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태국 방콕을 출발해 무안국제공항(무안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2216편(B737-800)은 오전 9시 3분쯤 랜딩기어(비행기 바퀴)가 펼쳐지지 않은 상태로 활주로 착륙을 시도하다 공항 시설물과 충돌, 기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사고를 당했다. 항공기에는 승객 등 총 181명이 타고 있었는데, 현장 구조된 승무원 2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망했다.
사고의 1차 원인으로는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 따른 엔진 이상이 추정된다. 무안공항은 인근에 새 서식에 적합한 논과 습지가 많아 항공기의 조류 충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지적이 과거부터 있었다.
첫 착륙 시도부터 둔덕 충돌까지 9분, 무슨 일 있었나
이번 사고는 제주항공 7C2216편이 1차 착륙 허가를 받은 오전 8시 54분부터 활주로 끝 로컬라이저와 충돌한 9시 3분까지의 ‘9분’이 사고 원인 규명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2025년 1월 1일 국토교통부는 브리핑을 통해 7C2216편의 2차 착륙에 대한 상황 설명을 전했다. 1차 착륙(활주로 01)에 실패했던 사고기가 2차 시도에서 활주로 반대 방향(활주로 19)으로 착륙했던 건 조종사와 관제사 간 합의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국토부 측은 “조종사가 (1차 착륙 실패 후) 복행(go around·항공기가 정상 착륙이 불가능할 때 조종사 판단에 따라 다시 이륙하는 것)을 시도하면서 선회했고, 그 과정에서 관제사가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라며 “(관제사는)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안내했고, 조종사와의 상호 합의로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이 있었다”라고 했다.
조류 충돌로 인한 기체 이상 가능성
7C2216편은 1차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던 중인 오전 8시 54분,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활동(충돌) 경고’를 받았다. 이후 5분 뒤인 8시 59분 기장은 ‘메이데이(항공기 등의 조난·긴급 신호)’를 세 번 외치면서 관제탑에 항공기가 조난 상황임을 알렸다. 당시 촬영된 7C2216편 영상을 보면 새(鳥)로 보이는 물체와 오른쪽 엔진이 충돌한 후 폭발이 일어난다. 무안공항 주변은 철새 도래지로, 88종의 조류가 출현한다. 이 중 청둥오리 등 6종(큰기러기·쇠기러기·혹부리오리·흰뺨검둥오리·민물가마우지)은 조류 충돌 위험성 분석에서 3단계 위험 수준으로 분류된다. 조류 충돌 위험성은 위험도에 따라 1~3단계로 구분하는데, 그중 가장 위험한 건 ‘3단계’다. ‘신속히 추가적 위험 경감 대책 마련 및 수행’ 을 조치 사항으로 규정한다.
항공 업계는 착륙 중 조류 충돌로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것으로 본다. 항공기는 엔진 두 개가 모두 고장 나면 보조동력장치(APU)가 가동되기 전까지 약 1분간 모든 전자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조류 충돌로 양쪽 엔진이 모두 파손됐고, 기체가 셧다운됐다면 랜딩기어 등 유압계 부품이 작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추론은 사고 직전인 오전 8시 58분 항공기위치추적시스템(ADS-B) 데이터가 끊긴 데 따른 것이다. ADB-S는 전원 공급이 차단되면 작동이 중단된다. 정상 작동했다면 ADS-B는 항공기 정보를 송출해야 했는데, 이 데이터가 끊긴 건 전원 공급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국토부와 제주항공은 셧다운 가능성 역시 추정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기체 결함, 정비 소홀, 조류 충돌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 섣부른 판단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사고 키운 건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
이번 사고가 대규모 참사로 발전한 건 활주로 끝단의 콘크리트 둔덕이 원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7C2216편은 동체착륙을 하면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 약 250m를 더 나가 높이 2m, 두께 4m, 가로 40m인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했는데, 이 때문에 기체가 두 동강 나면서 폭발했다. 이 둔덕은 로컬라이저 설치를 위한 것이었다.
로컬라이저는 공항 활주로 끝에 설치되며, 안테나 전파를 통해 항공기가 활주로 가운데 정확히 착륙하게 돕는다. 기상에 따라 활주로 어느 방향이든 착륙할 수 있도록 보통 활주로 양 끝단에 놓는다. 7C2216편은 무안공항 활주로 남쪽 로컬라이저에 부딪혔다. 반대편인 북쪽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연장 공사를 위해 없는 상태였다.
국토부는 콘크리트 둔덕이 로컬라이저 설치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로컬라이저는 충격에 잘 부러지는 받침대 위에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부분의 완충 지역인 종단 안전 구역 밖에 있어 해당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단 안전 구역을 로컬라이저가 있는 곳까지 연장해 설정해야 한다는 구속력 있는 고시(공항・비행장 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 기준 제21조 제4항)가 나오면서 국토부의 해명이 맞지 않는다는지적이 나온다.
미국 항공 전문가 숀 푸르치니키 오하이오주립대 공과대 교수는 CNN과 2024년 12월 31일(이하 현지시각) 인터뷰에서 “그들은 그 설계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프루치니키 교수는 7C2216편 항공기 제작사 보잉에 대한 2024년 4월 미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섰던 인물이다.
영국 항공 전문 매체 ‘플라이트 인터내셔널 매거진’의 데이비드 리어마운트 편집자는 같은 날 BBC방송에서 “사고기가 랜딩기어와 플랩(고양력 장치)이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최선의 수준으로 착지했고, 동체착륙 뒤 활주로를 미끄러지는 동안에도 동체에 심각한 손상이 없었다”라며 “대규모 사망자가 나온 건 활주로 끝단 바로 너머에 있는 단단한 장애물과 충돌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 논리로 세운 공항… 가덕도는 안전할까
무안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착공해 2007년 11월 8일 개항했다. 서남권 거점 국제공항을 목표로 했으나, 건설 초기부터 조류 충돌에 대한 우려가 컸다. 공항 인근에 겨울 철새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약 113.34㎢)이 조성돼 있어서다. 보호구역에서는 약 1만2000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되기도 했다.
무안공항은 무리한 선거 공약이 낳은 세금 낭비 사례로 꼽힌다. 1시간 거리에 광주공항이 있지만, 정치 논리로 건설이 이뤄진 탓이다. 그만큼 이용객이 없는 공항이다. 이 때문에 활주로에서 주민이 고추를 말리는 웃지 못할 장면도 목격됐다. 2022년 2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무안공항을 아시아나항공 거점 공항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 7월 착공 예정인 가덕도신공항도 조류 충돌 우려가 꾸준히 나온다. 철새도래지인 낙동강 하구에서 불과 7㎞ 정도 떨어져 있어서다. 2035년 개항 예정인 제주 제2 공항 역시 용지 8㎞ 이내에 하도·오조·종달·신산·남원 등 다섯 곳의 철새 도래지와 연결돼 있다. 2024년 12월 기준 공정률 58%인 경북 울릉공항, 전북 새만금국제공항(2025년 상반기 착공 예정)도 주변에 새가 많아 조류 충돌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