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차기 위원장에 앤드루 퍼거슨(Andrew Ferguson) 현 FTC 위원이 내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24년 12월 10일(이하 현지시각) 퍼거슨 위원을 차기 FTC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다. 퍼거슨 지명자는 현 FTC 위원이어서 상원 인준 절차 없이 곧장 위원장직에 오른다. 트럼프 당선인은 퍼거슨 위원이 ‘트럼프 2기’ 정부 첫날(1월 20일)부터 위원장 업무를 시작한다고 예고했다.
퍼거슨 지명자가 공식적으로 위원장직을 맡으면, 리나 칸(Lina Khan) 현 FTC 위원장이 주도해 온 미 정부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간 ‘반독점 전쟁’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칸 위원장은 반독점 규제를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퍼거슨 지명자는 비교적 성장 친화적인 성향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빅테크 ‘정치 편향’ 날 선 비판
퍼거슨 지명자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버지니아대 역사학과와 버지니아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졸업 후 미국 워싱턴 D. C.의 로펌 코빙턴 앤드 버링(Covington & Burling)과 밴크로프트(Bancroft) 등에서 반점 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국 대법원 서기관을 지냈고, 린지 그레이엄(4선 상원 의원), 척 그래슬리(8선 상원 의원) 등 공화당 의원의 법률 고문을 맡으며 공화당 핵심 인사와 가까워졌다. 2019~2021년 공화당 상원 원내 대표이자 7선 상원 의원인 미치 매코널의 수석 법률 고문을 맡았다. 2022년 1월 버지니아주 송무 차관으로 임명됐으며, 2024년 4월 FTC 위원이 됐다.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 소셜을 통해 “퍼거슨은 빅테크 검열에 맞서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 입증된 기록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의 임명을 통해 FTC가 ‘보수적인 의견을 검열하는 빅테크’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 격인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수장에 브렌던 카 FCC 위원을 지명하면서도 “카 위원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사”라고 소개했다. ‘정치 편향’ 빅테크와 싸운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인사다.
실제로 퍼거슨 지명자는 FTC 위원장으로 지명되기 직전인 2024년 12월 2일 성명을 통해 빅테크 플랫폼의 정치적 편향성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사용자를 차단하고 콘텐츠를 검열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부당 행위와 관행을 조사할 것을 FTC에 촉구한다”면서 “미국 국민이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판명된 플랫폼에 대해 반독점법을 강력히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21년 초에 스냅챗,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주요 빅테크 플랫폼은 모두 트럼프 계정을 동시다발적으로 차단했고, 트위터(현 X)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소유주(일론 머스크)에 의해 인수된 직후 주요 광고주는 광고를 중단하며 떠났다”며 “플랫폼이나 광고주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공모하고 있다면, FTC는 그들을 기소하고 그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임명 소감 “미국을 세계 기술 리더로”
퍼거슨 지명자는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자신의 X에 “빅테크의 경쟁 및 표현의 자유 탄압을 종식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세계의 기술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혁신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빅테크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으면서도 지나친 규제보다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채택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 미국 주식시장은 퍼거슨이 이끄는 FTC를 시장의 호재로 판단했다. 퍼거슨이 지명된 2024년 12월 10일 뉴욕 증시에서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약 5%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옛 페이스북) 등 기술주도 동반 상승했다. 제이 우즈 프리덤캐피털마켓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퍼거슨은 대표적인 칸 반대자”라면서 “많은 사람은 퍼거슨의 리더십 아래에서 알파벳에 대한 반독점 소송이 종료될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퍼거슨 지명자를 ‘거래 친화적인(Deal-Friendly) FTC의 차기 리더’라고 소개했다. 매체는 “대기업의 인수합병(M&A)을 반대해 온 칸 위원장과 달리, 퍼거슨 지명자는 M&A에 관대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월가(街)는 대형 M&A에 대한 규제 완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거래 활동이 늘어나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TC는 현재 구글·아마존·MS 등이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투자한 건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진행 중인데, 퍼거슨 지명자는 AI를 규제하기 전에 개발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짚었다. 미 로펌 윈스턴 앤드 스트론(Winston & Strawn)은 “퍼거슨 지명자가 이끄는 FTC는 공격적인 반독점법 집행과불필요한 규제 축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칸 위원장은 기업 독점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앞세워 규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린 바 있다. 미국 반독점법은 상품 가격이 올랐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낮춰 소비자 이익을 높일 경우 반독점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칸 위원장은 2017년 예일대 로스쿨 재학 때 작성한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논문에서 “아마존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낮춰 경쟁 상대를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독점했다”며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FTC 위원장 취임 이후 칸은 미국 법무부와 함께 구글 ‘크롬’ 강제 매각 판결을 끌어냈으며, MS의 블리자드 인수 등 굵직한 M&A를 반대해 왔다. 빅테크를 향한 반독점 소송도 줄줄이 제기했다.
차기 FTC가 현재의 FTC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법무부 반독점국 차관보를 지낸 빌 베어는 야후 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법원은 지난 3년 반 동안 리나 칸과 조너선 캔터(Jonathan Kanter)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장이 제기한 소송을 상당히 지지해 왔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더 관대한 처분이 내려질 수는 있겠지만, 극적인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칸의 규제 논리를 공개적으로 옹호한 것은 다른 변수다. 밴스 당선인은 2024년 8월에 “구글은 너무 크고 강력하다.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발언은 퍼거슨 지명자가 이끄는트럼프 2기 FTC가 칸 위원장의 FTC처럼 강력한 반독점 규제에 나설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된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은 구글 해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