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투쟁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조용한 혁명이 CEE 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CEE 국가는 활력 넘치는 혁신 허브로 부상하며 새로운 유니콘을 잇달아 배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화 기술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은 루마니아의 유아이패스(UiPath)는 반복적인 작업에서 직원을 해방하며 업무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폴란드의 독플래너(Docplanner)는 AI를 활용해 수백만 명의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며 헬스케어 서비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① 크로아티아의 인포빕(Infobip)은 AI 접목으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개선해 기업과 정부, 국민 간의 상호작용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도우며, 불가리아의 페이호크(Pay-hawk)는 비용 관리 절차를 간소화해 기업 재무관리를 혁신한다.
이들 기업은 AI가 헬스케어와 금융 부문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끌고 업무 생산성을 높여 강력한 개선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 주요 기술혁신은 폴란드 바르샤바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대학 연구소, 또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코워크 스페이스(작은 공간과 업무에 필요한 부대시설을 대여해주는 일종의 공동 사무실)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서방 국가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가능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 같은 혁신의 물결이 이 지역이 직면한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어려움이 혁신의 촉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CEE 역내 국가는 자동차 제조 등 전통 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EU의 예산 규정 개정으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가중된 재정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는 사이 공급망과 핵심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서 ② AI를 활용한 허위 정보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위협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가중되고 있다.
AI 관련 기술은 CEE 국가가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보건 및 교육 등 전통적 공공 분야에서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며 외부 간섭을 차단하고 중요한 에너지 관련 네트워크를 보호하도록 도울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CEE 국가가 첨단 기술 분야의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을 갖춘 것은 고무적이다. 이 지역에는 엔지니어와 ③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 졸업생이 많다. 2017~2022년 역내 기업의 가치 총합은 일곱 배 넘게 증가했다. CEE로 들어오는 투자액 중 EU 역외 투자 비중이 2022년 9%에서 2023년 21%로 상승한 것은 이 지역의 국제적인 매력이 커졌다는 유력한 증거다.
물론 극복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CEE 국가는 인프라와 투자 측면에서 서유럽 국가에 뒤처져 있다. CEE역내 인구는 1억5000만 명 이상이고, 국내총생산(GDP) 총합은 약 2조5000억유로(약 3661조5000억원)에 달해,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사모펀드 투자액은 2023년 한 해 40% 감소하면서 17억유로(약 2조4898억원)에 그쳤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스타트업을 설립하려는 시도가 자전거 부품으로 우주선을 조립하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거시 관점에서 경제관리를 약화하고 협력과 투자 의지를 꺾을 수 있는 포퓰리즘 정당의 부상은 또 다른 심각한 도전이다. 많은 CEE 역내 국가가 재정 압박을 지출 삭감이 아닌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인상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장기적 경제 안정보다 단기적인 안도감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도 문제다.
AI의 혁신적 잠재력을 적극 활용해 지역 경제성장과 혁신을 이루는 것이 보다 미래지향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CEE 국가는 세 가지 중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정책 입안자는 STEM 교육을 확대하고 인재 유출을 방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 지역이 ‘차세대 실리콘밸리’로 도약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숙련된 전문가 부족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전도유망한 바이오테크, 금융, 로봇공학 스타트업이 수백 개 등장했지만, 견고한 인재 풀 없이 이들은 유니콘 등극은 고사하고 성장을 지속할 수도 없다. 교육이공공재로 간주되긴 하지만, CEE 국가의 느린 개혁 속도를 감안할 때 민간 부문 역시 인적자원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유럽 통합을 심화해 아이디어와 인재, 자본의 국경을 넘나드는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개발자에게 첨단 AI 훈련에 필요한 연산 능력, 데이터 등을 제공하는 ‘AI 팩토리’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또한 몇몇 CEE 국가는 다른 유럽 국가 정부와 조직적인 기술협력 모색을 통해 공통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둔 분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확대해야 한다. 지난 2년 동안의 지정학적 혼란과 그에 따른 사모펀드 유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놀라운 회복력을 과시해 왔다. CEE 경제가 우크라이나 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투자를 저해할 수 있는 인프라 격차, 자금 부족, 규제의 불확실성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이 지역의 매력을 높이는 것은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5G(5세대)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양자 컴퓨팅 시설 등 디지털 인프라 프로젝트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같은 도전에 직면한 CEE 국가가 AI의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재능 넘치는 세대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① 인포빕은 글로벌 클라우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제공 업체로, 2006년 크로아티아에서 설립된 후 현재 전 세계 75개국에서 800여 개의 통신사와 협력 중이다. 인포빕은 기업과 고객이 직접 소통하고, 거기서 생겨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비즈니스를 가능케하는 것을 기치로 내세우는 기업이다. 고객 서비스 솔루션을 통해 글로벌 통신사와 협업으로 기업과 사용자가 장소와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도 진출해 지사를 두고 있다.
② 유튜브에 딥페이크 영상을 올리고 가짜 언론 사이트를 만들어 기사화한 뒤, 포섭한 인플루언서를 이용해 살포하는 건 러시아가 펼쳐 온 정보전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2022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자’고 말하는 가짜 영상·음성이 퍼졌던 게 대표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배우자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를 노린 딥페이크 공격도 있었다. 젤렌스카 여사가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약 15억원 상당의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 보석을 샀다는 허위 게시물이 온라인에 퍼지는가 하면, 조작된 여권 사진과 함께 대통령 부부가 조국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탈출하려 했다는 헛소문도 떠돌았다.
③ STEM 교육은 이들 네 분야를 융합해 학생이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비판적 사고 등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교육 모델이다. 디지털 기술,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로봇공학, 자동화 등 기술 발전은 직업 시장에서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술적 이해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가 각광받고 있으며, 이런 능력을 키우는 데 STEM 교육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STEM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 도입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6년 STEM 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학교 현장에서 STEM 교육을 강화하고, 학생에게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