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달러 패권이 무너지고 국제 정세가 불안해졌을 때에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금처럼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10만달러(약 1억4327만원)를 돌파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비트코인 전략적 비축 기금(bitcoin strategic reserve fund)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향후 50만달러(약 7억1635만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미 가격이 고점에 이르렀으며, 향후 절반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는 “비트코인 가격은 아직 상승 가능성이 남았다. 이번 사이클에서 15만달러(약 2억1491만원)까지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립토퀀트는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전문 업체로, 주 대표가 2018년 창업했다. 15초마다 업데이트되는 전 세계 블록체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 글로벌 금융사와 개인 투자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크립토퀀트는 ‘암호화폐 시장의 블룸버그’로 불린다.

주 대표는 자체 개발한 블록체인 연산 분석 기술로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 발생 전, 발행사 대표였던 권도형씨가 비트코인 1만 개 이상을 빼돌린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기도 했다. 이후 세계 3위 코인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까지 내다보며 투자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주 대표를 만나 새해 암호화폐 시장 전망을 물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

최근의 비트코인 강세는 무엇 때문인가. 

“미국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처럼 여기는 현상이 번지면서 기관이 비트코인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그간 비트코인은 전략 자산으로서 적극적으로 매입하는 자산은 아니었는데 기조가 바뀌었다. 비트코인은 금과 다르게 누가 얼마만큼 보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신뢰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 발견됐을 때 그저 ‘노란 돌’에 불과했던 금이 수천 년이 지나 전략 자산이 된 것처럼 비트코인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미국을 비트코인 국가로 만들겠다’ ‘채굴 패권을 드높여 더 많은 코인을 보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친(親)암호화폐 성향의 폴 앳킨스를 지명했고, 의회에도 친암호화폐 성향의 의원이 포진해 있다. 미 정부가 5년간에 걸쳐 비트코인 100만 개를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의원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인기도 치솟고 있다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2024년 초 비트코인 ETF를 출시했는데, 해를 넘기기도 전에 20년 가까이 된 금 ETF의 운용 자산(AUM)을 초과했다. 크립토퀀트 분석에 따르면, 블랙록 비트코인 ETF에는 2024년 9~12월 기준 매주 평균 11억8000만달러(약 1조6906억원)가 들어오고 있다. 비트코인 ETF가 비트코인 거래의 포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시장 자금 총량을 분석해 보니, 15년 동안 총 7760억달러(약 1111조7752억원)가 비트코인을 사는 데 쓰였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2024년 한 해에 들어왔다.”

비트코인 가격이 더 오를 거라고 보나.

“그렇다. ETF, 기업들의 비트코인 매수 등으로 자금 유입이 멈추지 않는 이상 비트코인 가격은 지속해서 오를 것이다. 그동안 심리적 저항선이 10만달러로 여겨졌는데, 잠깐 부딪히는가 싶더니 그 이상으로 더 올랐다. 시장에 유입된 자금의 총량을 과거 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아직 15만달러까지는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비트코인에 기관 투자가 몰린다면, 개인은 어디에 투자하고 있나.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 거래가 상대적으로 많다. 특히 리플은 거래 횟수가 지난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우리나라 암호화폐 거래액은 세계 2위다. 알트코인 거래액은 세계 1위로, 국내 주식 거래액보다 많다. 전략 자산으로서 비트코인에는 관심이 없고 알트코인 투자만 압도적으로 활발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투자 행태에 아쉬움을 많이 느낀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을 얼마에 매입하기를 추천하나. 

“10만달러 선에서 사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후에 조정이 올 수는 있다. 그런데 조정 기간을 견디고 나면 더 큰 폭으로 가격이 뛴다. 이 기간을 버틸 수 있다면 사도 좋다.”

암호화폐 개인 투자자에게 조언하자면. 

“투자 포트폴리오의 2~3% 정도는 비트코인으로 채우고 이를 장기 보유하는 것이 좋다. 지금 비트코인을 샀다 팔았다 반복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다섯 가지에 전부 해당한다면 비트코인을 사도 좋다. △비트코인 가격이 14만5000달러가 됐을 때, 미리 매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 같다 △비트코인 매수를 위해 약세장을 기다리고 있다 △매수가에서 30% 떨어져도 패닉 매도하지 않을 자신 있다 △최소 1년 이상 보유할 자신 있다 △투자 정보를 (건너 듣지 않고) 직접 탐색하고 있다.” 

Plus Point

美, 비트코인 전략 자산화… ‘금 대신 코인’ 시대 오나

전략 자산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자원을 말한다. 각국 통화는 환율 변동에 따라 가치가 오르내리지만, 금과 같은 자산은 국제 시세를 기반으로 가치를 평가받아 대표적인 전략 자산으로 꼽힌다. 각국 정부는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금속, 곡물 등을 비축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24년 12월 미 CNBC와 인터뷰에서 “석유 비축 기금 같은 비트코인 전략적 비축 기금을 만들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암호화폐와 관련해 대단한 일을 할 것이다. 중국이나 다른 어떤 나라가 먼저 주도권을 잡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금을 팔아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시나리오도 점쳐진다. 관련해 가장 구체적으로 안건을 제안한 건 신시아 루미스 상원 의원이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보유한 금을 매각해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재무부가 5년 동안 매년 비트코인 20만 개를 매입해 총 100만 개를 모으는 프로그램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전 세계 비트코인은 총 2100만 개로, 루미스 의원이 비축을 제안한 양은 공급량의 5%에 달한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밖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암호화폐 글로벌 소식 기관인 크립토슬레이트에 따르면, 브라질은 최근 국제 준비금의 5%를 비트코인에 할당하는 법안을 제안했고, 폴란드 대통령 후보인 슬라보미르 멘첸은 당선되면 비트코인 준비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의원 사이에서 비슷한 주장이 나온다.

이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