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고층 오피스텔들. /뉴스1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고층 오피스텔들. /뉴스1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지나가고,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수가 도사리는 2025년 새해가 밝았다. 격랑이 예상되는 올해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주시해야 할 트렌드의 하나로 ‘월세 주택’을 꼽고 싶다. 전세 제도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개인 간 직접적인 사금융 역할과 주거 사다리라는 미명하에 존속해 왔지만, 월세로 전환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감지한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관 투자자는 발 빠르게 한국 주택 월세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모건스탠리, M&G리얼에스테이트, 인베스코, 하인즈, 존스랑라살(JLL) 등, 이들은 많게는 수백조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글로벌 투자회사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 월세가 돈이 된다는 인식하에 그동안의 상업용 부동산(오피스·물류·호텔 등) 투자 일변도에서 벗어나 주거용 부동산을 포트폴리오에 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한국 월세 주택에 눈독을 들이는 걸까.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전·월세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전·월세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주택 월세가 뉴노멀이 될 조짐

글로벌 큰손이 한국 월세 주택의 전망을 좋게 보는 이유는 한국 주택 시장의 사회적· 경제적·제도적 변화에 기인한다. 먼저 사회적 변화는 인구구조의 질적 변화와 전세 사기로 인한 사회적 인식 전환 그리고 부의 양극화 심화다. 인구구조 측면에서는 혼인율, 출생률 감소,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1~2인 가구 증가로 월세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악화되어 전세금 미반환 리스크를 고정적 월세 부담으로 갈아타고 있다. 더욱이 부의 양극화는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심화시키며,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층은 내 집 마련보다는 월세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고, 집을 여러 채 보유한 고소득층은 임대 사업자로서 매월 현금 창출이 쉬운 월세 공급을 늘릴 것이다. 

경제적 변화 역시 한국 월세 주택 시장의 확대를 가져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2024년 12월 발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현재 2% 안팎의 잠재성장률이 15년 후 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누렸던 과거의 고도성장보다는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크고, 향후 부동산 투자 방향은 자본이득(가치 상승)보다는 소득 이득(임대 수익)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향후 명목 중립 금리는 2% 선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어, 저금리를 활용한 차익형 투자의 거품 역시 꺼질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 변화는 2024년 8월에 발표된 정부의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 방안’을 통해 향후 임대주택 관련 규제·세제가 완화되고 기업형 임대 사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또한,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대출 규제 역시 전세 자금의 유동성 공급을 저해하고 월세 주택으로 전환을 가속할 것이다. ‘주거 안정’이라는 주택정책 명제하에 집값 안정과 가계 부채 감소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 임대주택 공급 확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뉴노멀이 될 것으로 보이고, 글로벌 부동산 투자 기업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상가 자리도 뺏을까

아파트는 주택 세 채 중 두 채일 정도로 유독 한국에서 절대적인 주거 형태를 보인다. 요즘 20~30대는 부동산 재테크 대상으로 단독주택, 빌라, 상가, 토지를 얘기하지 않는다.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자란 첫 세대라 아파트가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파트의상품성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머지않아 월세 주택 시장이 활성화되면 아파트는 전통적인 임대형 상품인 상가를 대체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임대형 상품의 대표 주자가 상가에서 아파트로 바뀔 가능성을 크게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긴 체류 시간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집의 지위는 ‘레이어드 홈(트렌드 코리아 2022)’으로 격상되었다. 이제 집은 숙식만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업무, 운동, 취미, 엔터테인먼트, 케어 등 다양한 공간으로 이용됨으로써 효용성이 높아졌다. 

즉, 의식주의 하나인 필수재의 성격에 실제 체류 시간을 늘리면서 공간을 다용도로 활용하는 사용재의 성격이 가미되는 것이다. 결국 효용의 계량화가 월 임대료로 발현된다. 

사실, 집의 공간 진화는 상업용 공간의 축소를 유발한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대신, 엄지족은 집에서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한다. 직장인은 때때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직무실이 아닌 집무실에서 업무를 할 수 있다. 점점 오프라인 상업용 공간에서 체류하는 시간은 줄 것이고, 그 공간의 효용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낮은 공실 리스크다. 경제 저성장과 소비력 있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상가의 매출을 줄일 것이고, 공간의 공실 리스크를 높일 것이다. 이에 반해, 아파트 공실은 리스크가 매우 낮다. 인구는 줄지 모르지만 상당 기간 가구 수는 증가함에 비해, 급격한 공사비 상승과 경기 침체로 공급은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축 아파트 사업장을 보면, 최대한 상가 비율을 줄이는 경향은 고착화되었고, 상업지역마저도 노후 상가를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개발안이 최우선으로 검토되는 실정이다.

셋째, 높은 환가성이다. 토지·건물로 이루어진 상가 빌딩은 거래 금액 규모가 크고 거래가 뜸하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집합 건물인 구분 상가도 상권 침체로 예전만큼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다. 이에 반해, 아파트는 금액 문제지 원하는 시기에 매매할 수 있다. 최근 강남 꼬마 빌딩을 매각하고 고가 월세 아파트를 매입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수익률은 비슷한데, 관리하거나 매각할 때 아파트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선호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팀장 - 감정평가사, 전 대림산업· 노무라이화자산운용 근무
이선호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팀장 - 감정평가사, 전 대림산업· 노무라이화자산운용 근무

미래 부동산 공간의 변화는

앞으로 주거용과 상업용의 이분법적 공간 구분이 필요할까. 미래 융복합 시대의 부동산은 업무·여가·상업·주거 등 복합적인 기능을 갖는 공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지금의 아파트로 불리는 공간이 복합적 기능을 갖는 대표적 투자 상품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오피스 같은 커튼월의 수려한 외관, 여가와 상업 활동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공간, 가변 벽체와 높은 천장고를 반영한 공간감 등 아파트의 사용재로서 효용성은 더 높아질 것이고, 월세 수익형 상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에 한 표를 던진다. 

이선호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