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가장 큰 매력은 탁 트인 대자연 속에서 클럽 14개를 활용해 코스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경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규칙을 적용하고 책임을 지게 돼 있다. 그만큼 양심과 에티켓, 룰을 지키는 정신이 중요하다. 골프 룰은 기회와 과정, 결과까지 모두 공정해야 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베테랑 골퍼도 다 알기 어려운 게 골프 규칙이다. 프로 대회의 경우 수많은 갤러리와 대회를 홍보하기 위한 구조물까지 있어 그야말로 별의별 사건이 다 벌어진다. 게다가 골프 규칙은 4년에 한 번씩 큰 틀에서 변화가 있다. 바뀐 규칙을 숙지하지 않으면 나의 행동이 어제는 맞았는데 오늘은 틀릴 수 있다. 2024년 골프 규칙에 울고 웃었던 골퍼들의 이야기를 알아본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26승을 거둔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2월 1일(이하 현지시각) AT&T 페블비치 프로암 대회에서 후방 선 드롭 방법을 위반해 2벌타를 받았다. 대회 1라운드를 스파이글래스힐 골프 클럽(캘리포니아주)에서 치른 매킬로이는 7번 홀(파5) 티샷을 무성한 러프와 숲이 있는 왼쪽으로 당겨치고 말았다. 매킬로이는 1벌타를 받고 언플레이어블 볼 구제를 받아 후방 선 위에 서서 한 클럽 길이 이내 오른쪽에 볼을 드롭했다. 보기로 홀 아웃했지만 최종 스코어는 트리플 보기가 됐다. 후방 선 드롭 방법을 위반해 추가로 2벌타를 받은 탓이다.
2022년까지는 후방 선의 좌우 한 클럽 길이 이내에 볼을 드롭하고 칠 수 있었다. 하지만 2023년부터 볼은 반드시 후방 선 위에 드롭해야 한다고 바뀌었다.
이전 방식대로 드롭한 매킬로이는 잘못된 장소에서의 플레이로 2벌타를 받게 됐다. 매킬로이는 악천후로 3라운드로 축소된 이 대회에서 80명 중 66위로 대회를 마쳤다.
OB 구역으로 가던 볼이 갤러리 맞고 살아 행운의 우승
숲속 OB(아웃오브바운즈) 구역으로 날아가던 볼이 우연히 갤러리를 맞고 살아 역전 우승까지 차지한 행운아가 있다. 202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총상금 9억원)에서 대회 2연패를 차지한 최은우가 그 주인공.
4월 21일 경남 김해시 가야 컨트리클럽 신어·낙동 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3라운드. 정윤지, 박현경과 함께 공동 선두로 출발한 최은우는 1타 차 2위로 운명의 16번 홀(파5)을 맞았다. 최은우가 두 번째 샷을 한 공이 왼쪽 숲속 OB 구역을 향해 날아가다 한번 튀어 오르더니 갤러리를 맞고 다시 경기 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벌타를 면한 최은우는 이어진 17번 홀(파3)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정윤지가 파 퍼트를 놓쳤지만, 최은우가 2m 내리막 버디 퍼트를 집어넣고 8언더파 단독 선두로 뛰어올라 1타 차이로 우승까지 차지했다. 최은우는 이렇게 설명했다. “두 번째 샷이 좀 말렸는데 갤러리가 맞았다. 한 번 튄 공이 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전화를 맞혀서 깨졌다고 하더라. 16번 홀이 우승의 발판이 됐다. 운이 따라준, 다행스러운 순간이었다.”
골프 규칙 11조는 움직이고 있는 볼이 우연히 사람이나 외부의 영향을 맞힌 경우 페널티가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외부의 영향이란 플레이어의 볼이나 장비 또는 코스에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말한다. 즉 내 카트를 맞추거나 갤러리를 맞추거나 내 캐디를 우연히 맞추고 방향이 변경되어 볼이 인바운즈에 정지했더라도 페널티 없이 볼이 멈춘 자리에서 그대로 플레이하면 된다.
갤러리가 들고 있던 물컵에 볼이 빠졌다면
1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의 피트 다이 스타디움 코스(파72)에서 열린 PGA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1라운드. 애덤 솅크(미국)가 16번 홀(파5) 페어웨이 위에서 그린을 향해 친 두 번째 샷이 그린에 못 미친 오른편에서 지켜보던 갤러리가 들고 있던 물컵에 들어가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공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리며 경기를 중계하던TV 카메라도 볼의 궤적을 놓쳤지만, 갤러리 한 명이 들고 있던 물컵을 들어 올리면서 공의 존재가 확인됐다.
물컵에 빠진 이 공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물컵에 공이 최초로 정지한 곳 바로 아래 지면에 구제를 받고 플레이한다. 그 위치가 카트 길이라면 컵으로부터 구제를 마치고 나서 카트 길 구제를 받고 플레이하면 된다.
그린과 그린 바깥의 규칙은 다르다
한국의 장타퀸 방신실(20)은 4월 18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셰브론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뜻밖의 2벌타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주 우들랜즈의 더 클럽 앳 칼턴 우즈에서 열린 이 대회에 방신실은 세계 랭킹 40위 이내 자격으로 KLGPA투어 선수 중 유일하게 출전했다. 방신실은 5번 홀(파4) 그린 경계선에 떨어진 볼 앞에 큰 디봇 자국이 있자 퍼터로 눌렀다. 동반자의 이의 제기로 경기 위원을 불러 확인한 끝에 디봇이 그린 밖에 있다고 판정돼 라이 개선으로 인한 2벌타를 받아 트리플 보기를 기록했다. 퍼팅 그린에서는 허용되는 행동이지만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아쉬운 실수였다. 방신실은 “그린을 수리하기 전에 먼저 경기 위원을 불러 확인했으면 좋았겠지만, 추후 이런 상황을 만날 때 대처하는 법을 잘 경험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규칙 위반 시상식 끝나고 알았다면
‘돌격대장’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황유민은 4월 7일 KLPGA투어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에서 우여곡절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3라운드 18번 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준비하던 황유민은 들고 있던 거리 측정기를 캐디에게 건네다 땅에 떨어뜨렸다. 바닥에 한 번 튕긴 거리 측정기는 볼 바로 옆에 붙었다. 볼을 움직였다면 1벌타를 받게 된다. 경기 위원은 모니터룸으로 돌아가 20분 넘게 중계 화면을 돌려보았지만 볼이 움직였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결국 볼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황유민과 캐디의 진술을 받아들여 벌타 없이 경기를 진행하도록 했다. 황유민은 이곳에서 버디를 잡았다.
최종 4라운드 13번 홀(파5)에서는 규칙 위반이 있었지만 인지하지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황유민이 두 번째 샷으로 친 볼이 도로 위에 멈춰 무벌타 드롭을 했다.
그런데 드롭한 볼이 황유민의 발을 맞고 멈추자, 캐디는 다시 드롭하라고 손짓했다. 황유민은 볼을 집어 올려 다시 드롭하고 경기를 이어갔는데 이는 2벌타를 받아야 하는 규정 위반이다. 드롭한 볼이 선수의 신체나 장비에 닿아 멈추면 드롭 절차가 끝나고 인플레이 상태가 된다. 재드롭하고 샷을 한 것은 잘못된 장소에서 플레이를 한 것이 된다. 현장에 있던 경기 위원은 드롭한 볼이 구제 지역 밖으로 굴러가 다시 드롭한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결국 위반 사실이 시상식까지 마친 뒤에야 드러나 벌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