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또 한 번 위기에 봉착했다. 이번에는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가 자초한 것으로 국가 최고 의사 결정자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령 선포와 수습 과정에서 국정이 마비되면서 치명상을 입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런 혼란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우리 경제의 시계가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해졌다.
우선 이번 위기는 시기상으로도 우리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가 1% 중후반 정도 성장에 그쳐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내수 부문은 장기 침체로 도산과 구조조정에 직면한 기업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고, 자영업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지난 지금까지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 부문은 물가를 못 쫓아 가는 소득, 쌓여가는 빚, 줄어드는 일자리 등으로 고통받은 지 오래다. 더군다나 부동산 시장을 비롯해 자산 시장의 불안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이번 사태로 인해 더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되는데 만약 어느 하나라도 뇌관이 된다면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부정하고 비웃어 왔던 일본화(Japanification·경제의 장기 침체)를 피해 갈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던 외수 부문도 여의찮은 상황이다. 총수출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는 반도체 경기는 이미 하락세로 전환되고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반도체 수출의 약 60%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홍콩 포함)에 대한 미국의 규제 강도와 범위 확대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배터리와 자동차 및 부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및 무역은 물론, 타국에 대한 차별적 지원책 등의 공약이 실천되거나,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 대한 규제 강화가 현실화한다면 미국에 대한 직접 또는 우회 수출 기회가 크게 축소될 수 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상실한 것이다.
당연히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재정과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할 판이다. 재정 정책은 국정 전반의 마비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나마 준비된 것조차도 제대로 추진될지 의문인 상황으로, 당장 추가 경기 부양을 기대하기 어렵다. 통화정책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의 통화정책을 살펴보면, 인플레 목표와 금융시장 안정이 우선으로, 성장은 늘 후순위 고려 대상이었던 것 같다. 재정 당국과는 달리 그나마 독립성을 인정받고 의사 결정도 독립적으로 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통화 당국의 위기 대응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는 많은 위기를 겪어 왔고, 이를 통해 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숙해 왔다. 조금 과장하자면 최근 산업과 기술은 물론 다양한 문화와 사회 현상에 이르기까지 K만 붙으면 세계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위기는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것인 만큼 조속한 수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향후 우리 경제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위해서는 성장 없이 현재와 미래를 논할 수 없고, 그 바탕에는 사회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