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장 비싸고 가치가 높은 차는 플래그십(기함) S클래스지만, E클래스는 고급 준대형 세단의 기준을 상징한다. 1936년 처음 등장한 이후 무려 90년에 가까운 동안 벤츠의 역사를 대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E클래스의 위상은 단순 수입차 이상이다. 2016년 10세대가 출시된 이후 2023년까지 7년 연속 수입차 단일 차종 판매 1위를 달성하는 등, 벤츠가 국내 수입차 시장 선두를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10세대는 국내 수입차 사상 최초로 연간 20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23년 출시된 11세대 또한 2024년(11월 누적 기준) 수입차 시장에서 단일 제품으로는 가장 많이 팔렸다. 국산 차와 수입차를 통틀어 동급 제품 중 E클래스보다 많이 팔리는 차는 현대자동차(현대차) G80이 유일하다. 현재 판매 중인 11세대는 전통을 이으면서도 브랜드 모토인 진보된 기술을 추구한다. 인공지능(AI), 마일드 하이브리드 동력계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동 경험도 내세운다. 

전통과 미래 조화…디지털화 돋보여

외관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E클래스의 멋을 살리면서 몇몇 부분에서 독특한 요소가 돋보인다. 벤츠는 모든 제품의 디자인에 전통을 입히는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요소를 삽입하는데, 11세대 신형 E클래스도 그런 기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헤드램프(전조등)는 살짝 굴곡이 져 있고, 아래로 두 줄의 주간 주행등(DRL)을 넣어 또렷한 인상을 보인다. 십수 년 전 선보였던 E클래스의 램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전동화 흐름에 따라 전면 디자인을 전기차 브랜드 ‘EQ’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렸다.그릴과 램프가 일체를 이루는 디자인이 간결하면서도 멋들어진다. 

스포츠카처럼 짧은 프런트 오버행(앞차축과 차 앞 끝까지의 거리)과 근육질의 느낌이 나도록 부풀어 오른 보닛이 눈에 띈다. 휠베이스(앞뒤 차축 간 거리)는 기존 세대보다 20㎜ 길어졌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전체 비율이 안정돼 있어 보이는 효과를 낸다. C필러(차 승객석을 받치는 앞에서 세 번째 기둥)는부드럽게 아래로 흐르는 역동적인 디자인이다. 문을 여닫을 때는 튀어나오고, 평소에는 차체 안으로 숨는 플러시도어 핸들(문손잡이)을 적용해 공기저항을 낮췄다. 

뒷모습도 전동화 디자인을 따른다. 리어 램프(후미등)는 익룡의 날개를 양옆으로 펼쳐놓은 모습으로, 램프를 벤츠의 상징 디자인 ‘삼각별’로 한 것이 독특하다. 경기 불황기에는 화려한 디자인으로 제품을 뽐내는데, 벤츠 뒤태가 딱 그렇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멋을 낸 건 아닌가 싶다. 

실내에 들어오면 앞좌석 중앙부에 크게 들어간 14.4인치 고해상도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화면)가 눈에 들어온다.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난다. 계기판은 스티어링 휠(운전대) 뒤로 크게 자리하는데, 중앙 디스플레이와는 단절된 느낌으로 일관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고급형 모델의 경우 중앙 디스플레이가 조수석까지 확장돼 더 큰 디지털 경험을 제공한다. 

중앙 디스플레이는 눈을 현란하게 하는 디자인도 인상적이지만, 자동차 실내 디지털화를 돋보이게 한다. 벤츠는 E클래스에 ‘루틴(routine·일정한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 기능을 넣었다. 운전자가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편의 기능을 자동차가 스스로 학습해 상황에 맞는 기능을 운전자에게 제안하는 한편, 운전자가 스스로 습관을 짜 넣을 수도 있다. 예컨대 ‘실내 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열선 시트를 켜고, 주황색 등 따뜻한 실내조명을 켜라’고 명령을 넣으면, 조건을 만족했을 때 그대로 실행한다.  

실내를 이루는 소재는 벤츠답다. 손이 닿는 곳곳에 고급스러운 소재를 아낌없이 썼다. 퀼팅 패턴의 좌석도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시트는 허리나 엉덩이를 잘 감싼다. 네 바퀴 굴림(사륜구동) 시스템의 축 때문에 뒷좌석 밑바닥 중간이 돌출된 것은 다소 아쉽다. 반면 트렁크는 여유롭게 설계됐다. 골프 가방 여러 개를 넣을 수 있다고 한다.

벤츠 특유의 승차감…달리기도 뛰어나

시승한 E200 아방가르드에는 4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최고 출력 204마력(㎰), 최대 토크 32.6 ·m를 낸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해 엔진의 힘을 최대 17㎾(약 22ps) 보조한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엔진(내연기관) 동력을 전기모터가 제한적으로 보조하는 형태로, 전기모터 단독 주행이 어렵다. 이 때문에 내연기관의 발전형으로 인식되는데, 유럽의 높은 환경 규제를 피하고자 개발된 것이다. 전기모터의 크기가 작고, 역할도 제한돼 일반 내연기관차 대비 연료 효율 향상 정도는 최대 15% 정도지만, 시스템이 저렴하고, 설계가 비교적 간단해 기존 엔진에 쉽게 부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독일 수입차를 중심으로 적용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변속기는 9G-트로닉 자동변속기를 맞물린다. 벤츠의 대표 9단 변속기로, 부드럽게 엔진의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특성을 보인다. 실제로 속도를 낼 때 속력이 가파르지 않게 점층적으로 꾸준히 오르며, 감속할 때도 불편함 없이 속도가 편안하게 줄어든다. 물론 재빠르게 속도를 내야 할 때는 민첩하게 속도가 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고급 모델과 다르게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하고 있지 않지만, 벤츠 특유의 부드러운 승차감이다. 꽤 높은 속도에도 차가 뒤뚱거림 없이 도로에 잘 밀착해 치고 나간다고 느끼게 한다. ‘벤츠=승차감’이라는 명성을 잊지 않았다. 속도감보다는 탑승자 누구나 편안해야 한다는 철학이 잘 반영돼 있다. 

E200 아방가르드는 고급 모델에 장착된 리어 휠 스티어링(뒷바퀴 조향)은 적용되지 않았다. 리어 휠 스티어링은 자동차의 오버 스티어나 언더 스티어(곡선주로에서 실제 조향 정도보다 더 조향하거나 덜 조향하려는 현상)를 방지할 수 있게 조향 방향으로 뒷바퀴가 일정 각도로 움직이는 기술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E300e 4매틱은 1회 충전으로 최장 100㎞를 전기 주행할 수 있다. 최고 95㎾(129㎰)의 출력을 확보하고 있다. 엔진은 최고 출력 204마력의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엔진을 조합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 시간에 6.5초가 걸리고, 최고 속도는 시속 234㎞다. 

E세그먼트의 왕…친환경 가치도 담았다

모든 세대 벤츠 E클래스는 오랜 시간 유럽 E세그먼트(차 길이가 4700~5000㎜)의 왕으로서 시장에 군림해 왔다. 신형이 나올 때마다 소비자를 기대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11세대는 내연기관의 높은 기술력에 새로운 전기동력계, 디지털화 등이 돋보인다. 

벤츠 특유의 장점인 고급스러움, 유려한 디자인, 고품질 소재는 완성도를 높이는 부분이다. 내연기관의 진화와 전기동력계의 조화도 발군이다. 여기에 47%를 재활용 소재로 만든 마이크로컷 극세사를 실내 곳곳에 사용하고, 염색하지 않은 알파카 울 소재 등으로 친환경에도 힘썼다. E200 아방가르드 가격은 7390만원. 

박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