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직후의 일이다. 모 부처에서 차관급 기관장을 지낸 적이 있는 이, 모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이와 나, 이렇게 셋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됐다. 편의상 전자를 A, 후자를 B로 부르기로 하자. B가 다짜고짜 화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돌렸다. “최근에 믿을 만한 정보에 의하면, 군 내부에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일부에서는 군부 쿠데타설까지 나돈다고 하네.”
깜짝 놀란 A와 나는 그 이유가 뭔지 물었다. B는 말했다. “대통령실을 국방부와 상의 없이 용산으로 옮긴 데 대해 불만이 팽배하다네. 게다가 국방부 전용 건물을 대통령실과 공유하다 보니, 밀집도가 높아지면서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인 모양이야!” B의 대답을 듣자마자 A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의 질책성 발언을 전혀 예상도 못 했나 보다. B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문제는 B가 그냥 별다른 식견 없는 필부도 아니고, 명문대 인문학 관련 교수로 자기 분야에서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는 중견 학자라는 것이다. 유언비어에 불과한 소리를 듣고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우매한 사람이 아니다.
만일에 B가 오늘처럼 일반 정치사회 문제에서 보여주는 정도의 식견으로 학자적 삶을 살아왔다고 치자. 과연 B가 자기 학문 분야에서 지금 같은 실력 있는 학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그가 평소에 이렇게 상식 이하 수준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논문을 집필해 왔다면, 그는 지금처럼 인정받는 학자가 결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명민한 학자인 B는 대체 왜 유독 일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합리적 이성이나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격’으로 보이는 것일까. 나는 B가 왜 저런 식의 발언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굳이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B와는 오래 알아 온 사이여서, 그의 일면이 아니라 전모를 파악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에 부합한 정보는 적극 수용, 반대는 단호히 거부
B 같은 저런 행태를 심리학에서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으로 설명한다. 에코 체임버를 직역하면, ‘메아리가 울리는 방’이다. 누군가 무슨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벽에 반사돼 되돌아오는 방이라는 말이다. 사회적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여서 자기 신념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강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당연하게도 자기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나 의견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나 의견은 단호히 거부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박한 마음으로 끼리끼리 모였다 해도, 이런 환경에서는 특정한 신념이나 이념이 지속적으로 강화된다. 이렇게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화된 집단은 외부 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당연하게도 그 집단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하는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을 보인다. 서로 같은 생각만을 나누면, 기존 신념은 더욱 강화되고 반대 의견에는 더욱 적대적으로 된다. 비판적 사고나 이성적인 판단은 사라진다. 결국에는 집단에서 주어지는 정보만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하향 평준화가 이뤄진다.
그렇다면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군중의 일원으로 변해버린 이런 사람에게 일방적인 정보나 의견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자는 누구일까. 그를 사회심리학자는 데마고그(demagogue)라고 부른다. ‘선동가’로도 번역되는 데마고그는 논리적 토론보다는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이다. 그는 대중이 가진 불만이나 공포를 이용해 지지를 끌어낸다. 그러고는 사람을 편 가른다. 남의 편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가지게 해 내 편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우리 편의 단결을 위해서는 상대편을 악마화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데마고그는 외면상으로는 특정 집단의 ‘구원자(savior)’ 혹은 ‘진정한 대표자’ 행세를 한다. 데마고그가 유도한 공포나 불안에 사로잡혀 이성이 마비된 군중은 그들이 만들어낸 정책이나 주장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했는지에는 관심도 없다. 이제는 가짜 뉴스인지 아닌지 가릴 의사도 능력도 없어진다. 자기 직업이 단순 노무직이건, 대학교수이건 상관없다. 다만 우리를 구원해 줄 대표자가 복잡한 문제를 극도로 단순화해서 알기 쉽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극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니, 군중은 이에 열광하고 그에 부합하는 정치적인 행동만 보여주면 그만인 것이다. 사이비 종교 교주에게 추종하는 사람 중에 지성인이라고 할 사람이 적지 않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정치판 데마고그는 ‘가짜 구세주’
도박판에 전문 사기꾼 ‘타짜’가 있다면 정치판에는 데마고그가 있다. 타짜나 데마고그는 둘 다 참가자나 대중을 교묘하게 속여 철저히 자기 잇속을 챙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짜는 도박판에서 진짜 패를 숨기고 가짜 패를 사용하는 등 온갖 사기술로 상대방을 속인다. 데마고그는 거짓 정보나 왜곡된 주장을 퍼뜨려 대중을 속인다. 자기주장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여론조사 같은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를 조작하기도 한다. 드루킹 사건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직접 여론조사 기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데마고그도 있다.
우리 인류는 다수에 동조하는 본능이 있다. 데마고그는 인간 심리를 심리학자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잘 활용한다. 여론조사가 다수의 의견을 확인한 뒤에 자기 생각을 바꾸거나 더욱 견고하게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론조사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인다. 데마고그가 데이터나 숫자가 주는 권위 효과(number’s au-thority)에 사람이 압도당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데마고그의 궁극의 목적은 정치적 어젠다를 설정(agenda setting)하고 이 어젠다로 프레이밍(framing)을 하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단순히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는 도구가 아니다. 특정 어젠다나 이슈를 강조하고프레임을 설정하면, 대중은 그에 따라 정치적 행동에 돌입한다. 여론조사의 질문 방식이나 이슈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사람의 인식이나 반응이 바뀌는 것 역시 프레이밍 효과다.
도박판의 타짜나 정치판의 데마고그는 자기가 판을 짜고, 그렇게 짠 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린다. 타짜나 데마고그는 진실과 공정성을 희생시켜서 공익이 아닌 사익을 챙긴다는 ‘가짜 구세주(psuedo-saviour)’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판에 뛰어든 사람은 사이비 교주에게 재산을 갈취당하는 무지한 교도처럼, 자신이 자기가 영웅처럼 떠받드는 타짜나 데마고그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