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콥스 IEC 회장 - 전 IEC 재무담당관, 전 벨기에  전기기술위원회 사무총장,  전 알파 테크놀로지 유럽  영업·마케팅·전략기획, 전 소니 벨기에 스마트홈  솔루션 엔지니어 /한국표준협회
조 콥스 IEC 회장 - 전 IEC 재무담당관, 전 벨기에 전기기술위원회 사무총장, 전 알파 테크놀로지 유럽 영업·마케팅·전략기획, 전 소니 벨기에 스마트홈 솔루션 엔지니어 /한국표준협회

“고객을 특정 시장에 고착시켜 독점을 유도하는 방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표준’을 설정하거나, (다른 기업에) 강요할 수 있을 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조 콥스(Jo Cops)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회장은 최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표준은 기술의 보편적인 상호 운용성을 촉진하는 공통 언어”라며 이같이 말했다.

IEC는 전기·전자·통신 분야의 국제 규격· 표준을 조정하는 기관으로, 1906년 설립됐다. 현재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함께 세계 3대 표준 기구로 통한다.

광주광역시에서 개최된 ‘빅스포(BIXPO)’ 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주최한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콥스 회장은 인공지능(AI)·양자역학 분야 국제 표준 동향과 기업이 나가야 할 길을 언급했다.

국제 표준이 국가·기업 경쟁력

최근 국제 표준 경쟁이 기술 패권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해 콥스 회장은 “일부 국가가 표준 수립과 관련해 전략적인 접근을 취했고,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 표준의 분열과 탈동조화 위험을 증가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도 표준을 경쟁 우위 확보와 기술적 리더십 확립 차원에서 전략적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며 “목표는 시장 지배력에 영향을 미치고, 자사 기술을 홍보하고 경쟁자를 배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콥스 회장은 “표준의 분열은 혁신을 저해하고 비용을 증가시킨다. 소비자 선택의 폭도 제한한다”며 “무역에서도 기술 장벽을 만들어 제품을 다른 시장으로 수출하기 어렵게 하고 비용도 더 많이 들게 한다”고 꼬집었다.

콥스 회장은 또 시장 지배력을 쥔 기업이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 체계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표준이 자발적이라면, 규제는 필연적”이라며 “기업이 고객을 특정 시장에 고착시켜 임의로 독점을 만들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콥스 회장은 “유럽연합(EU)은 스마트폰 및 기타 전자 기기, 아이폰을 포함해 USB-C 충전기(IEC 표준 기반)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애플은 이 변화에 저항했지만, 이제는 EU의 규정을준수해 최신 아이폰에 USB-C 충전기를 도입했다”고 했다. 

AI 올바른 발전 위해 표준 필요

AI 기술 개발 과정에서 표준의 역할에 대해선 “국제 표준은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대응하고 관련 위험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데이터 관리, 책임성, 알고리즘 편향 방지 등을 포함한 가이드라인과 모범 사례를 제공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 여러 기관이 AI 기술을 책임감 있게 구현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역할을 위해 표준 작업에 기술자뿐만 아니라 학자나 법률가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콥스 회장은 표준 개발의 이점을 △글로벌 시장 접근성 확대 △국제 영향력 확대 △ 빠른 시장 동향 파악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 △기업 명성 제고 등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국제 표준 작업을 주도하고, 경영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 상황에서 표준은 기업의 수익 추구와도 맞닿는 분야”라고 했다.

내년 말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표준포럼(WSF·World Standards Forum·가칭)’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콥스 회장은 “WSF는 국제 표준이 사회의 여러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라며 “특히 포럼을 통해 책임감 있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을 위한 적절한 가드레일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콥스 회장은 “표준은 단순히 기술만 다루지 않는다. ISO 및 ITU와 함께 유엔(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와 협력해 유엔 인권이사회가 제시한 기술 표준 및 인권에 대한 지침 이행을 지원했다. 표준화 과정에서 인권 관점이 반영되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 표준은 글로벌 합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여기에는 산업, 학계, 정부 및 시민사회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한다”며 “이번 포럼을 통해 아직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지 않은 다른 이해관계자가 국제적 합의 기반의 표준을 설정하고 채택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U는 애플에 IEC 표준에 기반한 USB-C 충전기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셔터스톡
EU는 애플에 IEC 표준에 기반한 USB-C 충전기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셔터스톡

표준의 역할, 기술이 지속 가능하게

콥스 회장은 11월 7일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서 “기술적 혁신과 함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기술이 안전하게, 또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게 표준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이어 디지털 대전환에 대해 콥스 회장은 “디지털 대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선다.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라며 “여기에는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윤리적 딜레마도 포함된다”고 했다. 그는 또 “디지털 대전환은 사회적 합의와 투명성, 다양성이라는 원칙에 부합하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표준이 필요하고, 전세계의 전문가가 참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콥스 회장은 AI 발전에 따른 표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최근 AI의 발전은 사회적 우려와 윤리적 딜레마라는 새로운 숙제를 부여한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술 전문가 외에도 윤리학자, 변호사, 사회과학자 같은 광범위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노력은 지속 가능하고 보다 공평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양자 기술과 관련한 견해도 밝혔다. 콥스 회장은 “IEC는 양자 기술의 잠재력만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며 “ISO와 협력해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새로운 표준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이혜성 전주대 교수가 공동위원회의 의장을 맡아, 이니셔티브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막강한 양자 기술은 향후 산업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 이라고 했다.

전기차 표준 논의와 관련해서는 “자동차의 기능적 안전과 함께 충전소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런 표준 논의에는 수소차도 포함된다. 전기 인프라부터 자율주행 기술까지 망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I 발전과 디지털 대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국제 표준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며 “기업들 또한 변화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표준화 활동 참여해야 한다”고 전했다. 

윤희훈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