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 계획이 수립돼 공표되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배출권거래제는 현재 제3차 계획 기간(2021~2025년)이 운영되고 있고,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제4차 계획 기간이 운영될 예정이다. 이번에 발표된 기본 계획을 통해 제4차 계획 기간이 어떤 방향으로 운영될지에 대한 개략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특히, 제4차 계획 기간의 마지막 연도인 2030년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의 목표 시점과 맞물려 있어, 산업계에서는 제4차 계획 기간에 특히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배출권거래제에서는 계획 기간마다 두 가지 종류의 행정 계획을 수립한다. 첫 번째는 이번에 발표된 기본 계획으로, 10년 단위로 5년마다 수립하는 중장기 계획이다. 두 번째는 2025년 6월 말에 발표 예정인 할당 계획으로, 5년 단위로 운영되는 계획 기간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담긴다.
기업이 가장 궁금해하는 ‘우리 기업의 할당량은 얼마인가’ ‘우리 기업은 무상 할당 대상인가’ ‘우리 기업의 유상 할당 비율은 몇 %인가’ 등에 대한 내용은 할당 계획이 나와야 알 수 있다. 기본 계획에서는 개략적인 방향만을 제시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 정확한 영향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발표된 기본 계획에서 향후 규제 강도가 어떨지, 기업은 어떤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략적인 짐작을 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정책 방향이 제시돼 있어 이를 소개 한다.
배출량 할당 형평성 제고
첫 번째는 ‘배출허용총량’ 구분 기준의 단순화다. 현재는 NDC의 부문 구분과 유사하게 전환, 산업, 건물, 수송, 폐기물, 공공 기타 등으로 부문을 구분해 배출허용총량을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문별로 조정 계수가 다르게 설정돼 있고, 각 업체가 어떤 부문에 속하는지에 따라 상이한 감축 부담을 지게 된다.
제4차 계획 기간에서는 발전과 발전 외(外) 등 두 개 부문으로 단순화해 구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발전을 제외한 모든 업체는 동일한 조정 계수를 적용받게 된다. NDC에서 설정된 부문별로 상이한 감축률이 배출권거래제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으나, 배출권거래제에서 구분한 부문이 NDC의 부문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동일한 배출 시설을 소유한 업체의 성격에 따라 조정 계수가 달라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유상 할당 업종 선정 기준의 변경이다. 현재는 업체가 속한 업종을 기준으로 무상 할당 또는 유상 할당이 결정되는데, 제4차 계획 기간에는 사업장의 업종을 기준으로 유무상 할당을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철강 업종에 속한 업체의 경우, 변경된 기준에 따르면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 사업장은 계속해서 철강 업종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본사, 연수원, 물류센터 등의 사업장은 건물 부문 업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즉, 현재 모든 사업장에 대해 무상 할당을 받은 업체라 할지라도, 제4차 계획 기간에는 일부 유상 할당 대상 사업장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제4차 계획 기간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비용 발생도라는 평가 지표를 탄소 집약도라는 지표로 변경할 계획이다.
비용 발생도는 ‘배출량×배출권 가격÷부가가치 생산액’이고, 탄소 집약도는 배출권 가격을 제외한 ‘배출량÷부가가치 생산액’으로 계산한다. 최근 변동성이 커진 배출권 가격을 산정식에서 제외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없앤다는 취지이며, 산정식 변화에 따른 업계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 감축 유도
세 번째는 발전 업종에 대한 유상 할당 비율 차등 적용이다. 현재는 모든 유상 할당 업종에 대해 10%의 동일한 유상 할당 비율을 적용하고 있다. 제4차 계획 기간에는 발전 업종에 대한 유상 할당 비율을 대폭 상향할 계획이다. 다만, 그 수준에 대해서는 향후 할당 계획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는 발전 업종에 대한 낮은 유상 할당 비율에 따라 일반 산업계에 대한 간접 배출 규제가 이중 규제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발전 업종에 대한 유상 할당 비율이 대폭 상향된다면, 배출권거래제에서 간접 배출 규제를 제외하는 논의를 시작할 기반이 될 수 있다.
네 번째는 배출효율기준(BM) 할당의 확대 및 강화이다. 제4차 계획 기간에는 BM 할당 대상을 더욱 확대해 배출량의 75% 이상을 BM 방식으로 할당할 계획이다. 또한 현재 업종 평균 원 단위 수준인 BM 계수를 상향하는 계획도 밝히고 있으나, 구체적인 수준에 대해서는 할당 계획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BM 계수가 강화되더라도 업계 전체적인 할당량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BM 계수는 업체의 할당 신청량을 결정하는 기준이며, BM 계수 강화에 따라 할당 신청량이 전체적으로 감소하게 되면, 조정 계수가 상승해 최종적인 할당량은 유지된다. 다만, 특정 업종에서 평균 수준과 상위 업체 간 원 단위 격차가 크다면, 즉 감축 여력이 있다면, 해당 업종에 상대적으로 감축을 유도하는 할당 방식이 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한국형 시장안정화예비분(K-MSR) 도입이다. 현재의 시장안정화제도는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는 국면에서 예비분 공급 등을 통해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지만, 시장에 잉여 배출권이 풍부해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최저 거래 가격 설정 이외에 가격 하락을 막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하락하는 국면에서도 정상적인 시장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안정화제도 도입을 예고하고 있다. 2019년 말 1t당 4만원대로 최고점을 기록했던 배출권 가격은 2020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 추세이고, 2024년 말 현재 1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제4차 계획 기간에 도입 예정인 K-MSR 제도는 현재의 배출권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현재 배출허용총량과 별도로 설정하고 있는 시장 안정화 예비분을 배출허용총량 내에서 설정함으로써, 그만큼 사전 할당량이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할당 계획에서 시장 안정화 예비분을 어느 정도 규모로 설정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