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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기후변화협약은 ‘공동의, 하지만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이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타결됐다. 이에 따라 모든 국가는 각국 여건을 반영한 국가 감축 목표(NDC)를 수립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에 따라 EU로 수입되는 주요 제품에 탄소 비용을 부과한다. 

CBAM은 EU로 제품을 수출하는 국가에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함으로써,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인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각국의 감축 여건과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아 차별화된 책임 원칙과 상충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한 비관세 무역 장벽이라는 비판도 있다.

EU CBAM은 EU가 시행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Emissions Trading System)’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EU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되는 ETS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ETS 규제를 피해 EU 생산 업체가 해외로 이전하거나, 탄소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고탄소 제품 수입이 늘어나 EU 업체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입 제품에도 EU 생산 제품과 동일한 탄소 비용을 부과하기 위해 CBAM이 도입됐다. CBAM은 2023년부터 수입 제품에 대한 배출량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돼 탄소 비용을 부과하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도 EU CBAM과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는 법안은 청정경쟁법(CCA·Clean Compe-tition Act)이다. CCA는 미국 민주당에서 발의한 법안이나 국내 언론에서는 미 양당이 모두 지지해 통과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CCA는 EU CBAM과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EU는 ETS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의 탄소 규제가 부재하다. 따라서 CCA를 통해 미국 내 생산 업체와 수입 제품 모두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게 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라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또 다른 법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외오염세법(FP-F·Foreign Pollution Fee Act)은 미 공화당에서 발의한 법안이다. 이 법안에서 오염 물질(Pollution)이란 온실가스를 의미한다. CCA가 미국 내 생산 업체와 수입 제품 모두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FPF는 수입 제품에만 국한해 탄소 비용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CBAM과 CCA는 원산지에서 탄소 비용을 이미 지불한 경우 이를 차감하도록 하나, FPF에는 이러한 조항이 없다. 또한, CBAM과 CCA는 제품에 포함된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탄소 비용을 부과하도록 하는 반면, FPF는 제품 가격에 관세를 매기는 방식을 채택한다. 대상 품목 또한 매우 특이하다. CBAM과 CCA가 일반적으로 고탄소 제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FPF는 여기에 추가적으로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광물 등의 제품도 포함한다. 

2023년 수출액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은 중국(19.7%), 미국(18.3%), EU (10.8%), 베트남(8.5%), 일본(4.6%) 등이다. EU CBAM만으로는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미국이 CCA나 FPF를 도입할 경우, 글로벌 탄소 규제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EU CBAM 대응을 위해 현재 정부에서는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배출량 산정 및 검증 지원, 원스톱 상담 창구 운영 등의 지원 사업을 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탄소 집약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전략적인 관점에서 이 같은 글로벌 탄소 규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5월 30일 여의도에서 정부 부처 및 유관 기관과 함께 ‘CBAM 중소기업 대응 정부 합동 설명회’를 개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중앙회는 5월 30일 여의도에서 정부 부처 및 유관 기관과 함께 ‘CBAM 중소기업 대응 정부 합동 설명회’를 개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탄소 다배출 업종 감축 지원 확대, 에너지 믹스 개선 등 고려해야

첫 번째 대응 방안은 다배출 업종에 대한 감축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다배출 업종인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정유 등의 기업은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 정서 때문에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중소 및 중견기업에 지원이 집중돼 있다. EU는 산업계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기 위해 배출권 유상 할당 수입금을 활용해 혁신 기금(Innovation Fund)을 운용하고 있다. 2021년부터 2024년 11월까지 총 125개 사업에 72억5000만유로(약 10조5000억원)가 지원됐는데, 이 중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재생에너지, 수소, CCS 분야에 90% 이상을 지원했다. 사업 한 건당 지원 금액도 평균 840억원 수준이다. 지원받은 총 284개 기업 중 중소기업은 37개 사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에 지원됐다. 

우리나라도 EU처럼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감축 효과가 큰 다배출 업종과 혁신 기술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에너지 믹스 개선과 함께 ‘전력배출계수(tCO2eq/㎿)’ 관리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스코프1·2·3로 구분하는데, 현재 논의되는 글로벌 탄소 규제는 대부분 스코프1·2를 규제하고 있다. 

가치 사슬 배출량인 스코프3의 경우에도, 해당 공급망 배출량을 스코프1·2로 구분할 경우, 스코프2가 상당 부분 차지할 수 있다. 스코프2는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에 따른 배출량인데, 기업의 전력 사용량(㎿)과 전력배출계수를 곱하여 산정한다. 즉, 스코프2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력 사용량을 줄이거나 전력배출계수가 낮은 전기를 구매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전력배출계수가 ‘0’인 재생 전력을 구매하는 것 이외에는 한국전력에서만 전기를 구매할 수 있고, 그렇다면 국가의 전력배출계수를 사용해야만 한다.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 - 카이스트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 - 카이스트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현재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전력배출계수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력배출계수다. 1㎿당 0.46tCO2eq 수준으로, 2014~2016년의 평균값이고, 매년 고정값을 사용한다. 한국전력에서 공급하는 전기의 전력배출계수는 원전·석탄·LNG·재생 등 에너지 믹스에 따라 매년 변동되나, 전력배출계수가 매년 변동될 경우, 기업은 배출권거래제에서 의도치 않은 인센티브 또는 페널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노후 석탄 발전소의 폐쇄가 증가하고 있어 전력배출계수가 크게 하락하고 있으나, 정부는 매년 새로운 전력배출계수를 공표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력배출계수가 활용됐던 곳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매년 변동되는 전력배출계수를 공표해, 기업이 기후 공시나 글로벌 탄소 규제에 따른 배출량을 산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