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기후 위기를 감지할 만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기후 환경이 후덥지근한 아열대로 바뀌면서 재배하는 과일 색깔이 변화하는 일도 생겼다. 제주에선 ‘초록 귤’이, 대구·경북에선 ‘노란 사과’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확실하다.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목표로 정책 지원과 투자를 확대하는 그린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EU는 지난해 10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전환 기간을 시작해 탄소 배출량에 따른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CBAM은 2026년 전면 시행된다. 미국은 올해 기업이 자체적으로 탄소 저감 계획을 제시하도록 하는 기후 공시를 의무화했다.
글로벌 벤처 투자자는 일찌감치 기후 테크에 주목했다. 기후 테크는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수익을 창출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혁신 기술을 의미한다. 재생에너지, 탄소 포집, 폐기물 절감 기술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을 줄이는 대체 식품과 기상 정보를 사업화하는 우주·기상 기술 등이 기후 테크에 포함된다.
국내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함께 수익 창출을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사 중심으로 기후 테크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사가 소풍벤처스다. 소풍벤처스는 2020년 말 국내 최초로 기후 테크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결성하며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지난 3년 동안 투자 금액의 절반을 기후 테크 기업에 쏟는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큰 문제는 큰 시장으로 연결되며, 곧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기회로 이어진다”는 소풍벤처스의 최경희 파트너를 11월 25일 만나 향후 기후 테크 산업의 성장성과 투자 전망에 대해 물었다. 최 파트너는 내년 1월 공식 출범할 소풍벤처스의 액셀러레이터(AC) 신규 법인 소풍커넥트의 신임 대표로 자리를 이동할 예정이다.
올해 11월 기준 기후 테크 스타트업 66개 사에 투자했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기후 테크 기업에 투자하는 것 같다. 사실상 기후 테크 투자가 전무하던 시절부터 주목한 계기가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기후 테크에 투자하자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해외에서는 국내에 기후 테크라는 키워드가 뜨기 전부터 벤처캐피털 업계 주도로 환경 분야에 상당한 금액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었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투자사와 스타트업도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내에도 몇 년 안에 기후 테크라는 메가 트렌드가 올 것이라고 보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내 VC 업계는 ‘클럽 딜’ 형태의 공동 투자를 주로 진행한다. 소풍벤처스가 기후 테크에 투자를 시작할 때는 정보를 공유할 만한 투자사가 없었을 텐데, 어떤 식으로 발굴했나.
“기후 테크 투자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펠로십(fellowship)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창업 아이디어가 있는 연구개발(R&D) 인력을 찾았다. 당시 접수된 200건이 넘는 논문을 전문가 멘토링을 받아 가며 전부 공부했다. 기후 영역 관련 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기후 테크 스타트업을 소개받기도 했다. ‘월간 클라이밋’ 이라는 기후 테크 관련 세미나를 진행하는 등 엄청나게 발품을 팔았다. 기후 테크 관련 생태계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전략을 통해 딜 소싱을 진행했다.”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기후 테크 산업의 스타트업 대부분은 초기 기업이다. 좋은 창업자를 찾는 방법이 있을까.
“액셀러레이팅은 창업자의 삶을 자세히 파악해 강점과 약점은 물론 방어기제까지 모두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액셀러레이터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코칭 가능성이다. 피드백을 제시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어야 발전 가능하다. 창업자가 주관은 있되 조언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다. 반대로 말하면, 자본만 필요한 창업자에게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 변화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성과가 함께 나타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불황 때는 투자자와 출자자가 지갑을 닫게 되고 숫자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가 시장에 와닿았다고 생각한다. 올해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기준을 발표했고, 한국거래소가 상장 심사를 하는 항목 중 하나로 ESG를 활용하고 있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회적 가치에 신경 쓴다는 이야기다. 사회적 가치가 규제라는 형식으로 자본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소풍벤처스가 지역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까.
“창업 방식이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서울의 공유 오피스에서 개발자가 회사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아이디어와 공장이 있는 지역 기업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혁신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인구 감소와 산업 위축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각 지역에 맞는 특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벤처 펀드를 조성하는 등 정책 지원에 힘쓰는 상황이다. 기후 테크는 실증이 필수인데, 수백억원에 달하는 장비를 지역 거점에 설치하며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런 디바이스와 연구가 필요한 스타트업은 결국 지역으로 움직일 것이다.”
기후 테크 산업의 성장성이 궁금하다.
“최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에 대한 위기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기후 테크는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밖에 없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시대적 요구로 인해 기후 테크라는 용어를 쓰지만, 사실 에너지와 소재·부품·장비, 식품 등 다양한 산업을 모두 포함하는 폭넓은 분야다. 더 나아가 기후는 인간 생활과 밀접하다. 얼마 전까지도 벚꽃이 펴 주변 사람이 모두 이상하게 보더라. 사람은 변화를 감지할 때 위기를 느낀다. 이제 기후 테크는 단순한 투자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기후 테크에 대한 투자는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기후 테크 투자 사례를 소개해 달라.
“우리가 시드 단계부터 현재까지 후속 투자를 진행하는 에이트테크가 있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AI) 기반 폐기물 선별 로봇으로 자원 순환 분야의 혁신을 이끄는 기업이다. AI 폐기물 광학 선별 로봇 ‘에이트론’을 개발해 국내 최초로 민간과 공공 재활용 선별장에 공급하는 등 상용화에 성공했다. 에이트론은 지난 7월 유엔(UN) 산하 기구인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글로벌 어워즈에서 국내 기업 최초로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소풍벤처스가 시드 투자를 진행한 후 후속 라운드에서 전략적 투자자(SI)를 유치한 ‘식스티헤르츠’도 대표적인 투자 사례다. 자본 집약적이고 여러 차례의 실증이 필요한 기후 테크 기업 특성상 기업과 협업을 통한 밸류업이 중요한데, 현대건설을 투자자로 확보하면서 선도적인 포지션을 구축하게 됐다. 태양광·풍력발전소 약 8만 개의 발전량을 확인하고 예측하는 ‘햇빛바람지도’는 현재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 등 기관 3000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