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다이어트에 ‘넘기 어려운 벽’이 있었다. 체중 감량을 10% 이상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단기간에 10% 이상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체중을 1년 후까지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체중이 줄면 우리 몸이 이를 비상사태로 생각해 생리학적으로 기초대사량을 줄이고 식욕을 향상해 체중을 원상으로 복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벽을 깨는 ‘꿈의 약’이 나타났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위고비’라는 이름으로 낸 ‘세마글루타이드’다.
이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계열 약물이다. GLP-1 유사체 계열 약물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몸에 있는 GLP-1 호르몬을 화학적으로 살짝 바꾼 것이다. GLP-1과 비슷한 기능을 하되 오랫동안 몸속에 머문다.
GLP-1 호르몬은 식사 후 소장에서 분비돼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소화 속도를 늦춰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심장과 혈관을 튼튼히 하고, 면역 세포에 결합해 면역 기능을 향상하고 염증을 억제해 다양한 염증성 질환을 억제하고, 뇌의 보상 체계에도 관여해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도 예방해 준다. 하지만 몸속에서 2분 만에 사라진다.
세마글루타이드 전에 노보 노디스크는 이 시간을 약 24시간까지 늘린 리라글루타이드(상품명 삭센다)를 내놨다. 매일 주사하면 체중을 6~8% 정도 감량하는 효과가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후에 머무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 길며 체중 감량 효과도 훨씬 큰 약물인 세마글루타이드를 내놨다.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하는 것만으로도 체중을 약 15.3% 줄일 수 있다.
임상시험 결과,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환자의 69.1%는 체중이 10% 이상 줄었다. 50.5%는 체중이 15% 이상 줄었다. 심지어 3분의 1인 32%는 체중이 20% 넘게 줄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체질량지수(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비만)이거나, 27~30㎏/㎡이고 고혈압, 고지혈증, 전당뇨병, 지방간이 있는 환자에게 처방된다.
세마글루타이드가 꿈의 약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체중 감량을 넘어 다양한 질병에서 예방, 치료 효과를 내서다. 혈압을 떨어뜨리고 고지혈증을 교정하며, 지방간을 없앤다. 특히 당뇨 전 단계인 사람이 세마글루타이드를 맞으면 당뇨병 위험이 50% 줄어든다. 반면 가짜 약을 맞은 사람은 당뇨병 위험이 70%로 늘었다. 최근에는 세마글루타이드가 협심증, 심부전 환자의 사망 위험을 낮춰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뇌 염증을 줄여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신경 퇴행 질환 위험도 줄인다.
물론 한계도 있다. 속이 울렁거리거나 설사, 변비 등 위장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 경미하고 계속 투여하면 증상이 사라진다. 또한 체중 감량이 빨리 강하게 나타나므로 어지럼증, 탈수 증상이 올 수 있고 아주 드물지만 담낭염이 생길 수 있다.
세마글루타이드의 가장 큰 한계는 투여를 멈추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요요 현상’이다. 따라서 주사를 맞더라도 적절한 식사량과 규칙적인 운동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당연히 의사의 관리하에 투여해야 한다.
세마글루타이드가 등장하며 비만은 의사의 관리하에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관리하는 질병이 됐다. 비만 치료의 새 시대를 열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양한 GLP-1 유사체 약물이 임상시험 중이거나 이미 마치고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어떤 약은 식욕 조절뿐만 아니라 기초대사량도 증가시켜 세마글루타이드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더 뛰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있고, 주사가 아닌 경구 약(먹는 약)도 있다. 향후 이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효과적인 약물이 나오게 되면 쉽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비만을 치료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