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는 11월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제12회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HIF)’ 을 열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신경과학의 혁신과 헬스케어의 미래’였다. 이 포럼에서 최신 신경과학 이슈를 주제로 강연한 주요 연사 세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출시된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다이어트약으로 유명세를 탔다. 위고비 덕을 본 사람은 머스크만이 아니다. 위고비를 맞은 사람은 평균 15% 정도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났다. 체중 감량만이 아니다. 심부전이나 심뇌혈관 질환, 수면 무호흡증 등 비만과관련 있는 여러 질환에도 효과가 있었다. 위고비가 비만 치료제를 넘어 만병통치약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위고비가 등장하면서 비만과 싸움이라는 오랜 전쟁에서 인류가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비만을 완전히 정복하는 게 가능할까. 최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열린 조선비즈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특별 강연자로 나선 최형진 서울대 의대 의과학과·해부학교실 교수는 “‘완전히’를 뺀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최 교수는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위고비가 어떻게 식욕을 조절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지 처음 알아낸 과학자다. 개발사인 노보노디스크도 정확하게 모르던 약의 원리를 찾아냈다. 최 교수의 연구 덕분에 위고비는 날개를 달았고, 전자약이나 디지털 치료제와 연계한 새로운 비만 치료법도 나오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6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위고비의 작동 원리를 밝혔다.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을 모방한 물질이다. GLP-1은 1983년 발견됐고, 당뇨병 치료제로 연구되기 시작한 지도 수십년이 됐다. GLP-1이 많아지면 살이 빠진다는 결과는 쥐나 사람 모두에게서 관찰됐지만 그게 우리 뇌의 어디를 통하는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우리 연구팀은 GLP-1이 뇌 시상하부 가운데와 등 쪽에 있는 ‘GMH’라는 신경세포에 달라붙어서 식욕을 조절하는 것을 발견했다.”
시상하부는 입천장 위쪽에 있는 뇌의 영역이다. 자율신경계나 대사 과정(신체 내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곳이다. 체온이나 생체리듬도 모두 시상하부가 조절한다. 최 교수 연구진은 비만 치료제에 들어 있는 GLP-1 호르몬이 시상하부에 있는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GMH 신경세포에 달라붙어 활성화하는 것을 관찰했다. GLP-1 호르몬은 원래 음식을 먹고 장에서 소화될 때 나오는데, 음식을 먹기 전에 호르몬이 작용하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최 교수 연구진이 진행한 ‘치킨 실험’은 GLP-1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준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치킨을 먹게 했는데, 한 그룹에만 비만 치료제를 줬다. 그러자 비만 치료제를 맞은 사람은 치킨을 보거나 냄새만 맡아도 포만감이 높아졌고 실제로 치킨을 조금만 먹고도 금방 배가 부르다고 느꼈다. 가장 배부른 상태를 100으로 표현한다면, 비만 치료제를 맞지 않은 그룹이 치킨을 먹은 뒤 느낀 포만감은 70.6이었다. 그런데 비만 치료제를 맞은 사람은 치킨을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배부름 정도가 71.6으로 올랐다. 치킨을 먹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포만감을 느낀 것이다.
GLP-1이 들어간 당뇨 치료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20년이 지나서 비만 치료제가 열풍을 일으킨 비결은 뭘까.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꾸준한 투자와 연구 덕분이다. GLP-1 유사체가 당뇨 치료제로 나왔지만, 처음에는 하루에 주사를 두 번이나 맞아야 하는 등 먹는 약보다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에 비해 효과는 크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외면받았다. 노보노디스크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당뇨병 대사질환을 정복하겠다는 열정으로 꾸준히 투자하면서 최적화에 성공했다. 지금의 위고비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비만 치료제를 놓고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 같은 글로벌 제약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비만 치료제는 과거 ‘서부 개척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다. GLP-1뿐만 아니라 GIP나 호르몬 유사체를 이용한 비만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옵션이 다양해지고 있다. 큰 제약사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고 있다. 서부 개척 시대에 누군가가 금광 하나를 먼저 발견했다고 해서 다른 금광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후발 주자가 새로운 금광을 찾아 나선 것처럼 비만 치료제 시장도 새로운금광을 찾기 위해 제약사들이 계속해서 뛰어들고 있고, 아직 다양한 옵션에 비해 시장이 포화한 것도 아니다.”
국내 제약사도 가능성이 있을까.
“물론이다. 한미약품은 GLP-1 유사체 계열의 비만 치료제를 연구하는 연구자 사이에서 이미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국내 제약사가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걸 하겠다고 할 때 한미약품은 혁신적인 신약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비만 치료제에 꾸준히 투자했고, 지금은 국내 제약사 중 가장 앞서 있다고 본다. 연구자의 역량도 마찬가지다. 국내 상위급 연구기관과 해외 우수 연구기관 간 격차가 없다고 본다. 20년 전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연구비와 연구자의 능력, 인프라 등이 해외 우수 기관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한미약품은 올해 1월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인 ‘에페글레나타이드’ 국내 임상 3상을 시작했고, 2026년 하반기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HK이노엔은 중국에서 비만 치료제 후보 물질을 도입해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동아에스티, LG화학도 비만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다.
비만 치료제가 많아지면 비만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인류가 비만을 통제할 수 있는 시대는 머지않았다고 본다. 얼마 전 국제 공동 연구진이 초파리 성체의 완전한 뇌 지도를 완성하면서 인간의 뇌 지도를 그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게 됐다. 우리가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수록 GLP-1 같은 호르몬이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아무도 뚱뚱해지지 않고, 아무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 사회는 아니겠지만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 연구도 하고 있다.
“나는 GLP-1 연구자라기보다는 식욕과 비만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GLP-1이 식욕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잘 듣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고,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도 마찬가지로 좋은 도구라고 본다. 한국전기연구원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전두엽 자기장 치료법은 약물을 쓰지 않고 뇌에 전기 자극을 줘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이다. 한 가지 치료법만 쓰지 않고 다양한 치료법을 함께 사용하면 더 효과가 좋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