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관세, 중국 제품. 2025년 한국 제조업이 넘어야 할 장벽이다. 달러 대비 원화 약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재선되던 날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 불연속적으로 심화했다. 전자는 미국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후자는 한국이 더 약해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환율 급등을 이렇게 일회적인 사건과 직접적으로 결부해 설명할 수 있는 전례는 많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중국과 격차를 더 벌리고 미국을 경제적으로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를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관세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이 고려하는 중국 제품에 대한 고관세와 수입국에 대한 보편 관세 모두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과잉생산된 중국 제품이 미국 외의 세계시장에 값싸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제품은 우리의 주요 제조 수출품인 범용 반도체, 고급 휴대전화, 전기차, 이차전지, 철강, 조선, 일반 기계, 석유화학을 포함한 모든 제조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앞세워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확보하면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잠식했다. 문제는 처음 언급한 세 가지 장벽이 기업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외부 발생 요인이라는 데 있다.
더 나쁜 소식은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2025년에는 전년에 비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제품 경쟁력이 약화하는 상황에서는 물건을 더 많이 팔 자신이 없기 때문에 금리가 낮더라도 설비투자에 나서기 힘들다. 그나마 성장 전망이 양호한 조선업도 불황의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지 않아서 현재의 설비 능력 범위 안에서 수주하고 있다. 조선업 매출 규모는 반도체의 6분의 1이다. 유일하게 반도체 생산 매출보다 규모가 큰 국내 업종은 건설 산업이지만, 이마저 침체의 늪이 깊다.
한국의 제조업은 눈앞에 닥친 외부 발생변수 외에도 오래 지속된 근본적인 내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61만 개의 제조 기업에서 약 420만 명이 일하고 있다. 전체 기업 가운데 100인 이상을 고용한 기업은 0.65%에 지나지 않는다. 500인 이상을 고용한 기업은 0.04%다. 대기업은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이 6000만원이지만, 중견기업은 3000만원, 중소기업은 1000만원이다. 10명 이하를 고용한 생계형 중소기업(89%)의 연간 영업이익은 1억원 이하다. 미래를 위해 무언가 해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그러기에 한국의 제조업은 철저히 소수의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8%로 제조업 선진국인 일본 20.5%, 독일 18.5%에 비해 월등히 높다. 급속히 노쇠해 도약의 힘이 약화한 높이뛰기 선수에게 대외 환경이 올려놓은 바의 높이가 도저히 감당 불가한 높이에 걸쳐 있는 형국이다.
앞선 두 번의 경제 위기를 한국이 어떻게 극복했는지 생각해 보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시기는 그 이전에 빚을 내 과잉 투자한 설비와 국민의 단합을 끌어낸 지도력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몫을 했다.
2016년 탄핵 정국 역시 반도체 호황기의 설비투자가 크게 기여했다. 위기 극복의 공통 분모인 설비투자를 반도체, 정보기술(IT) 부품, 자동차, 이차전지, 철강, 조선, 일반기계, 석유화학 등에 당장 밀어붙이려 하여도 그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손을 놓고 있으면 반드시 다가오는 경제 위기의 두려움 때문에 조급하게 돈이 들어가는 해법을 찾다 보면 나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선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을 신속히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을 조속히 매듭지어야만 한다. 이는 한국 경제와 기업 경영에 꼭 필요한 선결 조건이다. 현재 상황에서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국 제조업은 분명히 위기다. 손을 놓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제조업은 정점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