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째비골 스카이밸리의 스카이워크. /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4/12/27/2024122700045_0.jpg)
어두운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려 강릉을 지날 때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망상IC로 나왔다. 동해시엔 망상, 추암, 어달, 대진, 하평, 한섬, 고불개, 노봉 등 예쁜 해변이 많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망상해변이다. 아재 개그 같지만 이름이 좋다. 망상이라니⋯. 활시위처럼 휘어진 해변은 넓고 넓어서 이름 그대로 ‘망상’을 펼치기에 좋다. 길이 2㎞에 이른다.
망상해변에서 묵호항 방면으로 차를 몬다. 가는 길 내내 짙푸른 바다가 왼쪽 차창으로 보인다. 묵호항 뒤편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들어선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헤집으며 구불구불 골목이 이어진다. 한때 뱃사람들이 살던 골목인데 지금은 그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마을은 ‘붉은 언덕’으로 불렸던 적도 있다. 뱃사람이 몰려 살았고 시멘트 공장과 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름이면 생선 내장 썩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고 비가 오면 붉은 진흙이 흘러내렸다. 석탄을 실은 기차가 지나면 탄가루가 마을까지 자욱하게 날아들었다고 한다.지금은 길은 시멘트로 단단하게 포장됐고 더 이상 진흙이 흘러내리지도, 탄가루가 날리지도 않는다. 십여 년 만에 찾았는데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지금의 묵호는 동해시의 한 동(洞)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1981년 북평읍과 통합돼 동해시로 바뀌기 전까지 묵호는 동해 제일의 항구였다. 무연탄과 석회석의 수출 항구이자 어업 전진기지였다. 전국에서 뱃사람이 몰려들었다. 남자들은 오징어잡이 배를탔고 무연탄 공장에서 석탄을 날랐다. 아낙들은 어시장에서 밤새 생선 배를 갈랐다. 묵호역은 동해 영동선의 주요 정차역이었다.
묵호항에서 이 마을까지 ‘등대오름길’이라는 예쁜 길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옛 묵호항의 정취와 마을 풍경을 추억하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출항하는 오징어 배, 해풍에 말라가는 오징어, 대폿집과 이발소, 구멍가게 등의 벽화가 마음 한쪽을 짠하게 한다. 길 끝에 묵호등대가 서 있다. 십여 년 전 묵호등대를 찾았을 때, 밤이었는데 눈이 내렸던 것 같다. 수평선에는 환하게 어화를 밝힌 고기잡이배가 가득했던 것 같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4/12/27/2024122700045_1.jpg)
![1 바다를 따라가는 망상 드라이브길. 2 강원도 최대 오일장인 북평장. 3 묵호등대에서 바라본 묵호항./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4/12/27/2024122700045_2.jpg)
![이미지 크게 보기](https://economychosun.com/images/bu_zoom.gif)
강원도 최대의 전통 오일장
운이 좋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북평장이 서는 날이었다. 북평장은 전국 각지에서 장돌뱅이가 모여드는 강원도 최대의 오일장이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인 날, 42번 국도와 7번 국도가 만나는 북평 삼거리에서 열린다. 4차선 도로 양옆으로 1㎞가 넘는 길은 아침 일찍부터 행상들에게 점령당한다.
북평장에는 태백과 삼척 등 강원 영서 남부와 영동 지역에서 나는 약초와 산나물,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 모인다. 북평장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쌀과 보리 등 각종 곡류를 비롯해 태백, 삼척, 정선, 울진 등에서 나는 약초와 산나물, 마늘, 고추 등 채소류, 강아지, 토종닭 등 가축과 옷, 신발, 낫, 곡괭이 등 도시에서 생산된 물건까지 온갖 것이 장마당을 메운다.
‘동해시지(市誌)’에 따르면, 북평장은 정조 병신년(1796년) 시작됐다. 200년 정도의 역사가 있지만 물물교환 방식의 정기 시장이 열린 것은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북평장이 아닌 ‘뒷드르장’으로 불렸다. 뒷드르란 북평의 고유어인 ‘뒷들’에서 유래한 것. 삼척의 뒤편에 있다고 해 그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전국의 유명 장터를 찾아 떠도는 장돌뱅이들은 북평장을 이리장, 성남 모란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장터로 꼽는다.
장은 대략 오전 8시부터 서기 시작한다. 장터의 총면적은 대략 10만㎡(약 3만 평)에 달하는데 좌판이 설치된 곳만 1만3000㎡(약 4000평)이다. 쇠전(우시장), 미전, 채소전, 강포전(삼베전), 어물전, 잡화전 등이 들어선다. 장터에 서는 노점은 약 400~500여 개다. 장에 와서 구경하는 것이 어디 물건뿐이랴. 사람 구경도 재미있다. 걸쭉한 농담과 함께 건강식품을 파는 40대 아저씨, 생선을 쌓아 놓고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칼 가는 할아버지는 이곳 북평장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한쪽에서는 양복을 차려입고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막걸리 내기 장기를 두고 있고, 아이들은 뻥튀기 기계가 ‘뻥’ 하는 소리를 내며 새하얀 뻥튀기를 쏟아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난전에 앉아 진한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주름 깊은 사람들의 얼굴도 정겹다.
여행수첩
![추암해변 촛대바위./사진 최갑수](https://economychosun.com/site/data/img_dir/2024/12/27/2024122700046_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