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AI가 손을 잡고 환자의 병을 검진하는 모습의 상상도. 의료 탐지견은 환자의 냄새 시료를 맡고 암을 감지하면 바로 앉는다. AI는 개의 행동을 분석해 진단 정확도를 높인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개와 AI가 손을 잡고 환자의 병을 검진하는 모습의 상상도. 의료 탐지견은 환자의 냄새 시료를 맡고 암을 감지하면 바로 앉는다. AI는 개의 행동을 분석해 진단 정확도를 높인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개는 사람보다 후각이 1만 배까지 뛰어나 병에 걸린 사람의 독특한 체취(體臭)를 가려낸다. 의료 탐지견은 이미 암이나 말라리아 환자는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감염자까지 찾아냈다. 과학자들이 의료 탐지견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암 검사 정확도를 94%까지 높였다.

개와 AI가 결합한, 이른바 하이브리드(복합형) 진단은 개가 사람 냄새를 맡는 동안 AI가 개의 행동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개가 AI와 결합하면 사전에 훈련받지 않았던 종류의 암이나 초기 단계의 암 환자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자연의 지혜와 인간의 지식이 결합해 암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이다.

비글 품종인 샤크(SHAQ)는 
네 가지 암을 탐지하기 위해 AI와 짝을 이룬 새로운 암 탐지견이다. 비글은 몸집이  작고 훈련하기  쉽다. /스포잇얼리
비글 품종인 샤크(SHAQ)는 네 가지 암을 탐지하기 위해 AI와 짝을 이룬 새로운 암 탐지견이다. 비글은 몸집이 작고 훈련하기 쉽다. /스포잇얼리

실험서 네 가지 암 환자 탐지

이스라엘의 바이오 스타트업인 스포잇얼리(SpotitEarly)는 2024년 12월 초 바이오-AI 하이브리드 암 검진 방식을 개발해 암 조기 발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AI와 결합한 의료 탐지견이 유방암과 폐암, 전립선암, 대장암 환자를 94% 이상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앞서 2024년 1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스포잇얼리는 이스라엘 의료 기관 네 곳에서 악성종양이 의심돼 생체검사를 받은 1386명으로부터 호흡 시료를 수집했다. 환자가 5분간 호흡할 때 착용한 마스크를 수집해 밀봉했다. 체취에 영향을 미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신 사람은 제외했다. 조사 대상자는 10명 중 6명이 남성이고 평균연령은 56세였다. 

병원에서 생체검사한 결과, 1048명(75.6%)은 암이 아닌 음성, 338명(24.4%)은 실제 암인 양성으로 판정됐다. 개가 마스크 냄새를 맡고 AI가 도운 결과, 네 가지 암 환자를 가려내는 민감도는 93.9%였으며,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특이도는 94.3%였다. 생체검사 결과와 거의 일치한 것이다. 특히 초기 단계의 암 환자도 94.8% 가려냈다.

의료 탐지견은 6개월 동안 사람 냄새를 맡고 암을 감지하면 앉고, 그러지 않으면 바로 옆 시료로 넘어가도록 훈련받았다. 개는 1초도 안 돼 앉거나 옆으로 이동했다. 문제는 사람이 개의 신체 언어를 일관되게 읽기가 쉽지 않았다. 제대로 앉았다가 이동했는지, 이동 속도가 느리면 잠시 주저했는지 판단하기 까다로웠다. 바로 AI가 필요한 이유다.

스프링거 스패니얼 품종의 말라리아 탐지견 프레야. /미국 열대의학및위생학회
스프링거 스패니얼 품종의 말라리아 탐지견 프레야. /미국 열대의학및위생학회

스포잇얼리 연구진은 개의 신호를 해석하는 AI 모델을 훈련했다. 실험 결과 기존 방식대로 개 혼자 검사하면 암 환자를 64.4% 정확도로 찾았지만, AI와 결합하면서 30% 이상 정확도가 향상됐다. AI가 단독으로 냄새 시료를 분석하는 것보다 이번 바이오-AI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 나았다.

스포잇얼리의 최고의료책임자인 렌 리히텐펠트(Len Lichtenfeld) 박사는 “의료 탐지견의 후각 능력과 AI의 힘을 결합해 단 한 번의 검사로 여러 가지 일반적인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이번 연구 결과가 차세대 암 검진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미국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해 2026년에 조기 결과를 보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실험은 의료 탐지에 많이 참여했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품종을 훈련했는데, 앞으로는 비글을 준비하고 있다. 비글이 더 작고 훈련하기 쉽기 때문이다.

암부터 코로나19, 마음의 병까지 찾아

개가 암 환자를 냄새로 찾는 것은 후각이 사람보다 1000~1만 배 뛰어나기 때문이다. 개는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3억 개로, 사람의 500만~600만 개를 압도한다. 수용체 단백질은 미로 형태의 얇은 뼈 표면에 붙어 있는데, 표면적도 개가 150~170㎠로 사람(5~10㎠)보다 훨씬 크다. 그만큼 냄새 분자와 후각 수용체가 더 잘 반응한다. 또 뇌 크기는 사람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냄새 처리 영역은 세 배나 크다.

의료 탐지견은 16년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클레어 게스트(Claire Guest) 박사가 2008년 의료탐지견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래브라도 품종의 반려견인 데이지가 자신의 가슴에 코를 대고 앞발로 두드리는 것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껴 병원으로 갔다. 게스트 박사는 데이지 덕분에 유방암을 일찍 발견해 목숨을 건졌다.

의료 탐지견은 그동안 다양한 질병을 진단했다. 2015년 이탈리아 연구진은 독일셰퍼드 두 마리가 전립선암 환자의 생체 시료를 98%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영국 더럼대와 의료탐지견재단 연구진은 2019년 탐지견이 아프리카 감비아 어린이가 신은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 감염자를 70% 정확도로 찾았다고 의학 학술지 ‘랜싯 감염병’ 에 발표했다.

코로나19 환자도 가려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수의대의 신시아 오토(Cynthia Otto) 교수 연구진은 2021년 4월 ‘플로스 원’에 탐지견이 소변과 타액 시료의 냄새를 맡고 코로나19 감염자를 96%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브리스톨 카운티 보안관은 미국 경찰 최초로 코로나19 탐지견을 도입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품종의 의료 탐지견이 환자가 5분 동안 착용한 마스크의 냄새를 맡고 있다. 의료 탐지견과  AI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암 검진 시스템은 네 가지 암을 94% 정확도로 찾아냈다. /스포잇얼리
래브라도 리트리버 품종의 의료 탐지견이 환자가 5분 동안 착용한 마스크의 냄새를 맡고 있다. 의료 탐지견과 AI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암 검진 시스템은 네 가지 암을 94% 정확도로 찾아냈다. /스포잇얼리

최근에는 ‘개코’가 마음의 병까지 찾아냈다. 병원에서는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가 의료 탐지견과 같이 생활하도록 한다. 탐지견은 환자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자해 행동을 하면 주위에 알린다. 의료 탐지견은 후각으로도 이상 징후를 알아챌 수 있다. 2022년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 연구진은 ‘플로스 원’ 에 “개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땀과 날숨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개는 악몽도 막을 수 있다. 미국 수면재단(Sleeping Foundation)에 따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사람이 악몽을 겪을 때 개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의료 탐지견은 악몽을 꿀 때 나타나는 신체 신호를 식별하도록 훈련받는다. 환자가 악몽을 꾸면 바로 깨워 도움을 준다. 수면재단에 따르면, 퇴역 군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57%가 의료 탐지견이 악몽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앞으로 의료 탐지견이 더 많은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