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최대 화두는 ‘탄핵(彈劾)’일 것이다. 탄핵에 대해 국어사전은 ‘잘못을 캐물어 벌을 준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옥편을 찾아보면 먼저 ‘탄(彈)’은 여러 뜻이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건 ‘탄알’. 이외에 ‘활’ ‘열매’ ‘튕긴다’ 등이 나온다. ‘꾸짖다’는 의미도 있다. ‘핵(劾)’은 ‘꾸짖는다’ ‘캐묻다’라는 뜻이니, ‘탄핵’은 ‘꾸짖는다’는 한자가 반복되는 단어다. 이 ‘탄’ 자와 비슷하게 생긴 한자가 있다. 바로 불교의 ‘참선 선(禪)’이다. 이 한자가 들어간 ‘구두선(口頭禪)’이란 단어는 ‘실행이 따르지 않는 실속 없는 말’을 이른다. 한 정치인이 이를 ‘구두탄(口頭彈)’으로 잘못 읽었다가 큰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이 말은 이후 널리 쓰이게 되면서 ‘입으로 쏘는 포탄’, 즉 ‘엄포’를 뜻하는 속어로 정착했다.
#2│ ‘탄핵’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임피치먼트(impeachment)’다. 어원은 라틴어 ‘임페디카레(impedicare)’다. 뜻은 ‘족쇄 채우기’ ‘엮어서 꼼짝 못 하게 하기’ 등이다. ‘꾸짖는다’라는 뜻이 아닌, 맡은 직무를 더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오늘날처럼 이 단어가 공직자에 대한 ‘탄핵’의 뜻으로 쓰인 시기는 16세기 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수반에 대한 최초의 탄핵 사건은 1868년 미국의 앤드루 존슨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탄핵 사례가 나타난 건 1950년대다.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승전국인 미국 영향으로 각국에 민주주의가 보급된 데 따른 것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955년 이후 26번의 탄핵이 각국 의회에서 통과했고, 여기에는 우리나라 노무현, 박근혜 등 두 대통령의 사례도 포함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도 하원에서 탄핵안이 의결된 적이 있다. 26번의 탄핵 시도 중 대다수는 법원에서 부결되는 등 구두탄에 그쳤고, 실제로 권력이 권좌에서 축출된 것은 그 반이 안 되는 12건에 불과하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국회의 반대로 불과 몇 시간 만에 철회됐고, ‘한겨울 밤의 소동’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컸다. 야당은 즉각 반발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여당 당대표까지 포함한 일부 국회의원의 동조로 가결됐다. 나아가 야당은 대통령이 내란을 획책했다며 비난 수위를 높였고, 탄핵안 가결 이후에는 실제로 이에 대한 수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찰, 국가수사본부(경찰) 등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최종 결론은 이제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결에 달리게 됐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성공에 고무된 탓인지 과할 정도로 탄핵을 남발한 면이 있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한 이유로 내세울 만큼 22차례에 걸쳐 여러 공직자에게 탄핵 카드를 던졌고, 여기에 대해 대통령 권한대행인 총리 탄핵도 가결 지었다. 이쯤 되면 탄핵은 이제 구두탄으로 쓰이는 모습이다.
사태의 여파는 정치 문제를 넘어 국민경제의 뿌리를 흔들 정도로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먼저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투매를 시작하면서 주가는크게 떨어졌고, 이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도 1500원 선에 육박해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인다.
탄핵은 그 정당성을 불문하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먼저 경제 심리에 대한 영향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런 뒤숭숭하고 불안한 정치 상황은 개인의 소비 심리와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11월보다 12.3포인트 낮아졌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 2025년 1월 전망치는 84.6으로, 2022년 4월(99.1)부터 기준선 100을 2년 10개월 연속 밑돌았다. 1975년 1월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장 기록이다.
또 탄핵은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린다. 국제 투자자는 정치가 불안한 국가에 투자 자체를 꺼려 팔기 쉬운 주식, 채권의 투자 자금부터 회수하기 마련이다. 이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고, 해외투자에 눈을 뜬 국내 투자자도 가세해 국내 주식을 팔아 미국 등 다른 나라 증시로 몰려가는 물결이 거세진다. 당연히 원·달러 환율은 폭등하고, 남아있던 외국인 투자자도 투자금의 달러 환산 가치가 떨어지면서 ‘더 늦기 전’에 한국 ‘엑소더스(탈출)’에 가담하는 악순환 고리가 정착된다.
기업은 탄핵이 잦을수록 그리고 그 성공 가능성이 클수록 국내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정권 주기가 짧아지고, 교체 가능성도 커지면 정책의 비(非)일관성과 불확실성이 커져서다. 실제 지난 20여 년간 새 정부마다 내놓는 기업 관련 정책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창의적’으로 기업 활동을 옥죄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당연히 기업은 국내 투자를 꺼리고, 해외 투자를 늘려 대응해 왔고, 이는 국내 일자리의 ‘해외 이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탄핵이 잦아지면 포퓰리즘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공직자는 탄핵당할 위험을 줄이고자 소신 있게 일할 수 없고, 인기는 없지만 꼭 필요한 정책을 펼 수 없다. 이에 따라 포퓰리즘 정책만 채택해 시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의 기대수명이 짧아지면, 정치인은 인기 없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를 주저하게 된다. 야권은 곧 수권 정당이 될 희망에, 여당은 곧 정권 교체를 당할 위험성에 직면해 표를 더욱 의식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반도체 기업인이 야당을 찾아가 읍소했음에도 ‘주52 시간’ 예외 규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그 사례다. 이렇게는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이나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안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탄핵 정국이 ‘빠르고 바르게’ 마무리되는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