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좌구명(左丘明)은 춘추시대 말 노(魯)나라 역사가로, ‘춘추좌씨전’과 ‘국어(國語)’ 의 저자로 알려졌다. ‘국어’ 초(楚)나라 편에서는 “초재진용(楚材晉用)”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초나라의 인재를 진(晉)나라에서 쓴다’는 뜻이다.
초나라 강왕(康王) 시절 초거(椒擧)라는 사람의 아내가 죄를 짓고 도망치자, 왕은 초거에게 죄를 물으러 했다. 처벌이 두려웠던 그는 초나라의 경쟁국인 진나라로 도망갔는데, 도중에 채성자(蔡聲子)라는 권력자를 만나 하소연했다. 채성자는 초나라의 재상 자목(子木)을 찾아가 인재 유출을 경고했다. “이는 구기자나무, 가래나무, 가죽이 초나라에서 나오지만 모두 내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재목이 초나라에서 나와도 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若杞梓皮革焉 楚實遺之 雖楚有林 不能用也).” 자목이 그의 말을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초거의 죄를 묻지 않기로 하고 그를 불러들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작년 한국 유입 이민자는 8만7100명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증가율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국가다. 출산율이 감소하는 국내 실정으로 보면 반가운 뉴스로 들린다. 그런데 이들 이민자는 주로 노동자나 유학생이다. 후자는 순수 학업이 목적일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학생 수 감소로 고통을 받는 지방 대학 등을 중심으로 ‘유치된’ 유학생이다. 진정한 고급 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고급 두뇌의 유출 현상은 두드러진다. 작년 미국이 석·박사급 이상 한국인과 그의 가족에게 발급한 취업 이민 비자는 5684건이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 이주자가 매년 평균 약 3500명 정도라는 걸 고려하면, 대부분이 고급 두뇌와 그 가족이다. 더구나 인구수 대비 발급 비자 수는 한국이 인도나 중국의 10배가 넘는다. 지난 10년간 해외로 나간 이공계 석·박사급 인재는 9만6000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우려스러운 건 최첨단 분야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인공지능(AI) 인재 40%가 해외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한재미용(韓才美用)’, 즉 한국이 키워놓은 인재를 미국이 갖다 쓰고 있는 형국이다.
인재는 ‘질’이 나가도 ‘양’은 들어오는 양상인데, 자본은 질과 양이 모두 문제다. OECD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ODI)는 234억달러(약 32조7178만원)이나, 해외 기업의 국내 직접투자(CFDI)는 불과 39억달러(약 5조4530억원)로, 여섯 배 차이를 보였다. 지난 5년간 평균 두세 배였는데, 그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간접투자도 상황이 심각하다. 최근 한 경제 언론 분석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 14일까지 한국과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10종목의 평균 투자수익률은 각각 6.3%, 52.1%로, 여덟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미국 자본이득세를 제하고도 연초부터 급등한 원·달러 환율을 감안한 수익률 격차는 7.5배로 나타났다. 이러니 ‘서학개미’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오나 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1월 13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017억달러(약 142조1969억원)로 사상 최대다. 작년 말과 비교해서는 약 50%가 늘었고, 2022년 대비 2.3배 수준이다. 연초부터 11월 14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 증시 거래액(매수·매도 합)은 574조원을 넘어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국내시장(코스피) 거래액의 4분의 1 수준까지 올랐다. 요즘 국내 증시가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 이해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순 대외 금융자산(해외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은 9월 말 현재 9778억달러(약 1367조1600억원)로, 3개월 만에 1194억달러(약 166조9450억원) 늘었다. 국내 주식 투자자의 미국 증시 집중 투자의 결과다. 전망도 안 좋다. 가상화폐에 호의적인 트럼프 당선 후 비트코인 및 그의 당선과 관련이 큰 테슬라 등의 주가는 신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두뇌와 자본이 유출되는 원인은 확실한데, 그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지난 약 20년간 진보,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기업 및 자영업 활동에 대한 규제 및 제재의 끈은 더욱 옥죄어 왔다. 최저임금은 계속 올랐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주 52시간 근무 등은 ‘사업하기 힘든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특히 지난 정부는 정책 실패로 집값을 잔뜩 올렸고, 가계 빚을 폭증시켰다. 그런 데다 재산세·건강보험료 등 세 부담을 늘려, 서민과 중산층뿐 아니라 비교적 고소득, 고자산 계층도 빚과 세 부담으로 ‘쓸 돈’이 별로 없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한 ‘희망 실종’ 상황으로, 이것이 두뇌와 자본 유출을 야기한 근본 원인이다. 그러나 큰 기대를 받고 출범한 현 정부도 의대 정원 및 영부인 관련 문제 등으로, 여소야대 국면에 발목이 잡혔다. 증시 부양책이라도 내놓는 등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현 경제팀은 별 존재감이 없다. 경제팀 개편부터라도 시작해 볼 일이다. 만약 한국이 캐피털이든 휴먼 캐피털이든 ‘머리’를 잡는 노력을 뭐라도 당장 시작하지 않는다면 미래 한국 경제의 위상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상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