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신한캐피탈 사태’로 논란이다. 신한금융그룹 계열사인 신한캐피탈에서 프롭테크(Prop-Tech·첨단 기술 접목 부동산 서비스)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에 2017년 5억원을 투자했으나, 경영 악화로 문을 닫자 이자 7억원을 붙여 12억원을 반환하라며 창업자 하진우 대표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 가압류를 걸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2017년 신한캐피탈은 당시 5억원을 투자하면서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울 경우 연 복리 15%로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라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는데, ‘실제로는 시행하지 않는 조항이고 형식적인 것이다’라고 하 대표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지자, 계약서 내용대로 이를 이행했다. 어반베이스는 한때 기업 가치 6000억원을 인정받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하는 회사였으며, 한국은 물론 일본 시장에서도 활약했다. 어반베이스가 껍데기뿐인 기술 회사라든지 사업하면서 주주와 소통을 소홀히 하거나 배임 및 횡령 등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주요 의견은 둘로 나뉜다. ‘사업하는 사람이 대기업, 투자자의 말을 믿지 말고 신중해야 했다’라는 쪽이 있고, 여전히 연대책임이나 연대보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과연 한국이 창업하기 좋은 나라냐’며 공분하는 쪽도 있다. 둘 다 맞는 의견이지만, 계약했을 당시와 현재 시점에서만 이 사태를 보지 말고 미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미국에서도 투자 계약서에 연대책임 조항은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빚을 갚지 못할 때 대표이사가 무조건 다 떠안는 방식으로는 진행하지 않는다. 경영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경우 등에 한정된다. 대신 투자자로서 계약을 안전장치로 활용하는 동시에 창업자를 견제하며 안정적으로 혁신을 추구할 수 있게 돼 있다. 또한 설령 미국 투자사와 기업이 신한캐피탈과 어반베이스가 맺은 계약과 똑같이 계약했다고 할지라도 계약서대로 실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변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의 의견이다. ‘VC는 평판, 브랜딩이 거의 전부인 업(業)’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금 폐업 또는 구조조정을 하는 스타트업 중에선 어반베이스가 투자받았던 2015~2018년쯤 투자받은 회사가 많다. 이들은 캐비닛을 열어 과거 수십 건의 계약서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계약은 계약이다. 어찌 됐든 사인했으면 지켜야 하고, 창업자가 안일했다’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창업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사회가 된다면, 현재와 미래 창업자에게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난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일궜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력은 여전히 바닥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에선 완전히 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 규제에 막혀 새로운 사업 모델을 펼치기도 어렵다. AI 산업은 자본 경쟁인데, 투자 규모가 글로벌 시장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펀드 만기도 8년 이하로 짧다(미국의 경우 보통 12년 이상이다). 이제 한국 시장은 성장이 없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관심사 밖인 곳이 돼 버렸다. 오죽하면 한국 AI 스타트업은 미국 VC에서 투자를 못 받으면 2~3지망 정도로 한국 VC 대상의 투자 설명(IR)을 검토하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나올까.
실제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1년 반이 넘도록 투자 혹한기다. 각종 언론에서도 스타트업 위기론에 관한 기사를 쏟아낸다. 반면 미국은 회의론 없이 인터넷 역사 이래 최대의 판이 열렸다며 미주 전체에서 AI 스타트업이 태동하고 있고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담론으로 가득하다. 온도 차가 나도 너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