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려면 포퓰리즘이 부활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이 새 정부 운영을 준비하고, 민주당이 충격적인 패배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미국에선 포퓰리즘 재등장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트럼프의 부상을 이끈 2010년대 중반의 포퓰리즘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금융 위기와 그로 인한 경기 침체, 더딘 경제 회복은 대다수 근로자에게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하며 분노와 불만을 키웠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미국의 실질 중위 소득은 2014년에 이르러서야 2007년 수준을 회복했다. 위기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정부의 공공복지 증진 능력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다. 이는 좌우 양쪽에서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비옥한 토양이 됐다.
포퓰리즘은 자주 사용되는 용어지만, 명확히 정의되는 것은 드물다. 필자는 포퓰리즘이 세 가지 특징으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대중과 엘리트를 대립 구도로 보는 세계관이다. 둘째는 현재와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론이다. 셋째는 폐쇄적인 국가 태도를 지향하려는 욕망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우파의 ① 티 파티 운동, 좌파의 ② 월가 점령 시위로 나타났다. 2013년까지 이어진 이러한 움직임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불평등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 과제”라고 선언하게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 진단은 필자의 관점에서는 부정확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는 공화당의 지도권을 잡았고, 포퓰리즘적 선동가인 버니 샌더스도 민주당에서 거의 비슷한 위치까지 올라섰다.
2008년 금융 위기가 글로벌 현상이었던 만큼, 영국과 유럽에서도 포퓰리즘이 부활했다. 이는 역사적 패턴과 일치한다. 지난 150년을 돌이켜보면, 금융 위기는 종종 포퓰리즘으로 이어졌다. 다행히도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10년 이내에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2018년쯤에는 포퓰리즘이 사라지는 듯했다. 일반적인 근로자 가구의 경제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덜 분노하고 있었다.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미국이 다시 발돋움하려던 찰나,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 과거의 팬데믹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뒤따랐고, 엘리트가 크게 실패했다는 인식이 포퓰리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엘리트가 실패했다’는 인식이 항상 틀린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에 대한 제한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보건 당국이 ‘6피트 거리 두기’ 규칙 같은 지침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보였을 때 더욱 그랬다. 백신과 치료제가 널리 보급된 이후에도 부모는 어린 자녀가 평범한 질병에 걸렸을 때 과도한 의무 격리 기간을 감당해야 했다. 비극적으로도, 엘리트는 2020년 가을에 학교를 재개하지 않고 아이들을 너무 오랫동안 교실 밖에 머물게 했다. 그 결과 많은 아이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교육 손실을 보았다.
포퓰리즘을 우려하는 우리에게 최근의 역사가 확인시켜 주는 긍정적인 면은 이 현상이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미국 근로자가 4~5년간 견고한 실질임금 성장을 경험할수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처럼 포퓰리즘 정서는 다시 사그라들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필자가 기대하는 것은 트럼프식 포퓰리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정치적으로 덜 중요한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치적 우파에는 항상 포퓰리즘적 요소가 있었다. 1990년대 ③ 팻 뷰캐넌(Pat Buchanan)의 정치적 성공은 트럼프의 부상을 예고한 사례였다. 1996년 공화당 경선에서 뷰캐넌은 초기에 2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6년 경선에서 트럼프의 초기 득표율은 34%였다. 미래의 공화당 경선에서 포퓰리즘이 뷰캐넌의 득표율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회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배워야 할 교훈은 경제 관리의 중요성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5년간 실질임금 증가율이 둔화한 것이 미국 역사에서 포퓰리즘 장을 열었다. 최근 4년간의 급격한 물가 상승은 명목임금 상승을 상쇄하며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복귀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이 뒤늦게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 많은 민주당 지도자는 대중의 과반이 트럼프를 피하고자 해리스를 선택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트럼프를 싫어하면서도, 그에게 2020년보다 더 많은 표를 줬다. 이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급격한 인플레이션, 실질임금 정체, 사상 최고 수준의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유권자가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에도 중요한 교훈이 있다. 유권자는 무역전쟁과 엄격한 이민정책을 실험할 대통령을 원할 수 있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변할 수 있다. 공화당이 2028년에 다시 승리하고 싶다면 앞으로 4년 동안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포퓰리즘적 정책은 효과가 없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① 2009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경제 위기에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 적자를 무릅쓰고 7870억달러(약 1160조1167억원)의 경기 부양 자금을 투입하자, 이에 반대하는 ‘티 파티’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졌다. 건전한 재정 운용, 작은 정부, 세금 인하 등 보수적 가치를 내걸었다. 2009년 4월 15일 납세의 날을 기념해 개최한 집회에는 미국 전역에서 3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티 파티는 1773년에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티 파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773년 영국 식민지 시절 보스턴 시민은 영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과한 세금에 격분해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상선의 홍차를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다.
② 2011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진행된 반자본주의 시위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실업률 증가,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정부 등이 시위의 배경이 됐다. 시위대는 자신의 경제적인 고통이 ‘1% 최고 부유층’의 착취와 탐욕에 의한 것이라는 의식을 갖고, “1%에 맞선 99%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우리는 99%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자본주의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시위는 이후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③ 1992년, 199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인물이다. 1992년 공화당 경선에서 조지 H.W. 부시와 경쟁해 강경 보수층을 자극하며 23%를 득표했고, 1996년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반대와반이민정책을 주장하며 출마해 밥 돌에 이어서 2위를 했다. 리처드 닉슨 정부와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백악관 특별보좌관, 공보국장을 지냈다. 다양한매체에서 보수 측 패널로 출연하며 지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