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이 개발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사실은 개발자 한 명이 대여섯 명분의 일을 할 수 있게 돼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는 AI를 활용하고 AI의 코드를 검증할 수 있는 기초 역량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임성수 그렙(Grepp) 대표에게 AI 시대 개발자의 역할을 묻자 그는 “컴퓨터과학에 대한 원천 지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코드 설계 능력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임 대표는 1세대 개발자 출신으로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도 맡고 있다. 임 대표는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펼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개발자와 달리 자기소개서 작성, 영어 공부 등 ‘스펙 쌓기’에 집중하는 데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개발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아 취업으로 이어지게 해주면 이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임 대표는 2016년 카카오 초기 멤버 출신인 이확영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그렙을 창업했다. 개발자가 역량 개발에 집중하고 기업은 이들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평가·채용 플랫폼 ‘프로그래머스’를 개발해 선보였다. 서비스 9년째인 지금은 네이버, 카카오 같은 정보기술(IT) 기업뿐 아니라 SK, 현대차, LG 등 대기업 그룹사와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이 개발자 채용 시 그렙의 솔루션을 활용한다. 이 때문에 그렙은 개발자 채용 시스템을 역량 위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렙은 여기서 나아가 교육·평가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DX)을 꿈꾼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세계 곳곳에서 온라인 시험이 새로운 표준이 되어 가고 있는 점에 착안해, 2020년 4월 AI 기반 온라인 시험 감독 솔루션 ‘모니토’를 선보였다. 모니토는 고용노동부 직업능력개발원이 승인한 국내 유일의 테스팅 플랫폼이다. 임 대표는 “한 번에 2만 명의 응시자까지 수용할 수 있다”며 “이는 전 세계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해외 진출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를 최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렙은 개발자 취업 시장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코딩 교육 회사를 운영하던 당시, 게임 플랫폼을 운영하던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 이확영 CTO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나라는 개발자 성장을 위한 토양이 잘 다져져 있지 않다’는 데 뜻을 모았다. 무얼 바꿔야 우리나라 학생도 실리콘밸리 개발자처럼 꿈꾸고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단 학생을 실리콘밸리에서 일해볼 수 있게 하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 같아, 2015년에 현지 인턴십 프로그램을 학교에 만들었다. 총 100명 가까이 실리콘밸리에 보냈는데 학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스펙 쌓기보다는 개발 실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봤다. 그렇다면, 국내 개발자도 오로지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학생의 목표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답은 채용 시스템의 변화에 있었다. 개발자 채용에서 학벌과 자격증이 가장 중요시되던 시기, 그렙은 역량 평가 서비스(코딩 테스트)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카카오가 2017년에 서류 평가 전 코딩 테스트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대기업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개발자 역량을 특히 중요시하는 회사는 역량 평가 100%로 개발자를 선발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스펙 쌓기보다 코딩 연습에 더 집중한다. 그렙이 국내 개발자 채용 환경을 역량 중심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그렙의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방금 소개한 역량 평가 서비스에 코딩 교육과 개발자 채용 솔루션을 한 개의 플랫폼으로 모은 것이 프로그래머스다. 개발자 생애주기별 솔루션을 제공하는 올인원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번지면서 오프라인 역량 평가에 제한이 생기게 됐다. 선진국에서는 원격으로 시험을 실시한다는 것을 알게 돼, AI 원격 시험 감독 솔루션 모니토를 개발했다. 모니토는 코딩 테스트뿐만 아니라 모든 시험 콘텐츠를 감독할 수 있다. 현재 국내 1위 온라인 시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그렙은 프로그래머스를 통해 역량 평가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역량 평가를 위한 시험 플랫폼(모니토)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엔데믹 이후엔 시험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전환됐을 것 같은데.
“온라인 시험을 유지하는 곳이 의외로 많다. 특히 기업 채용 시험의 경우 더 그렇다. 오프라인 시험은 비용이 많이 든다. 시험 장소를 빌려 감독관을 보내고, 시험지를 인쇄해 나눠주는 일까지 모든 것이 비용이다. 시험지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까지 있다. 응시자가시험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대기업 채용 시험의 경우 지방 응시자는 하루 이틀 먼저 올라와 숙소에 머무는 일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비용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은 오프라인 시험을 선호하지 않는다.
해외는 온라인 시험이 더 활발하다. 운전면허 자격증 필기시험의 경우,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는 팬데믹을 계기로 온라인 시험으로 전환돼 유지 중이고, 간호사 자격시험, 변호사 자격시험도 온라인으로 본다. 민간 자격증 시험의 절반은 온라인 시험으로 전환됐다고 한다. 온라인 시험은 이미 대세다.”
원격 감독 기술이 발전할수록 커닝 기술도 발전한다. 커닝은 어떻게 잡아내나.
“우선 AI가 응시자의 눈동자 움직임을 추적해 화면을 보는지 화면 밖을 보는지를 판독한다. 또 손가락이 (시험지 기입 내용과 같은 글자) 타자를 치고 있는지, 다른 일을 하고 있는지도 볼 수 있다. 응시자의 화면도 AI가 분석하기 때문에 다른 창을 띄워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험 환경을 엄격히 제어하는 방법도 있다. 근처에 응시용 컴퓨터 이외에 다른 모니터가 있으면 안 되고, 블루투스 키보드는 이용할 수 없는 등 제약을 두는데, 이를 벗어나면 커닝으로 간주한다.
또 모든 시험 과정은 응시자 컴퓨터 화면과 소리가 모두 녹화·녹음된다. 실시간으로 커닝을 잡아내지 못하더라도 저장된 자료로 사후에 잡아낼 수 있다. 창과 방패의 끝없는 싸움에서 어떻게든 승리하려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모니토의 대표적인 도입 사례는 무엇인가.
“대표적인 국내 사례로는 한국공인회계사회의 AT(Accounting Technician) 시험이 있다. 해외에선 아직 도입 완료된 사례가 없지만 곧 국제 공인 영어 시험인 지텔프(G- TELP)에 모니토가 도입될 예정이다. 관련 계약을 지난 6월 체결했다.”
한국은 해외보다 온라인 시험 도입이 상대적으로 더디다.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관료주의가 강하다. 새롭게 무언가를 도입했을 때 이로 인한 이익보다는 사고 발생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온라인 시험으로 전환을 반기지만, 정작 실행력은 떨어진다.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면 커닝 때문에 공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도 큰 것 같다.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자격시험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면 봇물 터지듯 줄줄이 전환될 것 같은데 아직 거기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다만 전환 움직임은 많이 보인다. 외국인이 주로 응시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경우 교육부가 올해 온라인 전환을 결정했다.”
그렙의 궁극적 목표는.
“전 세계 누구나 모니토를 통해 필요한 자격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이용자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단기적으로는 3년 뒤 국내 기업공개(IPO)를 위해 재무적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다. 2025년이 글로벌 진출의 신호탄을 쏘는 해가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