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트럼프 2기 정부가 가할 최대한의 압박에 직면하기보다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변화시켜 자국에 유리한 구도를 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이란은 트럼프 2기 정부가 가할 최대한의 압박에 직면하기보다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변화시켜 자국에 유리한 구도를 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직 복귀는 전 세계 많은 나라에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둘러싼 고민과 계산은 여러 나라에서 바쁘게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된 미국의 대외 관계 원칙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를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할 것인지에 따라 전 세계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것이고,그 첫 번째 무대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이 될 것이다.

이란에 각종 제재 가한 트럼프 1기

트럼프 복귀에 대해 가장 부담을 갖게 된 국가는 이란이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 동안 버락 오바마 정부 시기 이란과 체결했던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CPOA)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각종 제재를 통한 ‘최대 압박’ 을 가했다. 이란에 대한 유화적 태도는 이란에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간만 벌어줄 뿐이며 결국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는 것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영구적으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따른 미국의 노선 변화는 긴장 수준을 높였고, 양국의 긴장은 2019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에서 사망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이란은 2020년 1월 핵 합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협상을 통한 이란 핵 문제 해결 가능성은 사라졌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란은 미국에 대한 강경 노선을 유지했다. 미국 역시 이란에 대한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계속 유지했지만 제재 집행 강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긴장을 완화했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이 2022년 하루 254만 배럴에서 2024년 360만 배럴로 대폭 증가한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미국의 암묵적 태도 변화에도 이란은 핵 개발과 미국에 대한 강경 노선을 대외적으로 계속 고수했다. 이란 내부적으로는 장기화한 제재에 따른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최고 종교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가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면서 양국의 직접적인 협상이나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이란의 입장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배후에 있는 이란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에 대한 공격에 이어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테헤란을 방문한 하마스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하는 등 공세를 이어갔다. 이란은 두 차례의 미사일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10월 말까지만 해도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보복을 준비하는 등 강경 노선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지만, 트럼프의 당선은 이란에 노선 변화를 고민하게 했다.

이란은 대외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에 대해 비공식적인 경로로 트럼프의 진의를 확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1월 중순 헤즈볼라에 대해 휴전을 수용하도록 레바논에 고위 관계자를 파견했으며, 이란의 주유엔(UN) 대사는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를 면담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더해 11월 29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럽 국가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회담을 진행하는 등 화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란의 태도 변화는 대내외적 상황 변화에 따른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국민적 불만이 팽배하면서 상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개혁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란 리얄화의 가치 폭락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에 더해 겨울철이면 반복되는 전력과 에너지 부족 문제가 이란을 힘들게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해 충격과 놀라움이 작용하고 있다. 이란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양성해 왔던 이스라엘 포위망의 핵심 세력인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해 이스라엘이 광범위한 공격을 통해 빠르게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을 과소평가했다는 내부적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미국에 대해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란 고위 관리가 이란이 핵과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와 협상할 의향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1기 동안 협상을 거부한 것을 고려해 보면 이란의 입장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이란 향한 트럼프 불신 계속, 선제적 변화도

이란은 계속된 확전을 도모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미국이 제어해 전쟁을 끝내도록 하는 것을 자국 안보에 있어서 가장 핵심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동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주범이 이란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이스라엘은 이란과 직접적인 충돌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정보력과 군사력에 위협감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핵심 국가가 이란을 멀리하고 이스라엘에 대해 보다 우호적 관계를 원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공격적인 태도에 위협감을 느끼고 이란과 협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이스라엘을 자제시키지 않으면 이란 및 중국과 관계 강화를 도모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을 이해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요청한 홍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때 앙숙이던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트럼프 정부와 직접적인 대화나 협상 이전에 중동 평화를 위해서는 이란의 역할이 중요함을 미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란을 어렵게 하는 것은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 반이스라엘 단체와 관계다. 이란은 오랜 기간 광범위한 반이스라엘 세력을 결집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 행동을 반복해 온 이들 세력의 입장 변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는 결국 이란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이들 단체에 대한 지지 철회 내지 지원 축소를 결정할 경우 이스라엘과 미국에 굴복했다는 내부 강경파의 반발은 물론 중동 전체적으로 위신이 추락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최악의경우에는 미국과 관계 개선이나 이스라엘과 대결 구도 해소는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지역 내 영향력 축소와 이란 내부의 극심한 갈등만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바이든 정부 시절 같은 현상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 노선을 무조건 고수하다가 트럼프 2기 정부가 가할 최대한의 압박에 직면하기보다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변화시켜 자국에 유리한 구도를 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란은 보고 있다. 이런 구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트럼프의 이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감과 적대감을 해소해야 한다. 이란은 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내 국가와 관계 개선을 카드로 활용하려 하지만 이스라엘 역시 친이스라엘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명하는 트럼프 핵심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할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란의 의도대로 상황이 진행될지는 불분명하다. 다시 중동이라는 무대가 복잡해지고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