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30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 거리 식당가는 적막감이 흘렀다. 연말 송년 모임 등으로 떠들썩했던 예년 세밑 풍경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여기저기 빈자리로 식당 주인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나마 드문드문 자리를 채운 손님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식사 자리를 짧게 끝냈다. 179명이 사망한 2024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참사 후, 각종 송년 식사 모임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12·3 비상계엄 사태로 희미해졌던 연말 특수는 아예 소멸했다.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부터 12월 30일 오후 1시까지 제주항공 항공기 취소 건수는 6만80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잇따른 예약 취소로 인해 고객으로부터 받은 선수금 환불 과정에서 유동성 악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고객에게 항공권을 판매하고 받은 선수금 약 2606억원으로, 이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최대 규모다. 2023년 대비 현금성 자산 감소를 겪고 있는 제주항공으로서는 참사 후 약속한 ‘조건 없는 환불’ 을 이행하기 빠듯한 상황이다. 유동성 악화로 인한 경영 위기를 배제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을사년(乙巳年) 새해를 앞두고 일어난 제주항공 무안 참사는 가뜩이나 1%대 경기 침체로 ‘악전고투’할 한국 경제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위협하는 등 정치·경제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형 재난까지 겹쳐, 한국 경제가 자칫하면 ‘회복 불가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10여 년 전 세월호 참사, 탄핵 정국 오버랩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될 이번 참사는 인명 피해 규모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수준의 대형 사회적 재난으로 평가된다. 대형 재난의 경제 충격은 소비 심리, 민간 소비, 서비스 생산 등 내수 경제지표를 통해 나타난다. 

한국은행(한은) 등에 따르면, 대형 사회적 재난은 소비 심리 후퇴 등으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09.5이었던 소비자심리지수는 2014년 5월 105.2로 떨어진 이후 재난 이전 수준인 109(2017년 5월)로 회복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희생자 수색 등 참사 수습에만 수개월이 소요됐고, 이후 원인 규명 논의가 정치· 사회적 논란을 촉발해 장기간 소비 심리 회복을 지연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갈등이 2016년 10월 이후 국정 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이어진 것도 소비 심리 위축이 장기화했다. 이렇게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동안 총저축률은 같은 기간 34%에서 36%로 올라갔다. 총저축률 상승은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각자도생식 리스크 관리를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민간 소비, 서비스업 생산 등 내수 경제활동 부진으로 전이했다. 당시 민간 소비 증가율(이하 전기비)은 2014년 1분기 0.5%에서 2분기 0.1%로,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도 같은 기간 0.5%에서 0.1%로 후퇴했다. 서비스업 내수 증가율도 0.9%에서 0.5%로 둔화했다. 특히 숙박 및 음식점업, 문화 및 기타 서비스업과 여가 관련 서비스업 증가율 등이 2014년 2분기 마이너스(-)로 빠진 이후 2015년 3분기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2013년 1분기 저점을 찍은 후 회복 국면이었던 국내 경기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성장세가 뚝 꺾였다. 참사 충격이 본격화한 2014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에 그쳐 글로벌 금융 위기 정점이었던 2008년 4분기(-3.4%) 이후 최악이었고, 2015년 2분기까지 0%대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한은은 세월호 참사 충격 등을 이유로 3.8%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3.5%로 하향했고. 실제 확정된 2014년 GDP 성장률은 3.2%에 불과했다. 권효성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세월호 참사로 2014년 민간 소비의 0.2~0.3%포인트가 감소했으며, 이는 연간 GDP 성장률의 0.1%포인트 손실을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서울 종로의 음식점 밀집 거리가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의 음식점 밀집 거리가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 후 리더십 붕괴로 경제 손실 커지나

당시 한은은 부정적 경제 충격을 완화하려고 2014년 8월과 10월 두 차례 금리 인하를 통해 참사 당시 연 2.50%였던 기준금리를 2.00%까지 낮췄다. 정부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을 계기로 11조7000억원 재정지출 확대와 정책금융 확대 등 총 40조원가량의 재정·금융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번엔 12·3 비상계엄 사태 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정치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점이 변수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은 세월호 참사 후와 비슷한 지점이지만, 당시는 강력한 경기 부양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 리더십은 굳건했다. 그러나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최근의 리더십 공백 상황은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추진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전문가들은 한은과 정부의 2025년 성장률 전망치 1.8~1.9%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40조원 이상의 추경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1월 2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 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기금 활용(6조원), 정책 자금 지원(12조원) 등으로 18조원가량 지출 증가를 추진할 계획이다. 지출 규모는 세월호 참사 대응의 절반이고, 추경예산 편성은 불확실하다. 2024년 10~11월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한 한은이 2025년 중 추가 금리 인하 방침을 밝혔지만, 최근 1470원이상으로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 하향 안정되지 않으면 1월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곧바로 금리 인하가 어려울 전망이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세월호 참사 당시 부정적인 경제 충격을 GDP 성장률 0.1%포인트 손실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은 경기 부양책 덕분”이라면서 “극단적 정치 갈등으로 추경예산 편성 등이 지연된다면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원·달러 환율 1450원 아래로 내려와야 추가 금리 인하 가능”

2025년 1월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연말 종가 대비 1.1원 오른 1473.1원에 개장했지만, 곧이어 방향타를 아래로 틀어 1460원 후반대에서 거래됐다. 2024년 12월부터 1400원으로 올라온 원·달러 환율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410원대로 상승했고, 12월 7일 국회에서 첫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불성립한 이후 1430원대로 훌쩍 뛰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두 번의 표결 끝에 통과되면서 추가 상승이 제어되는 듯한 원·달러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025년 금리 인하 전망 횟수를 4회에서 2회로 줄인 여파로 2024년 12월 19일 이후 1450원대로 올라선 후, 12월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통과로 정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1470원대로 치솟았다. 한 총리 탄핵 과정에서는 장중 1486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 12월 31일 전격적으로 헌법재판관 두 명 임명을 강행하며 대통령 탄핵 심판 절차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자, 추가적인 원·달러 환율 상승이 제어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정치 혼란, 사회 재난발(發)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원·달러 환율이 1450원 이하로 내려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수준으로 올라가면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워질 수 있다. 권효성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를 추가로 1%포인트 인하해 연 2.00%까지 낮추기 위해서는 원·달러 환율이 1450원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면서 “여객기 참사를 감안해도 현재의 원화 약세 탓에 1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50%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원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