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발(發) 보편 관세(10~20%)가 현실화할 경우 2025년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1% 중반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한국 경제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쇼크’라는 겹악재가 터졌다. 비록 윤 대통령이 12월 3일 밤 선포한 비상계엄령이 국회 의결로 6시간 만에 해제되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국회의 대통령 탄핵 추진등으로, 정치 불안 장기화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주의 발전 등 그동안 장점으로 인정받았던 한국 정치·경제 시스템의 안정성이 취약해졌다는 점은 중장기적으로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정치 불안으로 인한 리스크는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메리트를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혼란에 대한 책임으로 대통령실 수석 비서관 이상, 국무위원 등 최고위급 당국자들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2025년 1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격변하는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고 관세 부과 등을 협의해야 할 정부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뜩이나 트럼프발 경제 쇼크에 취약하다는 한국 경제의 대응력이 약해질 경우, 성장률 추락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금융시장 쇼크, 성장률 추가 하락 가능성
11월 28일 연 3.25%였던 기준금리를 3.00%로 0.25%포인트 인하한 한국은행은 2024년과 2025년 GDP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2%와 1.9%로 0.2%포인트씩 하향 조정했다. 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1.8%로 제시했다. 한국은행의 전망대로라면 윤석열 정부 5년간의 연평균 성장률은 1.98%로, 역대 정부 처음으로 2%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런 전망은 그나마 낙관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자국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구상이 실현되는 것을 반영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
한국은행은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와 이에 대한 중국 등 주요국 대응으로 글로벌 무역 갈등이 격화할 경우, 한국 경제의 내년 성장률은 0.2%포인트 (추가) 하락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1.9%로 전망한 2025년 성장률이 1.7%까지 둔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12월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충격이 경제 불확실성을 증폭하면서 1% 중·후반대 성장마저도 낙관적인 전망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 의결로 6시간 만에 비상계엄령이 해제됐지만, 금융시장 충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 신뢰도 하락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12월 4일 새벽 1446원까지 급등한 원· 달러 환율은 계엄 해제 후 상승 폭이 조정됐지만, 12월 6일에도 1420원대로 치솟았다. 사태 이전인 12월 3일 오후 3시 30분 거래 가격(1402.9원) 대비 20원 가량 올라간 수준이다(원화 가치 하락). 이 같은 원·달러 환율 흐름은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기인 2009년 3월 이후 15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 등이 지속하면서 코스피 지수는 12월 4일 1.44% 하락한 데 이어, 12월 6일은 장중 2400선이 무너지는 등 후퇴를 거듭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 압력이 커지면서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환 전략가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최근의 정치적 혼란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한국 증시의 투자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증시 밸류업(value up·가치 제고)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도했다.
S&P "비상계엄, 'AA' 국가로서 예상 못 한 일"
문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안정된 선진 시장’으로 인정받았던 한국 경제의 평판을 ‘밸류 다운(value down·가치 저하)’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자회사 S&P글로벌은 12월 4일 보고서에서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와 신속한 해제는 신용등급 ‘AA’ 수준의 주권 국가로서는 매우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하룻밤 사이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투자자의 정치적 안정성에 대한 인식을 약화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 금융, 재정, 신용 지표가 받은 충격이 명확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투자 심리 정상화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분위기는 ‘한류(韓流)’ 등으로 대표되는 무형자산인 국가 브랜드 가치를 하락하게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외무부가 12월 3일(이하 현지시각) 밤 “한국 방문 필요성을 재검토해 보라”고 하는 등 자국민에게 방한 자제 권고를 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한국 여행 시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장소는 피할 것을 권고하는 여행 자제 관련 경보를 발령했다. 이런 움직임은 내수 경기 부진을 다소나마 완충해 준 외국인 등 비거주자의 국내 소비 증가세가 꺾이게 할 수 있다. 2023년 1분기 171만 명이었던 방한 외국인이 2024년 3분기 442만7000명까지 증가하면서, 비거주자의 국내 소비지출이 같은 기간 2조9800억원에서 5조3000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최근의 정국 불안이 세계적으로 부각되면서 증가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졌다.
"정부 공백으로 기업 부담 더 커질 수도"
비상계엄 사태가 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흘러가면서, 한국 정부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등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대만 등 주변국은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관세 부과 등에 대한 협의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타진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대외 협의 창구를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은 미국 제조 기반 시설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약속이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투자 계획 수립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 정부 보조금 등은 개별 기업 차원으로는 대응이 어려워 정부 차원에서 차기 미국 정부와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정국 불안으로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