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픽톤 대표 /애리조나주립대 국제비즈니스 석사,  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상품기획,  전 노드메이슨 대표
이병훈 픽톤 대표 /애리조나주립대 국제비즈니스 석사, 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상품기획, 전 노드메이슨 대표

K뷰티가 전 세계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미국과 일본에서 기존 강국인 프랑스 화장품을 제치고 수출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현재 K뷰티 산업의 새로운 주역은 중소형 인디 브랜드다. 이들은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마케팅 기법과 브랜딩 능력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계 매출 1위를 놓고 다투는 한국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의 막강한 제조력을 기반으로 한 탁월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은 기본이다.

“K뷰티는 한국 문화의 위상을 기반으로 시작한 유행이라 힘이 세다. 여기에 제품력과 가격 경쟁력까지 있으니, (K뷰티 열풍이) 앞으로 10년 이상 갈 수 있다고 본다.” 2024년 12월 24일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만난 이병훈 픽톤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인디 브랜드 ‘토코보’를 이끌고 있다. 토코보는 올리브영과 뷰티컬리 등 국내 주요 채널에 입점해 있다. 전 세계, 특히 남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동물 실험을 배제하는 비건 브랜드다.

토코보는 이 대표가 만든 두 번째 브랜드다. 그는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기간 쌓아왔던 상품 전략 기획을 바탕으로 2015년 뷰티 업계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 작품인 브랜드 ‘헉슬리’는 선인장 성분을 콘셉트로 시장에 데뷔했다. 브랜드명 헉슬리는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새로운 스킨케어 세계를 열겠다는 비전이 담긴 이름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브랜드 스토리와 함께 헉슬리는 ‘모던한 미니멀리즘’을 앞세워 고급스러운 패키지와 철학 있는 제품으로 주목받았다. 2021년엔 한국거래소 코넥스 시장에 상장까지 마쳤다. 이후 그는 헉슬리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국내를 타깃으로 성공을 해봤으니, 이번엔 글로벌 시장을 노려보자는 전략이었다. 타깃 연령층도 전작이 30대였다면 이번엔 20대로 내렸다. 브랜드 이름인 토코보도 전 세계인이 쉽게 발음할 수 있고 리드미컬한 단어라는 생각에서 정했다고 한다.

토코보 제품. /토코보
토코보 제품. /토코보

토코보의 성장세는 파죽지세다. 출시 9개월 만에 국내 인디 브랜드 ‘데뷔 무대’인 올리브영에 입점했고,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다. 현재 토코보는 멕시코나 칠레 같은 남미 국가의 현지 헬스 앤드 뷰티(H&B) 스토어 채널에서 일부 제품이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창립 첫해 14억원이었던 연 매출은 2023년 117억원으로 껑충 뛰었고, 2024년은 300억원에 육박했다. 매출 중 80%가 해외에서 나왔다. 

새해 매출 목표는 약 550억원이다. K뷰티가 인기를 끌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2024년에만 6000여 개 브랜드가 새롭게 생겨났다. 토코보가 가진 차별화된 가치이자 생존 비결은 ‘남이 만들지 않는 독창적인 제품’ 을 만드는 것이다. 틈새시장을 공략하자 그에 맞춘 수요가 생겨났다. 브랜드 인지도를 넓힌 첫 제품은 선스틱이다. 선크림 대비 대중성이 약한 선스틱 시장에 뛰어들어 기존과는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인 전략이 통했다.

또 다른 주력 제품은 컬러 립밤이다. 니베아 등으로 대표되던 일반 립밤 위주 시장에서 새롭게 컬러 립밤 유행을 토코보가 주도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기존의 눈가 주름을 예방해 주는 아이크림 제형을 젤 타입으로 바꿔 20대에게 소구한 제품도 고정관념을 뒤집은 사례다. 

이 대표는 “토코보의 지속 가능성은 지속적인 혁신과 독창적인 접근 방식에서 나온다”면서 “차기작은 선프라이머(자외선 차단제)가 될 것이다. 프라이머 단계에서 선블록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아직은 대중적인 제품이 아니다. 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합리적인 가격에 보기만 해도 예뻐서 기분이 좋아지는 화장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브랜드 패키지는 기능성과 미학을 동시에 신경 썼다. 특히 젊은 세대의 감각을 반영한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화장대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 말에 따르면, 토코보는 해외 진출에서 다변화 전략을 썼다. 과거 중국 사례를 보듯 한 국가에 의존도가 높을 경우 위험도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아마존이나 이베이같은 주류 채널에도 입점했지만,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글로벌 인플루언서에게 막대한 양의 샘플을 뿌리며 지속적으로 브랜드를 홍보했다. 각국의 현지 채널 문도 두드렸다. 이 대표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해외 매출이남미 국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전략 때문”이라면서 “빠른 시간에 국내외에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중심으로 인지도를 넓히게 된 성공 방정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는 일본에서 2000개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 입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바라보는 K뷰티는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이다. 그는 K인디 브랜드가 글로벌을 향해 경쟁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협력해 산업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K뷰티는 한국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제품력과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이라면서 “K뷰티 브랜드는 결국 K라는 글자 안에서 경쟁력을 같이 올려야 하는 동업자 관계다. 이 열풍을 지속하기 위해 경쟁하면서도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바라보는 K뷰티 시장의 키는 혁신과 문화적 공감대다. 그는 “전 세계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전하는 스토리와 가치를 소비한다. 토코보는 비건 화장품으로서 윤리적 가치를 전하고, 한국 문화와 접목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앞으로도 젊은 세대의 감각과 니즈를 반영해 시장의 틈새를 파고드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Plus Point

중국 의존도 줄인 K뷰티, 글로벌 시장으로 눈 돌려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2010년대 중국 시장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중국 화장품 업체들은 한국 화장품의 중국 유통이 막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상품 개발과 마케팅 강화에 나서면서 점유율을 늘렸다. 여기에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운동으로 자국 제품 소비가 늘면서 한국 화장품의 중국 내 입지는 줄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내 자국 색조 화장품 브랜드 점유율은 14%에서 28%로 늘었다. 

한국 화장품 업체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체질 개선을 위한 시장 다변화에 집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대형 화장품 업체들은 세계 1위 화장품 시장인 미국과 3위 일본 등을 두드리고 있다. 현지에서 성공한 브랜드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현지 맞춤형 전략을 펼치고 있다. 

중소형 인디 화장품 브랜드는 SNS를 통한 적극적인 홍보와 차별화된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멀티숍 강화, 브랜드 추가 등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토코보가 남미 시장에서 1위 비건 화장품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전략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최효정 조선비즈 기자