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주 랜턴에 있는 보잉 생산공장. /로이터연합
미국 워싱턴주 랜턴에 있는 보잉 생산공장. /로이터연합

‘파도 파도 악재만 나온다.’ 2024년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무안공항)에서 발생한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기종은 737-800으로 이를 생산한 곳은 미국 항공우주 대기업 보잉이지만 2024년 내내 사고 항공기를 만든 곳으로 찍히며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 

2024년은 100년이 넘는 보잉 역사에서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연초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1월 5일(현지시각) 알래스카항공 소속 737 맥스 여객기에서 이륙 직후 동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발생해 곤욕을 치렀다. 4900m 상공에서 비상구 덮개가 떨어져 나가 항공기 동체에 구멍이 뚫리면서 승객의 휴대폰과 모자가 날아갔고, 산소마스크가 내려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미국의 자존심’ 보잉의 추락을 보여준 사례였다.

3월에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국제공항을 이륙한 737-800 여객기가 약 5000m 상공에서 외부 패널이 뜯겨 나가 비상착륙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4월에는 델타항공 소속 767 여객기가 뉴욕 JFK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비상 탈출용 미끄럼틀이 떨어지면서 회항하는 사고가 있었다. 5월에는 페덱스 익스프레스 소속 767 화물기가 튀르키예 이스탄불국제공항에서 앞바퀴가 내려오지 않아 비상착륙했다. 설상가상으로 9월에는 16년 만의 노조 파업으로 항공기 제작과 인도에 차질을 빚었다. 

항공기 안전 논란에 파업 여파로 신형 항공기 개발까지 늦어지면서 보잉은 3분기(7~9월)에만 61억7400만달러(약 9조101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보잉은 전체 직원 중 10% 규모인 17만1000명의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켈리 오토버그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11월 20일 전체 회의에서 “보잉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에 다들 지쳐있는 상태”라면서 “불평하지 말고 당면한 과제에 집중하자. 지금이 최저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달 뒤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가 발생했다. 

보잉은 우주 사업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유인우주선 ‘스타라이너’는 2024년 6월 두 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시험비행을 떠났으나, ISS 도킹 이후 기기 결함이 발견돼 이들을 다시 탑승시키지 못한 채 지구로 돌아왔다. 우주비행사는 여전히 ISS에 머물고 있으며, 빨라도 2025년 3월에나 귀환할 전망이다.

끊임없이 이어진 악재의 여파로 보잉 주가는 2024년 한 해 동안 29.87% 하락했다. 한때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며 세계 항공 기술을 선도했던 보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실패 원인 1│잃어버린 초심, 엔지니어 홀대

보잉은 설립 초기부터 기술력에 무게중심을 두고 품질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철학을 유지해 왔다. 한때 개발 인력만 4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재무 전문가가 경영권을 잡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1997년 보잉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군수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전투기 개발·제작사 맥도넬 더글러스를 합병했는데, 이 회사 CEO 출신인 원가절감 전문가 해리 스톤사이퍼는 4년 동안 고참급 엔지니어 등 직원 4만 명을 해고하고 비용 절감 차원에서 부품 개발과 제조를 아웃소싱으로 전환했다(그는 이후 여성 간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2005년 경질됐다). 이전까지 자체적으로 부품을 설계하고 생산해 품질을 유지했지만, 외주 제작 비율이 늘면서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잉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2024년 8월 엔지니어 출신의 켈리 오토버그를 CEO에 선임했다. 

실패 원인 2│과도한 경쟁 압박

오랜 시간 민간 항공기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던 보잉은 737맥스 기종을 개발하던 2011년 당시 기존 737 기종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럼에도 단기적인 비용 절감에 집착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엔진 교체로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A320네오’를 앞세운 에어버스의 공세에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발단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기종을 만드는 데는 보통 10년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고객의 마음을 돌릴 조치가 필요했다.

보잉은 주요 고객사인 아메리칸항공 측에 “기존 737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최대한 빨리 내놓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6개월 만에 737맥스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737맥스의 조종석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던 한 기술자는 NYT 인터뷰에서 “개발 일정이 극도로 촉박해 ‘서두르라’는 독촉뿐이었다”고 전했다. 서둘러 개발된 737맥스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 추락 사고로 두 여객기의 탑승자 총 346명이 전원 사망하는 대형 사고 등으로 결함을 노출했다.

실패 원인 3│커진 설계 복잡성

항공기 구조는 복잡하다. 737 기종에는 약 37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보다 10~20배 더 많다. 따라서 설계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꼼꼼히 따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잠재된 복잡성이 불거지면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보잉은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Fly By Wire, 전기신호로 비행을 제어하는 것)’로 대표되는 항공 전자 시스템의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도 기계식(유압식) 조작 방식을 병행·유지해 왔다. 경쟁사 에어버스가 FBW 도입에 적극적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보잉은 1995년 777 모델을 도입하면서 FBW 시스템을 처음 적용했지만, 주력인 737 계열 기종은 기계식 조작 방식을 고집해 왔다.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 모두 탑승자 전원 사망 사고를 일으킨 737맥스 기종의 경우 기계식 플랫폼에 전자식 제어장치인 ‘조종특성증강시스템(MCAS· Maneuve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을 적용했는데 설계 구조의 아날로그 시스템과 디지털 시스템의 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MCAS는 항공기의 기수가 급격히 상승해 실속(失速·stall)할 우려가 있을 때 자동으로 기수를 낮춰 사고를 방지하는 장치다. 비행 중인 항공기의 고도가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를 실속이라 한다. 당시두 사고의 원인은 MCAS 시스템 오류로 드러났다. 

실패 원인 4│기업 문화에 독이 된 인수합병

보잉과 맥도넬 더글러스의 합병은 기업 문화에도 독이 됐다. 두 기업의 문화가 민항기와 폭격기만큼이나 색깔이 뚜렷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보잉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 중에는 맥도넬 더글러스와 합병 이후 달라진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련 기록은 2015년 나온 책 ‘난기류에서 벗어나다(Emerging from Turbulence)’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은 시애틀 인근에 있는 푸제사운드대의 두 교수가 36명의 보잉 직원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보잉에서 30년을 근무하다 은퇴한 전직 직원은 책에서 “합류했을 때 맥도넬 더글러스 직원과 보잉 직원은 서로 본척만척 지나쳤다” 고 회고했다. 

Plus Point

에어부산株, 나 홀로 강세 이유… 보잉기 사용 ‘제로’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관련주의 주가도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에어부산의 주가는 홀로 강세를 보여 눈길을 끈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이자 2024년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30일 에어부산은 전 거래일 대비 70원(3.14%) 오른 2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에어부산은 장 초반 28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같은 날 제주항공(-8.65%), 티웨이항공(-3.23%), 진에어(-2.83%), 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 마감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대부분 저비용항공사(LCC)가 이번 참사 여객기와 같은 보잉의 항공기를 주로 운용 중인 것과 달리 에어부산은 전 항공기를 에어버스에서 도입했다는 점이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에어부산은 항공 업계에서 유일하게 2013년부터 현재까지 10만 편 이상 운항한 국내 항공사 중 사고·준사고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사고의 기준은 △승객의 사망·중상 또는 행방불명 △항공기의 중대한 손상·파손 또는 구조상의 고장 △항공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거나 항공기에 접근이 불가능할 경우 등을 이른다. 준사고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비정상 운항 등을 뜻한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