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가 광범위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한다면, 소도시는 특정한 이야기에 집중해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는 외부인의 관심을 끌고, 정주민과 생활 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콘텐츠 투어리즘’은 도시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영화, 음식, 축제, 시장 등 특정 콘텐츠를 매개로 도시를 경험하는 여행은 소도시의 브랜딩을 강화하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단순히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넘어 그곳의 이야기를 체험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콘텐츠 투어리즘의 핵심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오래된 것인지 새로이 만들어진 것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구미라면축제로 본 당위성과 개연성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의 역사가 유례없이 긴 드문 나라다. 도시 국가 형태로 성장한 유럽이나 막번체제(幕藩體制)의 역사를 가진 일본처럼 특산물, 음식, 문화 등에서 지역 간에 차이가 크게 없는 편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지역 콘텐츠는 역사성이나 인과관계 같은 당위성보다는 ‘그럼직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개연성에 주목해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경험의 충실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으로 개연성을 인정받는 콘텐츠가 돼야 한다. 

경북 구미의 구미라면축제(이하 라면축제)가 좋은 예다. 산업과 콘텐츠를 융합한 라면축제가 2022년부터 구미에서 열리고 있다. 구미는 한국에서 가장 큰 라면 공장이 위치한 산업도시다. 국내 라면 생산의 약 36%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이러한 산업적 정체성을 활용해 구미시는 라면축제를 기획, 도시 브랜딩에 활용하고 있다. 구미가 라면의 발상지는 아니다. 구미만의 독특한 라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구미에서 라면축제가 열리는 당위성은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산업도시라는 역사적 정체성에 한 끼를 빠르게 해결하는 ‘빨리빨리’에 최적화된 라면은 급속한 산업화의 상징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산업도시 구미에 잘 어울린다. 거기에 실제로 대규모의 라면 공장이 있다는 실체가 있다. 현장에서의 경험 충실성을 높이기 쉽다. 선진국에 들어서며 라면은 그저 끼니를 해결하는 수단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됐다. 이제 라면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 구미에서 라면축제가 열리는 것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경험의 충실성과 완성도 그리고 섬세함 측면에서 구미의 라면축제는 의미 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라면은 한국인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상징적인 요소다. 구미는 이를 단순히 산업으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로 확장해 도시의 매력을 강화했다. 경험의 충실성, 완성도, 섬세함에서 라면축제가 좋은 평가를 받는 데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고 본다.

구미라면축제가 열린 경북 구미 문화로. /구미라면축제 인스타그램
구미라면축제가 열린 경북 구미 문화로. /구미라면축제 인스타그램

 라면축제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는 요리 경연 대회다. 방문객은 자신만의 창의적인 라면 요리를 만들어 경쟁하며, 라면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구미가 가진 산업적 기반이 단순히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창의적 가능성을 지닌 콘텐츠임을 느낄 수 있다.

 구미의 라면축제는 방문객에게 라면의 제조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참가자는 라면의 재료를 선택하고 반죽을 만들어 면을 뽑아보는 과정을 통해 라면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교육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방문객에게 구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 

 축제에서는 라면의 기원과 발전 과정 그리고 한국에서 라면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를 소개하는 전시가 진행된다. 특히 구미가 한국 라면 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라면 제조의 기술혁신에 대한 이야기는 방문객에게 지역과 산업의 연결성을 강조하며, 구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라면을 판매하는 마켓이 운영된다. 특히, 구미 공장에서 생산된 한정판 라면과 축제를 기념하는 굿즈는 방문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구미는 라면을 중심으로 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며,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도시와 강한 감정적 연결을 형성하도록 한다.

이처럼 구미의 라면축제는 단순히 산업적 성과를 축하하는 것을 넘어, 라면을 중심으로 도시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방문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라면이라는 친숙한 아이템을 활용해 구미는 ‘라면 도시’라는 독창적이고 젊은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이 이미지는 젊은 세대와 라면 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구미의 사례는 소도시 브랜딩에서 지역의 산업적 특징을 문화와 콘텐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산업적 기반은 구미만의 독창적인 스토리가 됐고, 이는 구미를 단순한 공업 도시에서 콘텐츠가 있는 매력적인 도시로 변모시킬 계기를 만들었다.

문화도시와 일상성의 확보

2024년 12월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 문화도시’에 6개 권역 13개 도시를 최종 지정했다고 밝혔다. 도시별로 200억원씩 3년간 총 2600억원을 투입해 대한민국 문화도시를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13개 도시의 입장에서는 콘텐츠 투어리즘과 결합, 도시 활성화를 도모할 기회를 얻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천이나 구미처럼 개연성만으로도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는데, 이번에 선정된 13개 도시는 일정 정도의 당위성까지 확보한 곳이란 공통점이 있다.

성공적인 콘텐츠 투어리즘을 위해선 우선 계기를 잘 만들어야 한다. 축제 같은 이벤트는 콘텐츠 투어리즘을 통한 도시 활성화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이벤트는 특정 기간에 사람을 모으고 집합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콘텐츠를 경험하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남은 것은 일상성의 확보다. 김밥축제로 김천이, 라면축제로 구미가 부각되고, 사람이 모이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축제가 없는 기간에도 김천에서는 김밥으로, 구미에서는 라면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겪을 수 없는 다른 경험을 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문화도시로 선정된 13개 도시가 계기의 제시와 일상성의 확보라는 두 과제를 잘 풀어내 콘텐츠 투어리즘으로 브랜딩을 성공시킨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소도시 브랜딩은 지역 소멸이라는 현대적 위기에 대한 창의적 해법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도시의 매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외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며 정주민, 생활 인구를 증가시키는 것이야말로 소도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길이다. 콘텐츠 투어리즘과 소도시 브랜딩은 단순히 관광을 넘어 지역과 외부인을 연결하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야기가 있는 도시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 연결은 소도시를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끌어갈 것이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