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 SNS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 SNS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가 2024년 12월 27일(현지시각), 7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올리비아 핫세의 공식 인스타그램엔 “올리비아 핫세 아이슬리의 죽음을 깊은 슬픔과 함께 알립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라는 부고가 올라왔다. 오늘날 ‘내추럴 뷰티’의 기준이 된 천상의 미모의 소유자, 긴 생머리의 아이콘 올리비아 핫세의 아름다움을 플래시백 해본다.
패션계에 영감을 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드레스. /올리비아 핫세 SNS
패션계에 영감을 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드레스. /올리비아 핫세 SNS
1968년, 세계는 하나의 얼굴에 매혹됐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맡았을 때 나이가 겨우 15세. 신성 올리비아 핫세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판타지였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천상의 천사가 내려온 듯했다. 맑은 눈동자와 순수한 베이비 페이스와 상반되는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지닌, 베이글녀(베이비 페이스에 반전되는 글래머 몸매를 가졌다는 뜻)의 원조이기도 하다. 스크린 속에서 완벽한 줄리엣의 환생이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디자이너와 뷰티 브랜드의 뮤즈로 추앙돼 왔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올리비아 핫세가 입은 긴 소매의 엘리자베스풍 드레스와 섬세한 자수 디테일은 당시 패션 흐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그녀는 르네상스 복고풍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보헤미안 감성과 고전적 우아함을 완벽히 조화시켰다. 줄리엣 패션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영화 속 드라마틱한 실루엣과 따뜻한 컬러 팔레트는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 모두에 영감을 줬고, 비슷한 스타일의 드레스가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그녀의 영화 의상에서 영감받아 1970년대 컬렉션에 르네상스풍 드레스를 선보였다. 또한, 대중적인 패션 브랜드도 올리비아 핫세 스타일을 재해석한 보헤미안 드레스와 블라우스를 선보이며 뉴 로맨티시즘의 유행을 이끌었다.

내추럴 뷰티 유행을 이끈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 SNS
내추럴 뷰티 유행을 이끈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 SNS

동시에 올리비아 핫세의 메이크업 룩은 내추럴 뷰티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아이 메이크업과 과장된 립 컬러 대신, 올리비아 핫세는 은은한 립 틴트와 얇게 그린 아이라인 그리고 맑고 생기 있는 피부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그녀의 내추럴 메이크업은 현대 뷰티 트렌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로 룩(glow look·건강한 생기의 피부 표현을 강조하는 광채 룩)에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전 색조에 집중하던 메이크업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피부 본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2020년대에 급부상한 뷰티 브랜드 글로시에(Glossier)와 샬롯틸버리(Charlotte Tilbury)에서 선보인 글로 메이크업 라인이 올리비아 핫세의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에서 영감받았다고 전해진다.

최근 디올의 포에버 글로우 컬렉션에서도 올리비아 핫세를 발견하게 된다. 광고 캠페인 속에서 디올 모델인 여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와 블랙핑크의 지수는 자연스러운 긴 생머리에 은은한 내추럴 광채 피부를 빛내고 있다. 올리비아 핫세 이미지의 2024년 에디션이라 할 수 있다.

긴 생머리의 아이콘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 SNS
긴 생머리의 아이콘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 SNS

무엇보다 올리비아 핫세는 긴 생머리를 대표하는 불멸의 아이콘이다. 풍성하고 매끄러운 긴 생머리 스타일의 완벽한 초상이다. 그녀의 긴 생머리는 순수함과 고혹적인 매력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영화 속 줄리엣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녀의 머리는 긴 길이와 풍성한 볼륨 그리고 부드러운 텍스처로 유명했다. 지금까지도 긴 생머리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올리비아 핫세를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할 정도로 생머리 룩의 레전드다. 당시 여성들이 지나치게 세팅된 헤어 스타일이나 부스스한 히피 헤어 룩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케어된 생머리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로레알(L’Oréal)과 팬틴(Pan-tene) 같은 글로벌 헤어 케어 브랜드는 올리비아 핫세의 머릿결을 연상시키는 윤기 나는 생머리를 광고 캠페인의 주요 이미지로 활용했다.

긴 생머리와 함께 영화 속 ‘줄리엣 헤어’도 웨딩과 스페셜 이벤트 헤어 스타일로 사랑받는 클래식이다. 줄리엣 헤어는 센터 파트(center part·중앙 가르마)가 특징이다. 5 대 5로 정갈하게 가르마를 타 귀를 살짝 덮도록 라운드로 모양을 잡은 올림머리 스타일은 지금도 웨딩 헤어의 정석으로 사랑받는다. 양옆으로 머리를 가늘게 땋아 뒷부분에 묶어주는 반묶음 머리와 느슨하게 땋아 내린 머리도 올리비아 핫세가 유행시킨 줄리엣 헤어다. 1996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은 클레어 데인즈와 2013년 리메이크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헤일리 스테인펠드도 영화 속에서 반묶음 머리 스타일의 줄리엣 헤어를 연출했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안타깝게 올리비아 핫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10대의 올리비아 핫세는 라이징 스타가 된 부담감으로 불안과 반항심을 통제하지 못했고, 좋은 배역을 맡을 많은 기회를 놓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순한 이미지와 달리 인터뷰 중에 담배를 피우는 등의 반항적 행동으로 불량소녀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세 번째 남편인 가수 겸 배우 데이비드 아이슬리를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갖게 될 때까지, 방황은 계속됐다. 그렇게 찬란한 리즈 시절은 길지 못했지만, 올리비아 핫세가 시대를 초월한 타임리스 뷰티 아이콘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녀가 남긴 자서전의 제목 ‘발코니의 소녀(The Girl on the Balcony)’처럼, 발코니에서 웃는, 긴 생머리의 소녀 줄리엣의 모습으로 영원히 저장해 두고 싶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