는 심해에서 살기 위해 독특한 형태로 진화했다. 대부분 바닷달팽이는 해저에 붙어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뾰족한 혀를 사용하는 반면, 이 달팽이는 두건으로 먹이를 잡는다.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처럼, 두건으로 손톱보다 작은 갑각류를 덮쳤다. 심해에 사는 해파리, 말미잘도 같은 방식으로 사냥한다.

이동 방식도 다르다. 달팽이는 무중력 우주 공간에 있는 것처럼 가라앉지도 수면으로 떠오르지도 않고 몸 전체를 아래위로 물결치듯 움직이면서 떠다녔다. 이 과정에서 쉽게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게 투명한 몸을 가졌다. 그러다가 들키면 갑자기 몸에서 빛을 발산해 포식자의 주의를 돌린다. 연구진은 ROV가 촬영하자 적을 만난 듯 빛을 발산했다고 밝혔다.

생식방식은 다른 갯민숭달팽이와 같다. 암컷과 수컷의 성기를 모두 가진 자웅동체(雌雄同體)다. 열악한 심해 환경에서 자손을 더 잘 퍼뜨리는 방법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달팽이는 한 몸에서 수정하면 산란을 위해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ROV는 달팽이가알을 낳기 위해 손가락 모양 꼬리로 진흙 바닥에 달라붙는 모습을 관찰했다.

연구진은 바티데비우스의 유전자를 분석해 진화 과정을 살폈다. 얕은 바다에 사는 사자갈기 갯민숭달팽이(Melibe leonina)와 베일 갯민숭달팽이(Tethys fimbria)도 먹이를잡을 때 두건을 쓴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들은 바티데비우스와 가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의 두건은 수렴진화(收斂進化)의 한 예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수렴진화는 고래와 물고기, 박쥐와 새처럼 전혀 다른 종이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외형이나 생활사 등이 비슷하게 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처럼 심해 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해양 생태계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로빈슨 박사는 “심해 동물은 지구를 공유하는 우리의 이웃”이라며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대중에게 바다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도록 영감을 주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3 바티 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가 빛을 내 천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다. /사진 MBARI 4 갯민숭달팽이가 스스로 목을 잘라낸 뒤 머리와 몸통의 모습. 머리에서 다시 몸통이 자라났다. 하지만 남은 몸통은 몇 달은 살지만 결국 부패했다. /사진 일본 나라 여성병원
3 바티 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가 빛을 내 천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다. /사진 MBARI 4 갯민숭달팽이가 스스로 목을 잘라낸 뒤 머리와 몸통의 모습. 머리에서 다시 몸통이 자라났다. 하지만 남은 몸통은 몇 달은 살지만 결국 부패했다. /사진 일본 나라 여성병원

스스로 목 치는 바닷달팽이

바닷달팽이는 미스터리 동물이다. 극단적인 형태로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도 한다. 일본 나라 여성병원의 요이치 유사 교수 연구진은 2021년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갯민숭달팽이가 스스로 목을 자르고 나중에 머리에서 다시 몸이 재생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더듬이가 달린 머리는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움직이고 먹이까지 먹었다. 심지어 노폐물도 제거했다. 1~3주가 지나자, 심장을 포함한 몸통이 다시 자라났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가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와 같은 행동인지 알기 위해 천적처럼 몸통을 찔렀다. 달팽이는 이런 공격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대신 연구진은 자연에서 채집한 달팽이 일부에게서 몸 안에 물벼룩 같은 기생 갑각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목이 잘린 달팽이 42마리는 모두 몸에 물벼룩이 있었다. 연구진은 최소한 이 달팽이 종은 몸 안의 기생충 때문에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갯민숭달팽이 연구 결과는 신기술에 적용될 수 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은 바다에 사는 갯민숭달팽이 근육을 동물과 기계를 결합한 사이보그에 적용했다. 갯민숭달팽이는 온도와 염분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포유류보다 사이보그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갯민숭달팽이 추출 물질은 암 치료에도 쓰이고 있다. 선진국이 해양 생물의 유전자 특허에 열을 올리는것은 이처럼 신기술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