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를 맞이한 주요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가 신년사를 통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자”고 입을 모았다. 탄핵 정국 장기화와 원·달러 환율이 외환 위기 수준인 1500원 목전까지 치솟은 가운데, 2025년 1월 20일(현지시각)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로 대내외 복합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창업 정신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서 기회 찾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지난이행(知難而行)’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앞서 2024년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는 사자성어 ‘해현경장(解弦更張)’ 을 제시했는데, 새해에는 개혁보다 위기 극복에 중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지난해 지정학적 변수가 커지고 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이 격변하는 경영 환경을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경험했다”며 미래 도약의 원동력인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본원적 경쟁력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본질적으로 보유한,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의미한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년사 키워드로 ‘창업 정신’을 꼽았다. “고객을 향한 마음과 혁신을 기반으로 ‘LG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세우자”며 ‘시작’이란 의미를 담은 ‘데이 1(Day 1)’ 정신을 내세웠다. 데이 1은 초창기 LG의 도전 정신을 의미한다. 구 회장은 “LG의 시작은 고객에게 꼭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런 창업 정신에는 고객을 위한 도전과 변화의 DNA가 있다”고 했다. 이는 고(故) 구인회 창업 회장이 생전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부터 착수하라. 남이 미처 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라. 일단 착수하면 과감히 밀고 나가라’고 강조했던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는 ‘ABC(AI, 바이오, 클린 테크) 사업’을 강조하며 “그룹 곳곳에서 싹트고 있는 많은 혁신의 씨앗이 미래 고객을 미소 짓게 할 것”이라고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위기 극복을 거듭 강조했다. 김 회장은 “진정한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외면하면서 침묵하는 태도가 가장 큰 위기”라며 “세계 각국의 고객이 요구하는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자”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예년처럼 이재용 회장 대신 한종희 대표 겸 부회장과 전영현 DS부문장 겸 부회장 공동 명의의 신년사를 냈다. 두 부회장은 “지금은 AI 기술의 변곡점을 맞이해 기존 성공 방식을 초월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고도화된 인텔리전스를 통해 올해는 확실한 디바이스 AI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자”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제품과 사업,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조기에 발굴하고 미래 기술과 인재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애초 2025년 1월 3일 신년회를 개최하고 신년사를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제주항공 참사를 애도하기 위해 1월 6일로 연기했다.

롯데·GS·두산은 쇄신 다짐

롯데케미칼발(發) 신용 리스크가 불거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은 강도 높은 쇄신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혁신 없이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체질 개선을 통해 재도약의 토대를 다져야 하고, 재무 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해 이를 바탕으로 재무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제 마진 하락과 건설 경기 부진으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GS그룹은 신사업 발굴과 투자를 위기 극복 카드로 제시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새해에는 국내외 경기가 악화해 사업 환경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제2의 창업 정신을 갖추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 과감하게 투자 기회를 노리자”고 했다.

최근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 두산그룹의박정원 회장은 “당장은 시장 여건이 어려워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 모든 임직원이 ‘현재를 단단히 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두산그룹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에 병합하려고 했으나, 주주 반발과 주가 급락으로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경제 6단체장 “정부·기업 ‘원 팀’으로 위기 극복”

주요 경제 6단체장도 신년사에서 위기 극복 의지를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회적 갈등, 저출생, AI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 글로벌 통상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선 잠깐의 머뭇거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며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듯 한국 경제가 다시 태어나는 한 해가 돼야 한다”고 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기업과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자고강조했다. 그는 “지정학적 리스크,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다”며 “정부와 경제계가 원 팀(one team)을 이뤄 더 많은 기업이, 더 넓은 시장에서, 더 큰 기회를 창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 위기가 복합된 거대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모으고, 기업이 적극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 신규 사무소를 열어 전략시장 개척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뜻의 ‘인내외양(忍耐外揚)’을 제시하며 “중소기업의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불안의 시간을 함께 건너가기 위해 혁신과 도전의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는 데 공동체 전체가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Plus Point

재계 뱀띠 기업인은 누구

지혜를 상징하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을 맞이해 뱀띠 기업인의 활약에도 기대가 모이고 있다. 1953년생부터 1965년생, 1977년생, 1989년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우선, 1953년생 중에선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이 경영 일선에서 활동 중이다.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과 김윤 삼양그룹 회장도 1953년생 뱀띠다. 특히 1965년생 경영인의 활동이 왕성한데, 대표적으로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이 있다. SK그룹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의 곽노정 대표와 SK온의 이석희 대표도 1965년생이다. 박종문 삼성증권 대표도 이들과 동갑내기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현대자동차 CEO에 오른 호세 무뇨스 사장도 1965년생 뱀띠다.

1977년생 기업인으로는 4대 그룹 재계 총수 중 유일하게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구 회장은 1978년 1월생이지만, 음력 나이로 1977년생이라 뱀띠로 분류된다. GS그룹 오너가 4세인 허서홍 GS리테일 대표와 임세령 대상홀딩스 대표도 1977년생 뱀띠다. 1989년생으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미래비전총괄(부사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있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