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옷을 많이 사주는 손님을 단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단골은 우리 옷을 오래 입어주는 분입니다.”

미나가와 아키라- 미나 페르호넨 디자이너 /사진 오누마 쇼지
미나가와 아키라- 미나 페르호넨 디자이너 /사진 오누마 쇼지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텍스타일 디자이너 사이에선 이미 유명)’을 만든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는 확실히 괴짜였다. 1년 단위로 소비액을 계산해 중요 고객(VIP)을 선정하는 시대에, 반복 구매와 소비 횟수로 소비자를 나누지 않고 회사를 30년째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100년 기업 그 너머를 꿈꾼다. 이를 위한 철학은 확실하다. 구매한 지 20년 넘는 옷을 가져와서 고쳐 달라고 하면 잔말 없이 고쳐준다. 미나가와 아키라는 “우리는 옷을 하루 종일 입고 있다. 옷을 오래 입고 그 옷에 기억이쌓이게 하고 싶다”고 했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위해 손으로 스케치한 도안으로 일본에서 직조해 원단을 짜서 옷을 만든다. 기계의 힘을 일부 빌리되 전부, 의존하지는 않는다. 소중하게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는 가치관을 지키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서다. 미나 페르호넨은 속도나 효율에 얽매이지 않아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브랜드다.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선 것도 아닌데 든든한 팬덤도 있다. 느리고 느린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의 인기 비결은 뭘까. 미나 페르호넨을 만든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의 특별 전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 전경. 미나 페르호넨
은 텍스타일에서 시작해 리빙용품에서 공간 디자인까지 다루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진 윤현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의 특별 전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 전경. 미나 페르호넨 은 텍스타일에서 시작해 리빙용품에서 공간 디자인까지 다루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진 윤현기

브랜드 이름이 특이하다.

“디자이너 이름을 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는 처음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없어도 계속 이어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몇 시간 동안 핀란드어 사전을 뒤적이며 고른 이름이다. ‘미나’는 나, ‘페르호넨’은 나비라는 뜻이다. 나비의 아름다운 날개처럼 경쾌한 디자인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

처음부터 100년 너머 기업을 꿈꾼 이유는.

"소중하게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는 가치관이 사회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삶의 사이클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이 제품이 오래 사용될 것으로 생각하고 만들면 쓰는 사람도 그 마음을 알아주고 사용하지 않을까.”

오래 입는 옷에 가치를 두는 이유는.

“대량생산이 패션의 가치관이 된 시대다. 그렇게 되면 의복은 그냥 몸을 가리는 것으로만 의미가 있다. 나는 오래 입으면서 옷에 기억이 쌓이게끔 하고 싶다. 물질은 기억으로 남겨지기 쉽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바꾼 것도 있지만 좋은 방법은 남기면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효율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옷에 쌓인 기억이라면.

“이번 전시에 미나 페르호넨의 옷과 그 주인의 관계를 엿보는 공간을 마련했다. 총 18개 사연을 추려서 전시했다. 12년 전 교토의 미나 페르호넨 매장에서 판매된 코트에는 엄마와 딸의 대화가 겹쳐 있다. 여행을 마치고 코트를 사 입었던 딸에게 엄마는 ‘이 패브릭, 꼭 벽돌 사이에 이끼가 낀 것 같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렇게 말을 건네 준 엄마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 코트가 당시의 교토를 기억하게 하고, 엄마와 대화를 생각나게 해준다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색이 바래기보다는 애착이 깊어지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학창 시절 장거리 허들 선수로 뛰었다. 그때부터 인생에는 허들이 있고 그 허들을 넘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패션에 뒤늦게 눈을 떴다. 발목 골절로 체대 진학이 어려워지자 뚜렷한 목적도 없이 프랑스 파리에 가서부터다. 파리에서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주로 하는 일은 모델 몸에 맞게 옷을 수선하는 것이었다. 정말 못했다. 스스로 손재주가 없고 서투르다고 느꼈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재능 없는 사람이 몇십 년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내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그래도 40년 정도 해보고 기록을 남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보통은 잘 못하면 금방 포기한다.

“서투르지만 천천히 걷는 사람은 주위를 본다. 하지만 능숙한 사람은 주변을 볼 수 없다. 작은 성취감이 인생에서 많은 기쁨을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서툴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미나가와 아키라는 잘 포기하지 않는 성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서전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에 어린 시절 찰흙 구슬을 빚고 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어릴 때 놀이도 비슷했던 것 같다. 찰흙 구슬을 만들곤 했는데 처음부터 잘 만든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하고 열중해서 만드는 사이 조금씩 능숙해졌다. 그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것은 나만의 방법이 된다. 요령이나 비법 같은 것을 깨달은 순간 돌아보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나 혼자였다. 그러나 그 조용한 시간이 나는 좋았다.”

미나 페르호넨이 자리 잡기까지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을 것 같다.

“사업 초창기에 직원 월급을 못 줄 정도로 어려웠던 때도 있었다. 그때 어시장에서 참치 해체 작업을 했다. 그 어시장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원단 낭비를 줄이는 일과 비슷했다. 재료의 좋고 나쁨도 익혔다. 그 원리는 패션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사업은 번창했다. 일본·대만·스웨덴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전시까지 열었다. 이제 사업에 확신이 좀 있나. 순간순간 안갯속을 걷는 것 마냥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있을 것 같은데.

“인생은 자주 안갯속이다. 그 길을 걸어갈 때의 마음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다 어떻게 될까? 불안하거나 이 길 뒤에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거나. 그런데 그런 기대를유지하기 위해선 일단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 계속 걷다 보면 반드시 무언가를 만나게 돼 있다. 시야가 맑지 않다는 게 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만든 가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외할머니다. 외할머니가 해준 말이 있다. ‘조급하지 않게 나태하지 않게.’ 창의성은 조급하면 타협하게 된다. 나태하면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나 페르호넨은 앞으로도 ‘조급하지 않게 나태하지 않게’ 나아가려고 한다.” 

전시 정보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기간 2024년 9월 12일~2025년 2월 6일관람료  성인 2만원(만 19~64세)  

청소년 1만5000원(만 13~18세)  어린이 1만원(만 7~12세), 특별권 1만원

연지연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