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돈을 다룬다. 필요한 무엇인가를 만들어 팔기보다, 어떤 것을 사기 위해 필요한 돈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기업가는 사업 확장을 위해 발행 시장에서 돈을 조달하고, 부동산 업자는 개발을 위해 큰 자금을 증권사 주선으로 만들어 낸다. 개인 투자자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돈이 될 만한 주식이나 채권 등 다양한 자산을 찾아 여의도를 떠돈다. 증권사는 이러한 다양한 욕망이 교차하는 길목이다. 한국은 이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약 4300만원)를 넘어선 선진국이다. 제조업만으로는 성장을 담보하기 힘들다. 금융업, 특히 그중에서도 증권업이 더 커지고, 수익성이 더 개선돼야 한다. 아쉽게도 증권사를 향한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탐욕 가득한 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필자는 2024년 말 31년여의 여의도 생활을 마무리하는 개인적인 변화를 맞았다. 증권사를 떠나는 앞길을 고민하면서 원고를 쓰는 지금, 찬찬히 증권사를 들여다봤다. 증권사의 희로애락이 필자가 맞이할 미래와 맞닿아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韓 증권업 수익 구조의 현주소

증권사 임원으로서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고민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는 금융시장 여건이 바뀔 때마다 회사 수익성이 크게 변화하고 영업 환경 또한 바뀐다는 점이다. 증권업이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해 왔음에도 여전히 증시 환경 변화에 크게 노출되는 ‘시황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는 증권사의 수익 구성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증권사 매출에 해당하는 순영업수익(영업이익+판관비)은 크게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자산 관리 △투자은행(IB) 관련 업무 △이자 이익 및 운용 이익 등으로 구성된다. 그중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과 신용 공여 관련 이자 수익은 직접적으로 증시 환경에 영향을 받는 변수인데, 업계 전체적으로 이 비중이 약 40% 수준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산 관리 수익 또한 금융 상품 수요에 의해 결정되고, 운용 이익(채권, 주식, 외환·파생 상품 등) 역시 금융시장 환경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사실상 증시 환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수익 비중이 60~70%에 달한다. 따라서 증시가 호조를 보이고 코스피 지수가 상승하면 증권사의 수익이 좋아지는 반면, 최근처럼 지수가 크게 조정받고 증시 전망이 불투명해질 경우 증권사의 실적 악화 우려가 대두된다.

이러한 천수답 형태의 수익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증권 업계는 그간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표적으로 해외 IB의 수익 모델을 벤치마크해 자본 규모를 키우고 단순한 금융 중개보다는 직접적인 투자를 확대하는 형태로 사업 구조의 진전을 도모했다. 확대된 자본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위험을 인수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에도 수익성이 크게 영향받지 않는 구조로 전환을 꾀한 것이다. 정부와 금융 당국 역시 ‘한국형 IB의 육성’이라는 목표하에 증권사의 자본 규모별로 영위할 수 있는 사업 범위를 다양화하는 등 증권사의 대형화를 유도했다.

하지만 해외 글로벌 IB와 비교해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의 자본 규모는 11조원인데,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같은 글로벌 대표 IB의 자본 총계는 100조원을 상회한다. 가까운 일본의 노무라증권 역시 총자본이 25조원 수준이고, 하이통증권과 중신증권 등 중국 상위권 증권사의 자본 규모 또한 30조원 수준이다. 더 큰 차이점은 수익 구조에서 나타난다. 국내 증권 업계는 앞서 살펴본 대로 위탁매매를 포함한 증시 환경에 노출된 수익 비중이 60~70%에 달한다. 반면 글로벌 선도 IB는 금융거래 기반의 변동성 높은 수익 의존도가 축소되는 가운데, 자산 관리 수익과 이자 및 배당 수익 중심의 투자 수익 등 지속 가능한 수익원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IB는 회사별로 특화된 사업 모델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고유의 사업 영역을 구축해 왔다. 가령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인수합병(M&A) 등 전통 IB 업무의 강점을 바탕으로 IB 부문에서 높은 수익성을 거두고 있으며, 모건스탠리는 생애 주기 맞춤형 포트폴리오 서비스 제공을 통해 자산 관리 부문에서 고수익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렇듯 글로벌 IB는 각각의 특색 있는 사업 영역에서 이익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반면 국내 증권사의 사업 구조는 상대적으로 대동소이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가 도입될 당시 금융 당국은 기업 신용 공여,모험 자본에 대한 투자, M&A 인수 자금 공급 등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기업금융 서비스를 기대했다. 실제로 이를 위해 발행 어음 업무를 허용하고, 레버리지 규제와 자본 비율 산정에 있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정책적 지원 조치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은 증권사의 확대된 자본과 건전성 규제 완화를 활용해 조달된 자금이 금융 당국의 목표대로 자본시장에 투입되기보단 대부분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2010년대 이후 장기간 저금리와 부동산 경기 호조에 힘입어 과거 건설 업계와 저축은행 등이 인수했던 신용 위험을 증권사가 떠안는 형태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모델이 변화했고, 고수익 사업으로 인식한 증권사가 너도나도 부동산 금융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이에 대형 증권사의 경우 IB 수익 가운데 부동산 PF 관련 수익의 비중이 70%를 상회했으며, 자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중소형 증권사역시 뒤이어 부동산 PF 익스포저(노출도)를 확대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국면 종식 후 급격한 금리 상승기를 맞으면서 국내외 부동산 시장은 차갑게 식었고, 무분별하게 부동산 PF 사업을 확장했던 증권사는 역풍을 맞았다. 2022~2023년 증권사는 부동산 금융 관련 대규모 손실을 인식해야 했으며,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유동성 위기를 경험하거나 재무 건전성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됐다. 이렇듯 국내 증권 업계는 그간의 양적 성장과 외형 확대에도 여전히 사업 모델 진전과 차별성, 리스크 관리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윤지호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개인 투자자 증가, 증권업 질적 발전 계기 삼아야

2024년 증권 업계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증시가 부진했던 반면 해외 증시, 특히 미국 증시가 호조를 보이면서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 거래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코스피와 코스닥 거래 대금은 정체된 반면 해외 주식 거래 대금은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아직 해외 주식 거래 대금의 절대 규모는 국내 대비 15% 수준이지만, 일부 대형 증권사의 경우 해외 주식 수수료 수익 규모가 국내 주식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해외 주식의 중개수수료율이 국내 대비 3~4배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익 확대와 함께 증권 업종 내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해외 주식 중개 서비스에 대해 무료 수수료를 제공하는 등 고객 유치를 위한 가격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리테일 사업 본부를 이끌면서 해외 주식 점유율 확대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며,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대형 증권사와 디지털 플랫폼 강점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토스증권 등과 경쟁이 버거웠던 기억이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개인 투자자의 증시가 커졌다는 측면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다만 과거 국내 증시의 온라인 서비스가 확대되던 시기처럼 단순한 수수료율 인하와 무료 이벤트 등 가격경쟁 일변도로 해외시장이 확대된다면 증권 업계 발전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개인 투자자의 높아진 눈높이와 자본시장의 양적 성장에 맞춰 증권 업계의 사업 구조 또한 지속 발전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증권 업계와 잠시 멀어진다. 그러나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입장으로, 성장하는 자본시장과 함께하는 증권 업계의 질적 성장을 기대해 본다

윤지호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