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폐업 식당에 임대 문의가 게시돼 있다 / 뉴스1
서울 시내 한 폐업 식당에 임대 문의가 게시돼 있다 /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탄핵 논란에 유통 업계는 당분간 소비 심리가 급속도로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12월 10일 서울 마포구 일대 주류 공급을 담당하는 한 주류 종합 도매상에 따르면, 지난 주말(12월 7일) 이후 소주와 맥주 주류 주문량은 예년보다 25%가량 줄었다. 주류 도매상은 주류 제조사에서 받아온 소주·맥주 등을 식당·주점 등에 납품한다.

이 같은 소비 위축이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유통 업계의 우려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견디기’와 ‘타격 최소화’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치권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유통 업체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 당시의 매출 동향을 다시 분석하고 있다. 12월 3일 밤 갑자기 내려진 비상계엄령이 6시간 만에 해제되고 윤 대통령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어서다.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는 경기 어렵다”

당장은 소비 심리 위축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부터 백화점, 주류, 식품사까지 유통 업종에서 반사이익을 보는 쪽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사업 타격을 지금 당장 숫자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여파가 최소한 내년 1분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12월 4일엔 그저 황당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자는 정도로만 회의가 끝났다가 5일부터는 시나리오 분석 수준의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내년 2분기는 돼야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탄핵이건 아니건 불안정한 상황이 끝나야 큰 피해가 없다”면서 “국제 이슈로 번진 만큼 이해관계가 있는 해외 관계자를 안심시키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 동향도 비슷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박 대통령의 탄핵 정국 때 급속도로 떨어지다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나서야 바닥을 치고 좋아졌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정치적 불안정성이 해소돼야 소비 심리가 살아난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 추동력은 2016년 10월 말에 시작됐다. 

이전까지도 정쟁이 치열했지만,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린 최순실씨의 태블릿 PC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시발점이 됐다. 이때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는 102였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기준점 100보다 높으면 낙관론이, 낮으면 비관론이 우세한 것으로 본다. 상황은 11월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정 농단 의혹이 확산하고 박 대통령의 탄핵 목소리가 거세지자,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5.7로 떨어졌다. 정쟁이 계속되면서 소비자심리지수는 더 얼어붙었다. 바닥을 찍고 방향을 바꾼 건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서부터였다. 1월 소비자심리지수(93.3)가 바닥을 찍고 2월부터 조금씩 나아졌다. 2016년 10월 수준에 다시 근접하기까지는 바닥을 찍고 넉 달이 걸렸다.

8년 전 소비자심리지수, 탄핵소추안 통과 후 개선세로 전환

문제는 비상계엄령에 따른 국정 혼란이 없을 때도 기업이 내년 상반기 경제 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왔다는 점이다. 선제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비핵심 자산 매각에 나섰던 것은 내년 상반기 혹한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버티기 강도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환율이다. 유통 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재선된 이후 최고 1450원대 수준에 무게를 두고 내년 사업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국정 혼란에 따라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 수준이 더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원화 가치가 낮아진다는 뜻이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데, 식료품 원재료를 상당 부분 수입하고 있어 부담이 크다”고 했다.

국내 자산을 해외 투자자에게 매각하려는 사업 부분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외 매수자가 투자 의향을 접거나 미루는 양상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정치적 불안정성을 협상의 영역에 끌어들여 매수 가격을 낮추려 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비상계엄령은 6시간 만에 끝났지만 이에 따른 혼란이 이어지면서 경제·산업 부문에 멍울이 점점 커지는 양상” 이라면서 “복잡한 정치 계산법이 있겠지만 온 국민이 정치에 매몰되는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Plus Point

“계엄 대가, 할부로 치를 것”…외신들 韓 경제 우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비상계엄 선포 대가를 5100만 한국인이 앞으로 할부로 치러야 할 것이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에 12월 6일(이하 현지시각) 실린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의 칼럼 일부다. 페섹은 이번 계엄 선포를 ‘윤석열의 절박한 스턴트 쇼’로 규정하면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킬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튿날 “한국의 주식시장이 인공지능(AI) 붐을 만끽하고 있는 주요 기술 경쟁국인 대만에 더욱 뒤처질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대만 경제권이 모두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인상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많은 투자자는 대만이 덜 취약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2월 5일 보고서에서 “수출 둔화와 D램 가격 하락이 이어지며 한국 기업의 실적 하향 사이클이 지속될 수 있다”며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펀더멘털(기초 여건)은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모건스탠리는 “불확실한 정책 환경을 고려할 때, 탄핵 가능성과 대통령 교체가 경제에 대한 가계와 투자자의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내수·투자 활동의 하방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한국 경제가 대외 충격에 휩쓸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평가도 있다. 올 들어 한국 경제는 4월 한 달만 경상수지 적자(-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을 뿐, 10월까지 월평균 75억달러(10조7190억원) 정도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11월 현재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4154억달러) 방파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2004년(1630억달러)과 2016년 (3750억달러)보다 높게 쌓여 있다.

전문가들은 그렇다 해도 지난 10월까지 8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소매 판매액 지수 등이 보여주는 내수 부진은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연지연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