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이 2024년 12월 붕괴했다. 북부 지역에서 명맥만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지던 반군의 급작스러운 공세의 결과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10년 넘게 진행된 시리아 내전은 중동뿐만 아니라 유럽 등 많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기간 진행된 내전 과정에서 10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330만 명은 국경을 넘어 인접 국가와 유럽으로 향했다. 대규모 난민 사태에 직면한 유럽은 독일의 주장대로 이들을 수용하기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 큰 혼란과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최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파 강세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리아 난민 사태와 만나게 된다.
시리아, 한국과 수교 않고 북한과 협력
시리아는 1946년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독립했으나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1963년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했다. 1970년 국방부 장관이던 하피즈 알아사드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고, 이후 최근까지 둘째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가 집권하면서 53년간 시리아는 세습 통치하에 놓여 있었다. 시리아는 1960년대 이집트와 공동으로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였으며, 1980년대에는 레바논 내전에 개입하는 등 중동의 강자로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가 대규모 석유 자원에 기대 지속적 발전을 이룬 데 비해 시리아는 폐쇄적 경제체제를 고수함으로써 점차 쇠락하게 됐다.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우리나라와 국교를 체결하거나 최소한 북한과 동시 수교하고 있지만, 시리아는 아직 우리와 국교를 체결하지 않고 북한과만 외교 관계를 수립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시리아는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는 국가라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 장기 집권했던 알아사드 대통령 일가는 알라위파라는 이슬람 소수 종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알라위파는 이슬람 주류 세력으로부터 이단시돼 왔지만, 시리아에서는 지중해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알라위파는 1970년대 후반 이란 시아파 성직자로부터 시아파와 관련성을 인정받게 됐고, 이후 시리아는 이란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됐다. 소수인 알라위파가 다수인 수니파를 지배하기 위해 알아사드 일가는 기독교를 비롯한 소수 종교에 대한 우대 정책을 실시해 왔다. 이에 따라 기독교 세력이 알라위파와 공동으로 반군 세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천연자원 없지만 가치 큰 입지(立地)
시리아는 중동에 위치하지만,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대규모 석유나 가스 등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시리아의 진정한 가치는 그 입지에 있다. 중동의 3대 강국은 사우디, 이란 그리고 튀르키예다. 지도에서 세 나라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그사이에 시리아와 이라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나라 가운데 어떤 나라가 이들 국가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유리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이 가운데 이라크는 1990년 걸프전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거치면서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다. 소수파인 수니파가 다수의 시아파를 통치하던 구조가 붕괴하면서 중동 3대 강국 사이 힘의 균형은 이란 쪽으로 기울었다. 여기에 더해 2011년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이란 및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가 개입하면서 시리아는 이란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됐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도 러시아 정부를 지원하면서 시리아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러시아의 거점이 됐다.
이란과 러시아가 시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을 때 조용히 영향력 확보에 나선 것은 튀르키예였다.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튀르키예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난민을 수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할 명분을 확보하게 됐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 지역으로 내몰린 반군 세력에 최소한의 거점을 확보해 주기 위해 시리아군은 물론 러시아군과 직접적인 교전을 불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관계 악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시리아 접경 지역에 완충 지대를 확보할 수 있었고, 다양한 반군 세력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리아는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 유프라테스강 동쪽을 장악하는 쿠르드족, 튀르키예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반군 세력이 균형을 잡게 되는 교착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하지만 2023년 10월 기습적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힘의 균형을 붕괴시켰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는 물론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한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공격을 통해 전력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이란과 미사일을 통한 직접적인 교전으로 이란의 세력이 예상보다 취약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튀르키예는 시리아의 지원 세력이 약화했음을 간파하고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양국이 공동으로 쿠르드족을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자 튀르키예는 자국이 지원하던 반군을 동원해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기습적인 공격에 나섰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알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에 발목이 잡힌 러시아는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고, 이란 역시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시리아를 둘러싼 중동 질서는 한순간에 튀르키예가 주도권을 잡는 형국으로 변화했다.
이란이 지원하던 알라위파의 몰락에 따라 사우디를 비롯한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은 시리아 국가 재건 지원에 나서면서 시아파 영향력 축소에 나서고 있다. 튀르키예는 이 과정에서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까지 확장되는 세력권을 확보하게 됐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를 상실함으로써 그동안 공들여 오던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접경 지역인 골란고원 지역의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완충 지대를 확보하고 있으며, 쿠르드 자치 정부를 지원하면서 튀르키예의 영향력 확대를 일정 부분 견제하고 있다. 자국 이익에 따른 노골적 행동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의 붕괴가 중동 지역에 평화를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분쟁의 단초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분쟁에 지친 시리아 국민은 일단 평화를 환영하고 있으며, 국가를 운영하게 된 반군 세력 역시 통합과 관용을 이야기하면서 재건에 나서고 있다. 시리아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시리아 국민의 단합 그리고 주변 국가와 관계 설정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