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와인 제조를 돕는 도구일 뿐, 사람의 손길, 장인 정신 그리고 풍부한 제조 경험이 와인 품질을 결정짓는 미묘하지만 대체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세계적인 와인 생산 기업 마르케시안티노리의 알비에라 안티노리 회장은 600년 이상 최고 품질을 유지한 비결을 이렇게 요약했다. 알비에라 회장은 “빈티지를 거듭할수록 데이터가 쌓여 와인이 최고 품질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안티노리 가문은 르네상스 초창기인 138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조선비즈는 이 가문의 26대손인 알비에라 회장을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알비에라 회장은 2017년부터 아버지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의 뒤를 이어 마르케시안티노리를 이끌고 있다. 피에로 후작은 1975년 ‘슈퍼 토스카나(토스카나에서 혁신 기법으로 제조된 와인)’의 원조인 티냐넬로, 1978년 솔라이아를 출시해 당시만 해도 비주류였던 이탈리아 와인의 이미지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피에로 후작은 1970년대 프랑스에서 포도 묘목을 가져와 심고, 화이트와인을 일부 넣는 관행을 포기한 혁신적인 기법으로 티냐넬로를 제조했다.
티냐넬로와 솔라이아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피에로 후작이 당시 와인 제조에 허용된 품종과 양조 방식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기법으로 만든 두 와인은 출시 당시 전통적인 양조 방식을 중요시하는 이탈리아에서는 낮은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와인 애호가의 사랑을 받으면서 ‘슈퍼 토스카나’라는 별칭을 얻게 됐고, 2000년에는 ‘솔라이아 1997’ 빈티지가 미국의 저명한 와인 전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발표한 세계 100대 와인 1위에 올랐다. 이탈리아 와인 역사상 첫 1위였다.
알비에라 회장은 안티노리 가문의 이정표적 사건으로 조상인 조반니 디 피에로 안티노리가 1385년 피렌체 와인 길드(동업자 조합)에 가입한 것을 꼽았다. 알비에라 회장은 “그날 이후 마르케시안티노리 와인 사업에는 항상 가족 구성원이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른 조상인 안토니오 안티노리가 1976년 9월 코시모 3세 데 메디치 토스카나 대공의 총무로 재직하며 토스카나 지역의 와인 생산지인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의 경계와 보호 지침을 설정한 것도 중요한 순간이라고 밝혔다. 알비에라 회장은 “이는 세계 최초로 와인에 대한 법적 원산지 명칭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밭에서 자란 알비에라 회장에겐 안티노리 가문의 와인 DNA가 내재돼 있다. 알비에라 회장은 “18세 때는 건축학이나 수의학에 관심을 뒀지만, 첫 번째 포도 수확을 경험하고 와인의 매력을 알게 됐다”면서 “와인 생산의 전 단계를 이해한 덕분에 가족 사업의 모든 측면을 깊이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자연, 땅, 포도 등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숨 쉬듯 경험하고, 자연스레 안티노리 DNA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안티노리 가문은 600년 이상 가족 경영을 고수하며 세계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해 왔다. 알비에라 회장은 마르케시안티노리의 장수 비결에 대해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결과”라며 “와인에 대한 열정, 포도밭을 일구는 사람에 대한 존중, 품질과 타협하지 않기 위한 인내심 등 무형의 가치가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며 비즈니스 연속성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르케시안티노리는 와인 품질과 직결된 가족 경영을 고수하기 위해 2012년 가족 신탁을 설립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알비에라 회장은 피에몬테에서의 경험이 마르케시안티노리를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마르케시안티노리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긴 와이너리 ‘프루노토’를 소유하고 있는데, 알비에라 회장은 29세에 불과한 1995년부터 프루노토를 운영했다. 그는 “포도밭 구매, 와인 제조 계획 수립, 자금 마련, 라벨 디자인, 수입 및 유통 업자와 미팅은 물론 판매 계획 수립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했다”면서 “작은 와이너리를 통한 운영 경험은 큰 교훈이 됐다”고 말했다.
유럽 내 전통적인 와인 소비층 감소라는 위기 속에 알비에라 회장에겐 안티노리 가문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알비에라 회장은 “와인 소비에 새롭게 눈을 뜬 다른 지역이 유럽의 와인 소비 감소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마르케시안티노리 입지를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시장에서 탄탄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가장 중요한 와인 품질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알비에라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안티노리의 입지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많이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많이 여행하며 다양한 와인 시장을 이해하고, 사업 파트너 및 와인 애호가를 직접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자매들과 전 세계 곳곳의 와인 시음회, 마스터클래스, 와인 디너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 견고한 와인 유통망을 구축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알비에라 회장은 강조했다.
알비에라 회장은 마르케시안티노리, 그리고 와인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와인으로 티냐넬로를 꼽았다. 티냐넬로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주요 임원에게 명절 선물로 돌려 국내에선 ‘이건희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알비에라 회장은 티냐넬로에 대해 “꾸준히 뛰어난 품질을 추구하고, 스스로에게 도전하며, 품질을 더 높이기 위한 안티노리의 노력을 잘 상징하는 와인”이라며 “우리 가족의 철학인 ‘Te Duce Proficio(탁월함을 추구한다)’를 완벽히 구현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