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사진가 스테판 드라샨은 미술관에서 뛰어난 관찰력과 인내심으로 이어오고 있는 사진 시리즈를 ‘미술관에서의 우연’에 담았다. 그가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김진영
오스트리아 사진가 스테판 드라샨은 미술관에서 뛰어난 관찰력과 인내심으로 이어오고 있는 사진 시리즈를 ‘미술관에서의 우연’에 담았다. 그가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김진영

‘미술관에서의 우연(Coincidences at Mu-seums)’은 오스트리아 사진가 스테판 드라샨(Stefan Draschan)이 미술관에서 뛰어난 관찰력과 인내심으로 이어오고 있는 사진 시리즈를 담은 책이다.

스테판 드라샨이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2014년 베를린 샤프 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에서 조지 브라크(George Braque) 그림을 관람하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브라크의 회색톤 큐비즘 회화와 남성의 회색 패턴 티셔츠가 하나의 세트처럼 보였다. 

스테판 드라샨 ‘미술관에서의 우연’ 표지. /김진영
스테판 드라샨 ‘미술관에서의 우연’ 표지. /김진영

드라샨은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 미술관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관람객이라는 존재를 경멸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관람객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에 담기 시작하면서 그는 다양한 관람객이 만들어내는 미술관 풍경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흔히 대가의 작품 혹은 고전이라 불리는 것과의 조합을 찾는 것을 선호한다. 현대미술과의 조합은 너무 흔하고 쉽게 느껴진다. 나는 수백 년의 시간에 다리를 놓고, 다른 시간대를 연결하고 싶다. 이러한 우연을 체계적으로 더욱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이후 그는 파리, 베를린, 뮌헨, 빈 등 유럽 전역의 주요 미술관을 방문해 이 작업을 진행했다. 드라샨이 주목한 것은 예술 작품과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 간에 우연히 발생한 시각적 유사성이다.

이들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는 ‘우연’이다. 연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미술관 한쪽에서 적절한 인물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 결과물이다. 관람객은 모르는 사이 예술 작품과 조화되는 우연의 순간을 이룬다. /김진영
이들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는 ‘우연’이다. 연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미술관 한쪽에서 적절한 인물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 결과물이다. 관람객은 모르는 사이 예술 작품과 조화되는 우연의 순간을 이룬다. /김진영

드라샨은 관람객의 행동이나 모습이 전시된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어떤 경우에는 작품 앞에서 2분 만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사진 한 장을 얻기까지 미술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했다. 그 결과 관람객이 입은 옷 색상이나 패턴 등이 작품의 세부 요소와 일치하거나, 관람객의 헤어스타일이나 자세가 그림이나 조각상의 인물과 놀랍도록 닮은 순간이 그의 렌즈에 포착됐다. 예를 들어, 한 관람객의 꽃무늬 드레스가 모네의 풍경화와 완벽히 조화를 이루거나, 어떤 사람의 헤어스타일이 르네상스 초상화 속 모델과 놀랍도록 비슷한 경우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머리카락, 셔츠, 치마 등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의 연장선인 것처럼 한 프레임에 담겨있다. 

드라샨의 사진에서 중요한 요소는 우연이다. 연출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해 보이지만, 이 사진은 작가가 미술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적절한 인물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 결과물이다. 

미술관 관람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술 작품과 조화를 이루는 우연의 순간을 작가는 포착한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는 작가의 치밀한 관찰력과 인내심 그리고 뛰어난 직감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작가의 시선에 의해 관람객과 작품 간 특별한 관계가 일시적으로 형성되는데, 이 찰나의 순간이 독특한 재미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이에 더해 드라샨의 사진은 예술과 관람객 사이 연결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미술관은 전통적으로 조용하고 통제된 정적인 환경으로 인식된다. 이 사진은 미술관 공간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 바로 다채로운 관람객의 존재임을 발견하게 한다. 사진 속 인물의 겉모습은 이들의 취향이 너무나 다양함을 짐작하게 한다. 이들은 같은 예술 작품을 바라보며 다양한 겉모습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예술 작품의 수용 과정에서 관람객이야말로 즉흥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요소이며, 이들이 작품에 각기 다른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을 것이다. 

예술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시각화한 이 사진은 관람객으로서 나 자신이 예술 작품과 맺고 있을 관계를 재고하게 하고, 일상에서 우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유머를 발견하게 한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