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단통법이라 부르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여당과 야당, 정부 모두 단통법 폐지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말 여야가 합의한 단통법 폐지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둔 상태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단통법이 폐지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단통법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법이다. 특히 시장 내 마케팅을 제한하는 규제법은 사실상 단통법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통신 시장에서 요금, 품질 경쟁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보조금 경쟁마저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다수의 전문가가 단통법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다. 유통점을 거치지 않고 자급제폰을 구입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것도 단통법 유지의 근거를 약화시키고 있다. 모두가 폐지를 원하는 단통법은 왜 만들어졌고, 어떤 문제로 폐지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단통법이 폐지될 경우 어떤 효과가 나타나게 될까.
차별적 단말기 지원금 왜곡 잡기 위해 도입
2014년 제정된 단말기 유통법의 제정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불투명하고 차별적 단말기 지원금 지급으로 인해 소비자 후생 배분이 왜곡되는 것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즉, 단말기 지원금은 모든 이용자의 요금 수익을 바탕으로 재원이 마련되지만, 지원금 지급이 일부 이용자에게 집중되어 이용자에 따른 차별이 심했다는 것이다. 동일한 단말기 구입자 간에도 가입 유형(번호 이동, 기기 변경 등), 구입 시기 및 장소 등에 따라 지원금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다.번호 이동에 수반되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단말기를 빈번하게 교체하는 경우가 늘면서 불필요한 가계 통신비 증가와 자원의 낭비를 초래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이런 이유로 제정된 단통법은 이용자의 가입 유형, 요금제, 거주 지역 등의 이유를 원인으로 한 통신사의 부당한 차별적 지원금 지급을 금지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동통신 단말장치별 지원금의 지급 요건 및 내용에 대하여 공시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 됐다. 이와 더불어 특히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은 기존 고객에게도 지원금에 상응하는 할인을 제공하도록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런 입법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이용자 차별이 대폭 해소됐고, 가계 통신비가 줄어 가구 소비지출 구성 중 통신비 비중이 단통법 시행 전 6.0%에서 법 시행 후 5.2%로 감소한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선택 약정 할인 제도 도입과 요금제에 비례한 지원금 지급으로 고객의 사용량에 맞는 요금제를 선택하는 등 합리적 통신 소비가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여전하다. 보조금 경쟁이 사라져서 이용자의 단말기 구입 부담이 커졌다. 보조금과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면서 통신사의 영업이익만 증가했다. 정부의 단통법 폐지 발표 이유 중 하나가 통신사와 유통점 간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고, 국민이 저렴하게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단통법이 경쟁을 막고 있어 소비자의 단말기 구매 부담이 가중됐다는 것이 단통법 폐지의 근거다.
통신비에는 통신 요금뿐만 아니라 단말기 구입 비용도 포함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통신 서비스 요금은 전반적으로 낮아졌으며,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품질 대비 요금은 저렴한 수준이다. 11월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디지털 경제 전망 보고서 2024에 따르면, 음성·문자·데이터 사용량 기준 한국 통신 요금이 OECD 38개국 중 10번째로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성 서비스만 놓고 보면 2번째로 저렴했다. 다만 단말기 구입 비용이 계속 증가하면서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 통신비 추이를 살펴보면, 2014년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비용은 2013년 월평균 8172원에서 2023년 2만7945원으로 10년 새 3.4배 늘었다. 원인은 스마트폰 가격이다. 2013년 89만원이던 스마트폰은 2024년 115만원으로 20% 넘게 비싸졌다. 고성능 프리미엄폰은 대당 가격이 2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단통법 폐지에도 소비자 부담 완화 달성 어려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한 단통법 폐지 및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신사가 지원금을 받지 아니하고 통신 서비스에 가입하려는 이용자에 대해 (지원금을 대신하여) 요금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도록 한다. 둘째, 통신사가 이용자의 거주 지역, 나이 또는 신체적 조건을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적인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한다. 셋째, ‘중고 단말 안심 거래 사업자 인증제’ 도입 등 중고 단말 활성화 조성 근거를 신설한다. 넷째, 통신사·단말장치 제조 업자의 판매량, 지원금, 제조사별 장려금 등에 대한 자료 제출 근거를 마련한다.
그런데 단통법을 폐지하면 기대한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지난 3월 정부는 번호 이동에 지원금을 더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 지원금 정책을 시행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통신 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이동통신 3사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마케팅 출혈 경쟁을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통법을 폐지하더라도 소비자가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을지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통신사가 인공지능(AI)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기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통법 폐지로 인해 짚어봐야 할 문제도 있다. 먼저 이용자와 판매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예전처럼 ‘호갱’이 속출할 수 있다. 고가의 단말기 구입에 따른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될 수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다. 또한 단통법 폐지로 보조금 무한 경쟁이 이뤄지면 자금력이 부족한 알뜰폰은 경쟁이 어렵게 되어, 정부의 경쟁 활성화 정책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될 수 있다.
단통법이 폐지된다고 해도 단말기 가격이 바로 인하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삼성과 애플 독과점 체제로 바뀌면서 제조사의 장려금 비중이 크게 줄었으며, 특히 애플은 판매 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 삼성도 판매 장려금을 늘릴 명분이 없어졌다. 통신사와 제조사 모두 지원금이나 판매 장려금을 지원할 유인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 할인 등 혜택 강제 조항은 더욱 장려금을 줄일 유인이 될 수 있다.
단통법 폐지 취지는 공감하지만 소비자 후생, 보조금 지급 여력이 부족한 알뜰폰 사업의 미래, 통신 유통업 종사자의 생계 등 단통법 폐지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폐지 이후의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통신 서비스는 통신사가 판매하고, 단말기는 제조사가 판매하는 방식인 단말기 자급제 도입과 중고폰 판매 활성화를 포함한 단말기 시장의 경쟁 활성화 방안 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단통법 폐지에 따른 대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단통법이 폐지된다고 해도 경쟁 활성화로 인한 소비자 부담 완화라는 통신 정책 목표 달성은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