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투어리즘과 도시 브랜딩
‘콘텐츠 투어리즘’은 도시 이야기를 풀어내는 도시 브랜딩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 콘텐츠를 통해 도시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도시의 매력이 재발견될 때 도시는 다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된다. 콘텐츠 투어리즘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음식 등 특정 콘텐츠를 매개로 사람이 그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가는 특별한 여행이다. 사람은 이야기가 펼쳐졌던 장소를 직접 걸으며, 그곳에서 새로운 감정과 경험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그 지역과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콘텐츠 투어리즘을 발전시킨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콘텐츠 투어리즘을 ‘콘텐츠를 통해 형성된 지역 고유의 분위기와 이미지에 이야기성(narrative quality)과 테마성을 더해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의 에노시마는 만화 ‘슬램덩크’의 주요 배경으로, 콘텐츠 투어리즘의 대표적 사례다. ‘슬램덩크’ 는 에노시마 지역의 실제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에노덴(江ノ電) 기차가 달리는 철길과 바닷가 장면은 애니메이션 도입부에 등장해 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슬램덩크’ 팬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장소를 실제로 방문하는 성지순례를 한다. 지역 상인은 이를 활용해 ‘슬램덩크’ 관련 상품을 제작하거나, 작품 속 장면을 재현한 사진 촬영 장소를 제공한다. 인증샷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면서 관광객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참여하는 주체로 변화하며, 지역은 관광지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브랜드 자산을 강화하는 콘텐츠
브랜드 자산은 소비자가 브랜드명을 인식함으로써 제품이나 서비스에 가지게 되는 긍정적인 반응의 차별적 효과를 뜻한다. 강한 브랜드가 가지는 이점이다. 브랜드 자산은 ‘인지’와 ‘연상’ 두 요소가 기본이다. 브랜드가 힘을 가지려면 ‘사람이 잘 알고(인지)’ 또 ‘강렬한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는(연상)’ 것이 필수다. 인지는 두 종류다. ‘들으니 알겠다’도 인지다. ‘묻기 전에 떠올리는 것’도 인지다.
도시 브랜드의 경우, 고민되는 상황은 사람이 그 도시를 알아도 쉽게 떠올리지는 못할 때 발생한다. ‘들어는 봤으나 떠오르지 않는 곳’이 되는 경우다. 떠오르게 하려면 특정한 상황이나 소재 등의 에피소드와 연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우 하면 떠오르는 횡성, 인삼 하면 금산이 좋은 예다. 하지만 특산물로만 떠오르게 되면 한계는 분명해진다. 소비 욕구는 자극해도 방문 욕구를 강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콘텐츠로 접근해야 한다.
콘텐츠와 도시가 연결되면 브랜드 자산의 출발점인 인지가 강화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지역이 아니어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람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낸다면, 방문객은 그 도시를 단순한 장소가 아닌 특별한 경험의 장으로 기억하게 된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생소했던 ‘자라섬’이라는 이름을 단번에 전국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알렸다. 전에는 들어 보지도 못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재즈’ ‘음악’ 하면 바로 떠오르는 곳이 됐다. 축제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며 가평군 전체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음악이라는 콘텐츠가 그리고 콘텐츠 투어리즘이 도시 브랜딩에 얼마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절실함이 낳은 사가현의 브랜딩
사가현(佐賀県)은 일본 규슈 북서부에 있는 인구 80만 명의 현으로, 현청 소재지는 사가시다. 일본인이 가장 안 가본 현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작고 특색 없는 곳이었다. 사가현은 스퀘어 에닉스의 인기 게임 시리즈인 ‘로맨싱 사가(Romancing SaGa)’와 협업해 콘텐츠 투어리즘을 통한 도시 브랜딩에 착수했다. 2014년의 일이다. 이유는 하나다. 게임 이름 사가와 사가현의 사가가 같다는 것이었다. 게임 이름의 사가(saga)는 ‘서사극’ ‘영웅 일대기’란 뜻이지 지역명 사가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다. 절실했던 사가현에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사가’를 사람에게 각인해 쉽게 떠오르는 지역이 되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사가현은 로맨싱 사가의 이름과 세계관을 활용한 전시회를 개최했다. 게임 배경지와 실제 지역을 연결한 퀘스트도 제공했고 지역 상품과 게임 캐릭터의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출시했다. 게임 팬이 사가현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직접 경험이 많아지면서 지역 인지도는 높아졌고, 관광객 유입으로 이어졌다. 올해 말부터는 로맨싱 사가 컬래버 10주년 행사가 열릴 예정이기도 하다.
2018년 사가현은 또 다른 브랜딩을 선보였다. 사가현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좀비랜드 사가’를 방영한 것이다. 죽었던 소녀를 좀비로 되살려 아이돌로 만든다는 설정의 이야기다. 좀비랜드 사가에서의 ‘사가’는 일대기란 뜻이 아니라 사가현의 사가를 의미한다. 좀비랜드 자체를 사가현으로 설정했으니까. 애니메이션 배경은 실재 사가현이다. 유명한 우레시노 온천 마을이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을 리가 없다. 이제 온천 마을에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모이고 있다. 팬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사가현의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며 성지순례를 즐기고 있다.
유머를 브랜딩으로, 김천의 김밥축제
설마 했다. 10월 말 경북 김천시에서 김밥축제가 열렸을 때 하필이면 소재가 왜 김밥일지 생각하다가 설마 이건 아니겠지, 하고 들었던 생각이다. 짐작이 맞았다. 김밥천국 때문이었다. 김천시는 올 상반기 관광 트렌드 관련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 2010년생)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김천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는 질문에 응답자 3분의 2 이상이 ‘김밥천국’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김천시는 특별히 화려하거나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김천’이 ‘김밥천국’의 약자로 쓰이는 것에 김천시는 주목했다. 이것을 콘텐츠로 만들고 콘텐츠 투어리즘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도시 브랜딩을 펼친 것이다. 유머를 브랜딩으로 승화한다는 역발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김밥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