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암호화폐 리포트는 회사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돈을 벌어다 주진 못한다. 다른 부서가 수익 내는 걸 도와주거나 승진이 보장되는 업무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분야를 택한 건 성장하는 산업에 대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과거 닷컴 버블 때 우후죽순 등장했던 기업 대다수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때 등장한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 건 사실이지 않나. 암호화폐 시장 역시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NH투자증권에서 암호화폐를 연구하는 홍성욱(35) 책임연구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닷컴 버블과 유사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거품이 꺼질 때 투자자의 손해가 클 수 있지만 암호화폐 산업 자체는 아직 태동기이며, 결국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NH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암호화폐 리포트를 가장 활발하게 내놓는 곳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홍 연구원이 있다. 1990년생인 홍 연구원은 암호화폐를 전담해 리포트를 쓰는 몇 안 되는 애널리스트다. 이전까진 채권을 다루다 2022년부터 ‘디지털 에셋 위클리(Digital Asset Weekly)’ 등 암호화폐 관련 리포트를 꾸준히 작성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선 전부터 시작된 암호화폐 랠리는 현재진행형이다. 국내에선 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암호화폐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 코인 거래소의 거래 금액이 국내 주식시장 전체 거래 대금을 훌쩍 뛰어넘는 역전 현상도 이젠 일상화됐다.
홍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도 제도권에 편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홍 연구원은 “당장은 규제가 있지만 미국발(發) 규제 완화가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며 “트럼프 당선인의 암호화폐 공약으로 규제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우수 인력이 더 많이 유입되고, 늘어난 자금이 시장을 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전환점을 꼽자면.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Exchange Traded Fund·상장지수펀드)가 나왔다는 점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이다. 현물 ETF의 경우, 2023년 6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신청해서 2024년 1월부터 거래가 됐다. 이 상품에 몇백억달러, 한국 돈으로 몇십조원이 모이며 흥행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지지하는 자산이라는 것도 하나의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2024년 5월부터 암호화폐에 관해 우호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같은 해 7월 습격을 당한 이후 비트코인이 오르더라. 그때부터 트럼프 당선인과 암호화폐 시장이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예전엔 암호화폐에 비판적이지 않았나.
“표심 때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쪽 산업이 성장할 거다’라는 거에 대해 믿음이 생긴 것 같다. 본인의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컬렉션도 여러 차례 발행했고, 대선 직전에는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이라는 디파이(DeFi·탈중앙 금융) 프로젝트를 일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추진하고 홍보까지 했다. 대선 이후에는 트럼프미디어앤드테크놀로지그룹이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 기업을 인수 추진 중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걸 보면 암호화폐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가격 외적인 측면에서도 고용이나 경제 효과가 있다. ‘미국이 무조건 1등이어야 한다’라는 트럼프 성향과도 맞지 않나 싶다. 그래서 암호화폐 관련 공약이 지켜질 것으로 본다.”
최근 눈여겨보는 곳이 있나.
“미국 코인베이스를 흔히 암호화폐 거래소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 그 역할 외에도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다하고 있다. ‘블록체인 산업이 성장한다’에 베팅하고 싶으면 사실 코인베이스를 사면 될 정도다. 국내 거래소와 달리 선물거래도 가능하고,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비트코인 ETF 수탁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의 수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사실 우리나라는 제한적이다. 다만 주식시장으로 보면, 블록체인 게임 사업 등을 영위하는 기업이 상장돼 있다. 또 암호화폐 거래소 지분을 보유한 곳도 있다. 이들 기업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과 연동돼 영향을 받는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나 한국투자공사(KIC)가 코인베이스나 마이크로스트레티지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으면서 간접적으로 암호화폐 투자가 허용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건 국민연금 같은 곳이 여러 종목을 지수로 묶어 투자해서 그렇다. 해당 종목이 그 지수에 편입되다 보니까 자동으로 들어간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국내시장에서 과제는.
“토큰증권 발행(STO) 관련 법제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는데, 속도가 났으면 좋겠다. 증권사도 어느 정도 인프라를 만들어 놓았으니 2025년 초 STO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사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비트코인 선물 ETF도 논의가 진행되면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비트코인을 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보니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좋고, 국내 운용사의 수익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암호화폐 시장에선 무엇을 보면 좋을까.
“금융권과 결합할 수 있는 디파이를 먼저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규제가 풀린다고 하면 사실 금융기관이 좀 빠르게 먼저 적용하지 않을까 싶은 이유에서다. 2025년 하반기 정도부터는 규제 완화나 공약한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또 산업 성장이 본격화하는 구간에 진입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규제 완화가 우리나라에 영향이 있을 거냐고 묻는 이도 있다. 미국에서 출시된 상품이나 시행한 제도가 문제가 없고 순기능이 있다는 게 검증되면 국내에도 순차적으로 도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기본적으로 일단은 가치 평가가 어렵고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 삼아 좀 한번 투자를 해본다면 비트코인을 먼저 추천한다. 원화 표시 통화나 자산이 아니기에 환 헤지(hedge⋅위험 회피) 효과도 있다. 이외에도 이미 미국에서 ETF가 출시된 이더리움이나 기존 시장에 적용할 가능성이 있는 디파이도 투자하기에 좋을 것 같다.
세미나 등을 하면 책을 추천해 달라는 얘기가 많다. 그러나 시장이 빠르게 바뀌다 보니 블록체인 관련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X(옛 트위터)를 많이 참고한다. 공지 사항이나 보도 자료, 투자 현황 이런 게 다 공유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담은 NH투자증권 리포트를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