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월 27일(현지시각)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미국을 세계의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월 27일(현지시각)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미국을 세계의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
트럼프 2.0 시대의 암호화폐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조금 더 중요한 질문인 ‘트럼프 2.0 시대에 세계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암호화폐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 당일인 11월 5일(현지시각) 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확실해지자 비트코인 가격은 10%나 급등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기 직전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9만3000달러(약 1억3003만원)를 넘어섰다. 트럼프 정부효율부의 수장으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주 홍보하는 도지코인은 선거일 이후 140% 상승했다.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시가총액은 11월 12일(이하 한국시각) 처음으로 3조달러(약 4194조6000억원)를 돌파했다. 이에 따라 국내 투자자의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그럼, 이제 암호화폐 시장이 2022년 ‘테라· 루나 사태’의 오명을 씻고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일까.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중 가장 큰 규모였던 FTX가 파산해 수많은 투자자 피해를 야기하고, 내부 통제 실패의 스캔들을 남겼던 시절은 끝난 것일까. 암호화폐 업계 최고의 적대자로 여겨지는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암호화폐를 향한 규제의 칼날은 사라지는 것일까. 트럼프의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발언과 마찬가지로, 전통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023년 말, 미국 대선 예비선거가 가시화되자 암호화폐 업계는 상황을 역전할 기회를 정치권에서 포착했다. 바로 트럼프였다. 이후 트럼프는 암호화폐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임을 이야기하고, 온라인에서 그는 자신의 가족이 지원하는 탈중앙화 금융 프로젝트인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orld Liberty Fi-nancial)을 홍보했다.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에서 미국을 “세계의 비트코인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겐슬러 위원장을 해고하겠다고 말했으며, “이제부터 규칙은 여러분의 업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지난 7월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트럼프는 암호화폐위원회를 새로 조직하여 운영한다고 약속했는데, 리플(Ripple), 크라켄(Kraken), 서클(Circle), a16z를 포함한 수많은 암호화폐 회사가 이 위원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첫 상무부 장관에 지명된 하워드 러트닉의 투자회사가 자금 세탁 연루 의혹을 받는 암호화폐 업체 테더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는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로비스트는 선거기간 암호화폐 업계에 호의적인 의회 후보를 지원하는 데 1억달러(약 1398억20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종합해 보면 트럼프 가족을 포함한 참모진에 대한 암호화폐 업계의 영향력이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암호화폐 정책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건, 트럼프의 트레이드 마크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할 것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암호화폐 가격의 상승만 보고 개인투자자가 시장에 대규모로 참가하는 유일한 국가가 있으니, 바로 한국이다. 비트코인 상승이 주요 언론사에 매일 보도되고, 이에 대해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는 한국 개인투자자의 주식직접투자 비중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주식시장 거래량에서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한국이 64%, 미국과 일본이 30%, 독일이 15%, 영국이 6%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개인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주식과 위험 자산에 대해 공부하고, 거래 결정을 직접 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선진국의 경우 개인은 투자 자금을 연금 상품에 맡겨 간접 운영한다. 선진국의 경우 개인이 위험 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만 왜 이런 걸까. 국내에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하고, 근속 연수도 길지 않은데, 은퇴 이후 복지 체계가 취약하다. 집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국내 주식시장은 지배주주 위주로 돌아가 만년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다. 이런 상황에서는 암호화폐 투자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내년 암호화폐 과세에 항의하는 한 20대 투자자는 “청년은 이거 하나만 바라보고 기회라고 생각해서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우리 청년이 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를 만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암호화폐 과세 유예가 자기에게 유리할지 말지만 계산하는 정치인을 보고 있자니 개탄스럽다.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량은 11월 21일에서 25일 사이에 100% 증가했다. 2021년 트럼프가 비트코인을 ‘달러에 대한 사기’라고 말했던 사실은 잊혔다. 우리 청년의 소중한 자산이 트럼프 같은 일관성 없는 정치인의 말에 좌우될 생각을 하니 우리 사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