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 바쁜 발걸음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콘서트홀로 향했다. 캠퍼스 정문을 지나 한참을 걷고, 언덕을 올라야 겨우 닿는 곳이라 공연 시작에 늦지 않으려고 거의 뛰어갔다. 간신히 로비에 비치된 프로그램 북을 집어 들고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몰아쉬는 숨이 혹여나 옆 관객에게 실례가 될까 조심스레 숨을 고른다. 마침내 객석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에 불이 들어왔다. 오케스트라가 경쾌한 선율을 연주하며 공연이 시작됐다.
필자가 근무하는 음악대학에서 오페라가 공연된 날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공연이라, 학교 내에서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오페라는 주역 가수는 물론 100여 명이 훌쩍 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합창단 그리고 무대 세트, 장치, 조명, 의상 등을 담당하는 연출팀과 감독, 엔지니어, 무대 크루까지 수많은 인원이 함께 만드는 초대형 공연이다. 이러한 공연은 정규 콘서트홀에서도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규모로, 학교에서도 이를 위해 1년 넘게 준비했다. 지난 몇 달간 늦은 시각까지 연습에 몰두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그러나 곧 프로그램 북을 펼치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오늘 공연의 작품 제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자는 다 그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작곡. 모차르트는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제목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찜찜하게 한다. ‘여자는 다 그래’라니. 요즘같이 남녀 평등이 중요한 가치를 차지하는 시대에 이런 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아니 사적인 자리에서라도 사용하는 것은 많은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다양성과 존중이라는 시대정신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고정된 성 역할의 잘못된 일반화를 부추길 수도 있다. 물론 2024년을 사는 이의 시각으로 1790년에 초연된 작품을 재단하려는 것은 성급한 오류일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의 시놉시스를 살펴보면,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가 이상한 사람이었나 봐’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당황스럽다.
19세기 접어들며 ‘퇴폐적’, 비난받기도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는 희극 오페라, 즉 오늘날의 ‘로맨틱 코미디’에 해당한다. 내용은 사랑을 맹세한 두 남녀 커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두 남자는 자신들 연인의 정절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남성으로 변장하고 연인을 유혹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혹 대상은 서로의 연인, 즉 친구의 연인이라는 점이다. 이후 여성들은 괴로워하며 마음이 흔들리다 결국 유혹을 받아들인다. 쉽게 말해, 이 오페라 이야기는 ‘파트너 바꿔치기’ 또는 ‘스와핑’에 가깝다. 이는 현대극에서도 대중의 지지를 얻기 힘든 소재일 것이며, 심지어 19금 영화의 줄거리에 더 어울릴 듯하다.
열정적으로 무대에 서는 학생들의 연주를 보며 감동하면서도, ‘모차르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품을 작곡했을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1790년, 빈에서 초연됐던 당시 이 작품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당시 평론가들은 ‘대단히 훌륭한 작품’ ‘역시 모차르트’라고 말하며 찬사를 보냈다. 작품은 빈에서 시작해 프랑크푸르트, 드레스덴, 마인츠, 프라하 그리고 암스테르담까지 공연 반경을 넓혔다. 비록 계급사회와 남성 중심의 보수적 사회였지만, 계몽주의라는 시대정신 아래 사랑을 해학적, 풍자적으로 그려낸 표현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이런 풍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쾌락과 본능을 솔직히 묘사했던 ‘데카메론’ 이 18세기를 살던 이들에게 널리 읽혔다고하며, 이는 당시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며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에 대한 평가는 극적으로 달라졌다.예술 사조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며 사랑에 대한 표현도 달라졌다. 깊고 숭고한 정신적 결합으로서 사랑을 추구하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이 작품이 지나치게 가볍고 유흥적이며 도덕적이지 못하고 심지어 퇴폐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조차 이 작품에 거부감을 표했다. 결국 이 오페라는 일부만 가끔 연주되거나, 연주되더라도 당시 도덕적 기준에 맞게 각색된 형태로 무대에 오르곤 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정말로 쾌락적이고 부도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필자는 이 오페라의 하녀 데스피나의 대사에 모차르트의 진정한 메시지가 담겼다고 본다.
“우리는 하늘이 아닌 땅에 살고 있어요.” “이미 지나간 일은 과거의 것.
잊어버리고 속박에서 벗어나세요.”
“이성적이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죠.”
이 대사는 종교와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다시 말해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찾으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본능적 감정과 욕구를 깨닫고, 그것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남성 중심의 보수적 신분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예리하고 신랄한 풍자와 비판의 메시지일 수 있다.
이 작품을 즐겁게 바라보는 관객, 여주인공들의 감정 변화에 공감하는 관객, 혹은 이를 도덕적 문란함이라 여겨 분노하는 관객. 이 모든 반응을 자신의 경쾌한 음악 속에 담아낸 모차르트는 감상하는 각양각색의 우리를 지켜보며 뭐라고 말했을까.
어쩌면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고 있지 않았을까.
‘여자는 다 그래’뿐만 아니라
‘너희 인간은 다 그래.’
모차르트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주인공들의 갈등을 봉합하며 작품을 마무리했다.
“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하네.
폭풍 속에서도 결코 용기를 잃지 않고,
이성을 삶의 길잡이로 삼는 사람.
삶에서 다른 이들을 눈물짓게 하는 일이
웃음의 이유가 되는 사람,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고요한 평화를 찾는 사람이네.”
아무리 시대의 가치관이 바뀐다고 한들 늘 통용된,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