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석의발효연구소의 한영석 대표가 직접 만든 누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대표는 고문헌 속 전통 누룩을 복원해 우리 술을 빚는 명인이다. /조선비즈
한영석의발효연구소의 한영석 대표가 직접 만든 누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대표는 고문헌 속 전통 누룩을 복원해 우리 술을 빚는 명인이다. /조선비즈

일본의 전통 술인 사케와 우리 술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쌀과 물, 누룩(효모)만을 이용해 술을 만든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런데 맛을 보면 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사케와 우리 술을 명확히 구분할 정도로 다르다. 특히 우리 술은 쌀과 물, 누룩만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술마다 개성이 천차만별이다.

이런 차이는 ‘누룩’의 종류에서 온다. 누룩은 된장을 만드는 메주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밀이나 보리, 쌀 같은 전분질 원료에 자연의 곰팡이가 배양된 발효제가 누룩이다. 일본의 사케는 누룩 중에서도 ‘입국’이라고 부르는 발효제를 쓰고, 우리 술에는 ‘누룩’이 쓰인다. 누룩과 입국의 차이는 균의 다양성에 있다. 입국은 인위적으로 하나의 균주만 자라게 한 것이다. 반면 누룩은 자연환경에서 배양하면서 공기 중 곰팡이나 효모, 유산균 등 다양한 야생 미생물이 자라게 한다. 

입국은 하나의 균주만 있기 때문에 향이 단조로워 알코올과 향을 내기 위해 별도로 효모를 첨가한다. 우리 술에 쓰이는 누룩은 다양한 미생물이 공존하면서 맛과 향을 내기 때문에 따로 효모를 첨가할 필요가 없다. 김혜련 한국식품연구원(이하 식품연) 전통식품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일본 입국은 한 균주만 자라게 하기 때문에 맛이 단조로운데, 우리 누룩은 다양한 미생물이 내는 효소 덕분에 복잡 미묘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우리 술의 차별화 포인트 ‘누룩’

누룩은 어떻게 만들까. 국내에서 전통 누룩으로 가장 유명한 한영석의발효연구소의 한영석 대표를 만나 직접 전통 누룩 빚기를 지켜봤다. 한 대표는 국내 최초의 누룩 명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는 2020년 7월 한 대표를 ‘전통 발효 누룩 명인’ 1호로 지정했다.

한 대표는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드는 누룩이 아니라 고문헌 속의 전통 누룩을 복원한다. 녹두와 찹쌀이 2 대 1의 비율로 들어가는 백수환동국 같은 전통 누룩이 대표적이다. 전라북도 정읍의 한영석의발효연구소 한쪽에는 한 대표가 직접 만드는 누룩을 보관하는 발효실이 있다. 이제 막 성형한 누룩은 아직 곰팡이가 피지 않아 새하얀 모습 그대로다. 

우리가 아는 누룩의 모습을 갖추려면 발효실을 거쳐야 한다. 발효실은 섭씨 20도가 넘는 온도에 습도가 80%가 넘는다. 한 대표는 초복 정도 날씨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가 만드는 누룩은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90일간의 계절 변화를 45일로 줄인 발효실에서 발효한다. 일반적인 누룩 발효 기간이 20일 정도인데, 한 대표의 전통 누룩은 두 배 이상 길다. 한 대표는 “발효 기간을 늘려서 곰팡이의 진행 속도를 늦추면 향이 더 좋아지고, 발효취를 없앨 수 있다”며 “전통 누룩은 곰팡이의 진행 속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발효실을 거친 누룩은 표면에 곰팡이가 피면서 다양한 효소가 모인다. 이 효소는 누룩의 전분만 분해하는 게 아니라 단백질이나 비타민 같은 여러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한 대표는 밀이나 보리, 쌀로만 누룩을 만들지 않고, 옥수수, 조, 수수, 감자, 고구마 등 수많은 곡류를 이용한다. 곡물 종류에 따라 누룩으로 빚는 술의 맛과 향도 달라진다.한 대표는 “누룩은 변수가 많은데, 이 변수에서 다양한 맛과 향이 나오는 것”이라며 “우리 술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일본 사케나 중국 고량주같이 알려진 술과 차별화해야 하는데, 그 차별화의 포인트가 누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한영석의발효연구소는 전통 누룩을 복원해 우리 술을 빚고 있다. 사진은 한영석의발효연구소 내 발효실. 누룩에 곰팡이 균주가 내려 앉아 있다. /조선비즈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한영석의발효연구소는 전통 누룩을 복원해 우리 술을 빚고 있다. 사진은 한영석의발효연구소 내 발효실. 누룩에 곰팡이 균주가 내려 앉아 있다. /조선비즈

누룩 연구 지원, 턱없이 부족

누룩은 입국과 달리 인위적으로 균주를 접종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수많은 미생물이 자리 잡는다. 문제는 누룩에 있는 어떤 미생물이 어떤 맛과 향을 내는지 정확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술이 없거나 부족한 건 아니다. 전통 누룩의 미생물을 연구하는 김 식품연 책임연구원은 “전국에 있는 큰 누룩 공장이나 시골 오일장을 누비면서 300종이 넘는 누룩을 수집해서 그 안의 미생물을 분리하는 연구를 10년도 전에 이미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식품연은 단순히 누룩을 수집만 한 게 아니라 고문헌 속 전통 누룩을 복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복원한 누룩을 보급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식품연은 누룩에서 과일 향을 내는 효모인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Saccharomy-ces cerevisiae) 98-5’를 찾아내 유전자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는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로 유명하다. 식품연이 찾아낸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는 기존에 알려진 효모와 차이가 있었다. 맥주를 만들 때 주로 쓰이는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 S288C’와 비교해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 98-5’는 향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다르다. 

이런 미생물은 지역에 따라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울과 대전, 대구와 포항에서 만들어진 누룩은 같은 제조법을 쓰더라도 다른 미생물이 확인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누룩 속 미생물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김 책임연구원은 “2~3년 전에 전통 누룩 20~30종을 수거해서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는데 과거와 비교해 줄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기후와 환경 변화가 누룩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고 말했다.

정부의 예산이나 지원만 있다면 누룩 속의 다양한 미생물을 찾아내 체계화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관련된 연구 사업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지금은 양조 현장에서 일일이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술에 어울리는 누룩의 맛과 향을 찾아야 한다. 식품연 우리술연구센터는 연구팀으로 축소됐다가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 전통식품연구단소속으로 몇몇 연구자가 누룩과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개별적으로 이어 나갈 뿐이다. 우리 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는 별개로 공적인 연구 환경에서는 술을 터부시하는 모순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술을 터부시하는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 탓에 술을 내세운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며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술에 유용한 특정 미생물을 분리하고 개량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졌지만, 연구 예산이 없다 보니 관련 연구가 모두 멈춰 있는 상태” 라고 설명했다. 한영석 대표도 “미생물에서 만들어지는 향은 맡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인공적인 가향보다 발전 가능성이 크다”면서 “문제는 어떤 미생물이 어떤 향을 내는지 정확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